“이웃돕는 사업가로 거듭 나겠다”
의료기기업 뛰어들어 … 386 무식하다는 비판에 미국서 석사받아
불운한 정치인 허인회가 돌아왔다.
잇따른 총선 패배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3년이 넘어서다. 80년대 화염병을 들고 독재와 맞섰던 386들은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거 금뱃지를 달았지만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386 고참 허씨에게 국회 입성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불과 11표차로 패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선 저격수 홍준표 의원에게 1108표차로 무릎을 꿇었다. 두 번 모두 간발의 차이로 진 허씨는 총선 패배 뒤 조용히 가방을 꾸려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386은 데모만 했기 때문에 국정을 맡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말그대로 무식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386이 시대상황에 밀려 공부를 소홀했을 뿐이라는걸 입증하기 위해 무작정 토플책을 손에 잡았다.” 20년 넘게 영어를 멀리했지만 6개월동안 도서관에서 절치부심한 끝에 미국 워싱톤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대부분 정치인이 낙방거사가 된 뒤 공부를 핑계로 외국대학 연수과정에 등록해 세월을 낚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허씨에게 공부보다 힘들었던 것은 생활고였다. “전세금까지 몽땅 털어서 미국 갈 때 손에 쥔 돈이 20만달러였다. 3년동안 정말 어렵게 생활했다. 지난해말 귀국할 땐 주머니에 달랑 200달러가 있더라.”
배움의 갈증을 채우던 유학생활 중에도 정치인 허인회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본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묻는 미 하원결의안이 채택되도록 교포들의 풀뿌리 운동을 조직해낸 것. 미국 전역을 돌며 결의안 채택운동을 벌인 그는 자신의 학비로 워싱톤포스트지광고료를 먼저 대납하기도했다.
3년 넘어 고국으로 돌아온 허씨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첫 사업은 알로에제품 판매업. 명맥만 유지하던 한 알로에 대리점에서 하루 2∼3시간 자며 뛴 끝에 6개월만에 월매출 1억 원을 달성했다. 최근엔 의료기기 사업가로 변신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령층이나 환자의 소변을 자동으로 받아주고 세척, 건조까지 시켜주는 ‘케어클린3000’ 제품 판로개척에 나선 것이다. 현직의사인 김경훈 한메딕스 대표가 개발한 이 제품은 녹색의료기 대표인 허씨의 손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팔릴 전망이다.
허씨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업가를 꿈꾼다. “정치인 허인회는 금뱃지를 못달았지만 사업가 허인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돈이 좀 모이면 저소득층을 위해 소액대출을 주로하는 금융사업을 하고 싶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정치인 허인회로 돌아올 가능성을 물어보자 허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당분간 정치생각은 전혀 안할겁니다. 지금은 사업가로서 성공을 위해 땀 흘릴 때입니다.” 불우한 정치인에서 성공하는 사업가로 변신을 꿈꾸는 허씨가 언젠가 정치인으로서도 웃을 날이 있을까.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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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업 뛰어들어 … 386 무식하다는 비판에 미국서 석사받아
불운한 정치인 허인회가 돌아왔다.
잇따른 총선 패배 뒤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3년이 넘어서다. 80년대 화염병을 들고 독재와 맞섰던 386들은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거 금뱃지를 달았지만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386 고참 허씨에게 국회 입성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불과 11표차로 패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선 저격수 홍준표 의원에게 1108표차로 무릎을 꿇었다. 두 번 모두 간발의 차이로 진 허씨는 총선 패배 뒤 조용히 가방을 꾸려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386은 데모만 했기 때문에 국정을 맡기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말그대로 무식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386이 시대상황에 밀려 공부를 소홀했을 뿐이라는걸 입증하기 위해 무작정 토플책을 손에 잡았다.” 20년 넘게 영어를 멀리했지만 6개월동안 도서관에서 절치부심한 끝에 미국 워싱톤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 대부분 정치인이 낙방거사가 된 뒤 공부를 핑계로 외국대학 연수과정에 등록해 세월을 낚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허씨에게 공부보다 힘들었던 것은 생활고였다. “전세금까지 몽땅 털어서 미국 갈 때 손에 쥔 돈이 20만달러였다. 3년동안 정말 어렵게 생활했다. 지난해말 귀국할 땐 주머니에 달랑 200달러가 있더라.”
배움의 갈증을 채우던 유학생활 중에도 정치인 허인회의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본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묻는 미 하원결의안이 채택되도록 교포들의 풀뿌리 운동을 조직해낸 것. 미국 전역을 돌며 결의안 채택운동을 벌인 그는 자신의 학비로 워싱톤포스트지광고료를 먼저 대납하기도했다.
3년 넘어 고국으로 돌아온 허씨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첫 사업은 알로에제품 판매업. 명맥만 유지하던 한 알로에 대리점에서 하루 2∼3시간 자며 뛴 끝에 6개월만에 월매출 1억 원을 달성했다. 최근엔 의료기기 사업가로 변신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령층이나 환자의 소변을 자동으로 받아주고 세척, 건조까지 시켜주는 ‘케어클린3000’ 제품 판로개척에 나선 것이다. 현직의사인 김경훈 한메딕스 대표가 개발한 이 제품은 녹색의료기 대표인 허씨의 손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팔릴 전망이다.
허씨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업가를 꿈꾼다. “정치인 허인회는 금뱃지를 못달았지만 사업가 허인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돈이 좀 모이면 저소득층을 위해 소액대출을 주로하는 금융사업을 하고 싶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정치인 허인회로 돌아올 가능성을 물어보자 허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당분간 정치생각은 전혀 안할겁니다. 지금은 사업가로서 성공을 위해 땀 흘릴 때입니다.” 불우한 정치인에서 성공하는 사업가로 변신을 꿈꾸는 허씨가 언젠가 정치인으로서도 웃을 날이 있을까.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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