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말’을 통해 공산주의 몰락을 예고해 세계석학 대열에 올랐으며 국가(State)의 개입이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효과적인 관료체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한 미국 존스 홉킨스대 프랜시스 후쿠야마(Fukuyama·사진) 교수가 금융위기에 봉착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의 붕괴를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월 13일자 뉴스위크 최신호에 게재된 ‘미국 주식회사의 몰락’(The Fall of America Inc.)이란 기고문에서 현 상황은 감세와 규제철폐로 대변되는 레이건 시대의 종언이라면서 미국이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감세와 작은 정부를 버리고 금융기관에 대한 강한 관리감독을 실시하며 공공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따라 국가와 관료체계의 시장개입을 반대하는 논리가 확산된 한국사회에서 독자들이 음미할 만한 내용이다. 이를 세 차례에 걸쳐 전문을 게재한다.
미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의 파산. 하루만에 1조달러 가치 주식의 휴지조각화. 미국 납세자들에게는 7000억달러라는 계산서.
월스트리트의 붕괴 규모는 이보다 더 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미 국민들 스스로도 왜 자신들이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같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는 이미 금융시장 붕괴로 미국이 치러야할 보다 큰 대가는 미국 ‘브랜드’에 대한 타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념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된 이래 본질적으로 두가지 미국의 이념이 세계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첫번째 이념은 낮은 세금과 가벼운 규제, 작은 정부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 시각이다. 레이거니즘은 한 세기간 이어져온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규제철폐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당대의 질서가 됐다.
두번째 이념은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후원자로서의 미국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보다 번영되고 개방적인 국제질서 가는 최상의 길로 인식됐다. 미국의 파워와 영향력은 무기와 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의 민주정치 형태를 매력적으로 보고 그들이 속한 사회도 같은 노선에 따라 발전하기를 바라는 데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조지프 나이 정치사회학자는 이를 ‘소프트파워’라고 명명했다.
미국 브랜드의 신용이 얼마나 떨어질 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2002~2007년 사이 세계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을 동안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 중남미 포퓰리스트들이 미국의 경제 모델을 ‘카우보이 자본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을 무시하기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성장의 동력인 미국 경제가 선로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를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위험에 처해있다. 더 나쁜 것은 범인이 바로 미국식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미국정부는 금융부문을 적절히 규제하는데 실패했고 사회전반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도록 내버려뒀다.
민주주의는 이보다 먼저 퇴색했다. 사담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을 보다 광범위한 ‘자유 아젠다’와 연관시키며 이라크전쟁을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무기가 됐다.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레토릭은 미국의 헤게모니 조장을 위한 변명으로 들리게 됐다.
우리가 현재 당면한 선택은 구제금융 투입이나 대선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미국 브랜드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다른 모델들이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혹독한 시험을 거치고 있다. 우리의 뛰어난 명성을 회복하고 우리 브랜드의 매력을 되살리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금융부문을 안정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전과제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대선 후보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승리하던 수년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미국식 모델의 무엇이 건전하고 무엇이 잘 이행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싸움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많은 언론과 미디어 논평자들이 월가 붕괴가 레이건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지적했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지적이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하다.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11월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위대한 이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 상황 속에서 탄생한다.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이념이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가 세대를 주기로 좌에서 우로 이동하고 또 뒤로 되돌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레이거니즘(혹은 영국의 대처리즘)은 그 당시에는 옳았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후 전 세계 정부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1970년대, 관료적 형식주의에 의해 숨이 막힌 큰 복지를 내세운 국가와 경제는 커다란 기능장애가 있음이 계속해서 입증됐다. 그 당시는 전화가 비쌌고 구하기 어려웠다. 또 비행기 여행이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정부 조절 하에 낮은 이율을 지급하는 일반은행에 저축하던 때였다.
‘부양 자녀가 있는 가족 지원’(AFWDC)과 같은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정이 일하고 결혼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결국 가정은 와해됐다. 레이건-대처 혁명은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함으로써 전통산업이 위축되거나 문을 닫게 돼 엄청난 고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동시에 30여년간의 성장과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과 같은 새 산업부문 출현의 토대를 마련했다.(계속)
번역·정리 이지혜 리포터 2ma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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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의 파산. 하루만에 1조달러 가치 주식의 휴지조각화. 미국 납세자들에게는 7000억달러라는 계산서.
월스트리트의 붕괴 규모는 이보다 더 거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미 국민들 스스로도 왜 자신들이 미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같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는 이미 금융시장 붕괴로 미국이 치러야할 보다 큰 대가는 미국 ‘브랜드’에 대한 타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념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다.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된 이래 본질적으로 두가지 미국의 이념이 세계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첫번째 이념은 낮은 세금과 가벼운 규제, 작은 정부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특정 시각이다. 레이거니즘은 한 세기간 이어져온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규제철폐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당대의 질서가 됐다.
두번째 이념은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후원자로서의 미국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보다 번영되고 개방적인 국제질서 가는 최상의 길로 인식됐다. 미국의 파워와 영향력은 무기와 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의 민주정치 형태를 매력적으로 보고 그들이 속한 사회도 같은 노선에 따라 발전하기를 바라는 데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조지프 나이 정치사회학자는 이를 ‘소프트파워’라고 명명했다.
미국 브랜드의 신용이 얼마나 떨어질 지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2002~2007년 사이 세계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을 동안은 유럽 사회주의자들과 중남미 포퓰리스트들이 미국의 경제 모델을 ‘카우보이 자본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을 무시하기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성장의 동력인 미국 경제가 선로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를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위험에 처해있다. 더 나쁜 것은 범인이 바로 미국식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미국정부는 금융부문을 적절히 규제하는데 실패했고 사회전반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도록 내버려뒀다.
민주주의는 이보다 먼저 퇴색했다. 사담 후세인이 WMD(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면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을 보다 광범위한 ‘자유 아젠다’와 연관시키며 이라크전쟁을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무기가 됐다.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레토릭은 미국의 헤게모니 조장을 위한 변명으로 들리게 됐다.
우리가 현재 당면한 선택은 구제금융 투입이나 대선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미국 브랜드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다른 모델들이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혹독한 시험을 거치고 있다. 우리의 뛰어난 명성을 회복하고 우리 브랜드의 매력을 되살리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금융부문을 안정화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전과제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 대선 후보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승리하던 수년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미국식 모델의 무엇이 건전하고 무엇이 잘 이행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싸움을 시작할 수조차 없다.
많은 언론과 미디어 논평자들이 월가 붕괴가 레이건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지적했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지적이 의심할 여지없이 정확하다.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11월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은 변함없다. 위대한 이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 상황 속에서 탄생한다.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이념이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가 세대를 주기로 좌에서 우로 이동하고 또 뒤로 되돌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레이거니즘(혹은 영국의 대처리즘)은 그 당시에는 옳았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후 전 세계 정부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1970년대, 관료적 형식주의에 의해 숨이 막힌 큰 복지를 내세운 국가와 경제는 커다란 기능장애가 있음이 계속해서 입증됐다. 그 당시는 전화가 비쌌고 구하기 어려웠다. 또 비행기 여행이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으며 대다수 사람들이 정부 조절 하에 낮은 이율을 지급하는 일반은행에 저축하던 때였다.
‘부양 자녀가 있는 가족 지원’(AFWDC)과 같은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정이 일하고 결혼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했으며 결국 가정은 와해됐다. 레이건-대처 혁명은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를 보다 용이하게 함으로써 전통산업이 위축되거나 문을 닫게 돼 엄청난 고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동시에 30여년간의 성장과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과 같은 새 산업부문 출현의 토대를 마련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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