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86) 여사가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한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출간했다. 자전적 수필집 ‘나의 사랑·나의 조국’(1992)과 1980년 당시 감옥에 있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를 묶은 서간집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1998)에 이은 이 여사의 세 번째 책으로 집필을 시작한 지 4년여만에 완성했다.
1922년 9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태어난 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치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험난한 세월을 거쳐 퍼스트레이디가 되기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 온 이 여사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함께 펼쳐진다.
책은 삶의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동지로 40여년을 함께 한 김 전 대통령과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지팡이를 짚고 무거운 걸음을 떼는 남편의 뒷모습이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네 차례 대선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1971년 95만표 차이로 패했던 첫 대선도전에 대해선 ‘전쟁에서 이기고 전투에서 진 선거,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진 선거’라고 평하며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1987년 두 번째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투표 사흘 전 보라매공원에 25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데 흥분한 것이 독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투표 이틀 전 후보 단일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데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지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1992년 세 번 째 대선에 대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보았으며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대선에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고 했다.
지식인으로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이 여사의 이야기는 또 한국 여성운동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이화고녀 졸업반 때 당시 조선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활란 박사처럼 되자는 꿈을 갖고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갓 남녀공학이 됐던 서울대를 다니며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 이 여사가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이화고녀에서 보낸 4년으로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거물정치인의 아내, 여성운동가로서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여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미쓰코시 백화점에 가서 신식 물건들을 눈요기했고 사철 내내 아름다운 교정을 거니는 여학교 생활이 가장 행복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졸업식 때 받았던 ‘종교상’이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하다고 회고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재야정치인 계훈제 선생과 한 때 부부의 연을 맺을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는 지인들 사이에선 알려진 내용이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다.
대학 졸업 무렵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위원장이었던 계 선생을 소개받은 이 여사는 그가 추구하는 꿈에 끌렸고 갓 해방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청춘으로서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지적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폐결핵에 걸렸고 당시 미국 유학과 연민의 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유학을 결정했지만 미안함과 병든 이를 돌보지 않은 죄책감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남편의 평생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생전에 세 번 육 여사와 만났다는 이 여사는 육 여사에 대해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의 야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롭다. 1982년 남편의 석방을 요청하러 처음 만났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면서 “때로는 바짓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라고 평한다. 또 친일 논란이 일었던 김활란 박사에 대해서는 “그가 정작 친일파였다면 일본어에 서툴지 않았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대목도 있다.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붙인 제목이다. 이 여사는 자서전 출간을 기념해 11일 서울 63빌딩에서 김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연다.
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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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86) 여사가 파란만장한 삶을 정리한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을 출간했다. 자전적 수필집 ‘나의 사랑·나의 조국’(1992)과 1980년 당시 감옥에 있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300여통의 편지를 묶은 서간집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1998)에 이은 이 여사의 세 번째 책으로 집필을 시작한 지 4년여만에 완성했다.
1922년 9월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태어난 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치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험난한 세월을 거쳐 퍼스트레이디가 되기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 온 이 여사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함께 펼쳐진다.
책은 삶의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동지로 40여년을 함께 한 김 전 대통령과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지팡이를 짚고 무거운 걸음을 떼는 남편의 뒷모습이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네 차례 대선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았다. 1971년 95만표 차이로 패했던 첫 대선도전에 대해선 ‘전쟁에서 이기고 전투에서 진 선거,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진 선거’라고 평하며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1987년 두 번째 대선에서 패배하고 나서는 투표 사흘 전 보라매공원에 25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데 흥분한 것이 독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투표 이틀 전 후보 단일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데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지은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1992년 세 번 째 대선에 대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보았으며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대선에 실패한 뒤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고 했다.
지식인으로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이 여사의 이야기는 또 한국 여성운동의 발전사이기도 하다. 이화고녀 졸업반 때 당시 조선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김활란 박사처럼 되자는 꿈을 갖고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갓 남녀공학이 됐던 서울대를 다니며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 이 여사가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이화고녀에서 보낸 4년으로 회고하는 대목에서는 거물정치인의 아내, 여성운동가로서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여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미쓰코시 백화점에 가서 신식 물건들을 눈요기했고 사철 내내 아름다운 교정을 거니는 여학교 생활이 가장 행복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졸업식 때 받았던 ‘종교상’이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하다고 회고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재야정치인 계훈제 선생과 한 때 부부의 연을 맺을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는 지인들 사이에선 알려진 내용이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다.
대학 졸업 무렵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위원장이었던 계 선생을 소개받은 이 여사는 그가 추구하는 꿈에 끌렸고 갓 해방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청춘으로서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지적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폐결핵에 걸렸고 당시 미국 유학과 연민의 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유학을 결정했지만 미안함과 병든 이를 돌보지 않은 죄책감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남편의 평생 정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생전에 세 번 육 여사와 만났다는 이 여사는 육 여사에 대해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의 야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롭다. 1982년 남편의 석방을 요청하러 처음 만났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면서 “때로는 바짓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라고 평한다. 또 친일 논란이 일었던 김활란 박사에 대해서는 “그가 정작 친일파였다면 일본어에 서툴지 않았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대목도 있다.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붙인 제목이다. 이 여사는 자서전 출간을 기념해 11일 서울 63빌딩에서 김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연다.
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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