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번민 적지 않았던 인간 김수환

“우직하게 살자 … 삶은 계란”

지역내일 2009-02-18
어디서나 웃음 잃지 않아

전두환 정권의 부도덕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권인숙씨의 소식을 접하고 엽서를 쓴 김수환 추기경의 관심이 없었다면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김 추기경의 엽서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여론은 바뀌었고 문귀동 경장은 실형 5년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김 추기경도 고뇌와 번민이 적지 않았다.
마흔 일곱 나이에 서울 대교구장에 오른 김 추기경은 크나큰 인간적 고독을 느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를 들려 낯선 타향으로 보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느님께 되묻고 되물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나로서는 2년 동안 굉장히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떠날 때 솔직히 신부님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마산교구민들과의 이별을 몹시 아쉬워하기도 했다.

◆80년 광주 비극 ‘한’으로 남아 = 유신독재에 맞섰던 70년대는 특히 김 추기경을 심적으로 괴롭혔던 시기였다. 바깥으로는 정권과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안으로는 분열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과 두 번째 구속,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정의구현 사제단 태동, 이에 반대하는 원로층 사제들의 구국 기도회 결성 등으로 교회의 분열상은 극에 달했고 급기야 김 추기경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나를 제거하고 밀어내려는 분위기가 생기고, 로마로 편지도 보내고 사람도 보내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김 추기경도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서운함은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긴급조치가 잇따랐던 유신말기. 사제들의 연행과 구속이 빈번해지고 시국 기도회가 악순환처럼 반복되면서 김 추기경에 대한 감시와 억압, 도청도 심해졌다. 김 추기경도 유신독재의 질곡 앞에서 흔들리기도 했다. “정말 내가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어요”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김 추기경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광주의 비극은 가슴 저 깊은 곳에 한으로 남았다. “나도 어떤 의미로 나이가 지금보다는 젊었으니까 흥분된 상태였고 광주 시민들과 함께 싸우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으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을 겪었을 때가 그 때 였어요”
83년 9월 형님 김동한 신부의 선종소식은 광주 비극 못지 않은 슬픔을 안겼다. 추기경인 동생에게 누가 될까봐 주교관 출입을 일부러 피했던 형님 신부였기에 아픔은 더했다. “마음에 공허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분이 그 분이었어요.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니까 옛날에 느꼈던 공허함이 다시 왔고 뭐라 형용 할 수가 없고, 한 순간도 거의 한순간도 형님을 잊어 본 적이 없고 밤이든 낮이든 형님을 생각하게 되고...”

◆황우석 사태 접하고 눈물 흘려 = 한 인간으로서, 사제로서 고뇌하고 번민했던 김 추기경이지만 또한 그의 곁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엄숙한 장엄미사에서, 강연회에서도 좌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삶이 뭔가, 삶이 뭔가 생각하다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한 2003년 서울대 초청 강연은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때론 선문답 같은 한 마디로 청중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지난 96년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에서 한 청년이 “제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묻자 김 추기경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웃음을 유도했다.
사제와 인간으로 산 김 추기경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황우석 사태를 접하고 우리 국민들의 부끄러움, 난치병 환우들의 절망을 생각하며 10여 분간 눈물을 흘렀다는 김 추기경은 치유의 방법으로 우직함을 제시했다.
“세계 앞에 한국이, 한국 사람들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하느님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너무 좋은 머리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고 그렇게 했으니... 치유는 뭐 달리 없죠. 우직한 게 필요하다. 내가 ‘우직’이라고 표현해요. 우직한 사람은 정직해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직하게 살자”고 했던 김 추기경의 말이 다시금 새겨지는 시기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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