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주)디자인파크 대표
서울 한 복판 길을 나서면 내 손을 거친 디자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하루를 지내기가 쉽지 않다. 교보생명의 지저귀는 곡옥부터 덩실덩실 춤추는 서울시의 산과 물, 둥실둥실 떠오르는 LIG의 희망구름, 버스와 지하철에서 매일 만나는 T-머니까지, 나의 작업이 이 거리의 시각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면 디자이너로서 뿌듯한 보람과 함께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요즘 각계각층에서 열띠게 진행되고 있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새로운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시민들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해답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거리 구석구석의 낡고 때묻은 풍경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반듯하게 가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도로변의 가판대들은 네모반듯하게 말쑥해졌으며, 간판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한강 다리들은 저마다의 야간조명으로 멋을 내게 되었다. 이 모든 작업이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속도를 내어 달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쯤 한 번 숨을 고를 때가 되었다.
보통 공공디자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쉽게 매를 얻어맞는 것은 간판이 난잡한 우리 거리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곧잘 거론되는 것은 나지막한 건물들이 느긋하게 자리잡은 유럽의 어느 유서깊은 도시의 풍경이다. 우리의 거리 풍경은 수십 년 만에 경제성장은 물론 민주화를 쟁취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의 거리에 멋들어진 간판과 세련된 외양을 기대하는 것은 생업에 시달리고 집안살림에, 남편 자식 뒷바라지에, 친정 시댁 어른까지 챙겨야 하는 아줌마에게 화장도 하고 옷도 좀 갖춰 입고 하이힐도 신으라는 말과 진배없다.
유럽의 소도시나 일본의 도시 풍경이 조화롭고 우아하며 잘 가꾸어진 것은 우리네와는 다른 호흡으로 달려온 그들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네들의 국수집은 몇 백 년 간 한 장소를 지키고 있다. 한번 문을 연 가게는 웬만해서는 갑자기 문을 닫거나 업종 변경을 하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본 상점의 노렌 (の-れん, 노렌은 점포나 회사의 문양이 들어간 무명천으로, 상점 입구에 걸어 놓는 것이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게의 전통과 신용을 중시하는 일본 상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네들은 굳이 요란한 간판과 조명으로 ''나 여기 있소!'' 하고 악쓰지 않아도 오랜 기간 지켜온 가게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손님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요즘 종로 거리에 나서면 간판 재정비가 이루어져 제법 멀끔해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위에서부터 내려온 지침에 의해 일괄적으로 진행된 간판 정비 사업은 달리 생각해보면 어지러운 간판만큼이나 우리의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떡집이나 안경가게나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것들은 가게마다의 전통과 개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난 모습이 아니라 지자체 담당자들의 ‘방침’과 ‘지시’의 결과물이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공공디자인 담당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패스트 푸드만큼 쏟아져 나오는 ''패스트 디자인''에 대한 경계이며, 기교가 아니라 정성이 깃들인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우러나오는 디자인문화에 대한 지향이다. 가겟집 주인, 건물주인, 손님, 보행자, 디자이너,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공의 영역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이 바로 공공디자인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멋진 벤치, 설치미술작품과 같은 모양의 가로등, 찍어낸 듯한 키오스크가 아니라 일상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해 표현되는 성숙한 디자인문화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 디자인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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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복판 길을 나서면 내 손을 거친 디자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하루를 지내기가 쉽지 않다. 교보생명의 지저귀는 곡옥부터 덩실덩실 춤추는 서울시의 산과 물, 둥실둥실 떠오르는 LIG의 희망구름, 버스와 지하철에서 매일 만나는 T-머니까지, 나의 작업이 이 거리의 시각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면 디자이너로서 뿌듯한 보람과 함께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요즘 각계각층에서 열띠게 진행되고 있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새로운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시민들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해답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거리 구석구석의 낡고 때묻은 풍경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반듯하게 가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도로변의 가판대들은 네모반듯하게 말쑥해졌으며, 간판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한강 다리들은 저마다의 야간조명으로 멋을 내게 되었다. 이 모든 작업이 ''공공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속도를 내어 달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쯤 한 번 숨을 고를 때가 되었다.
보통 공공디자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쉽게 매를 얻어맞는 것은 간판이 난잡한 우리 거리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곧잘 거론되는 것은 나지막한 건물들이 느긋하게 자리잡은 유럽의 어느 유서깊은 도시의 풍경이다. 우리의 거리 풍경은 수십 년 만에 경제성장은 물론 민주화를 쟁취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도달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의 거리에 멋들어진 간판과 세련된 외양을 기대하는 것은 생업에 시달리고 집안살림에, 남편 자식 뒷바라지에, 친정 시댁 어른까지 챙겨야 하는 아줌마에게 화장도 하고 옷도 좀 갖춰 입고 하이힐도 신으라는 말과 진배없다.
유럽의 소도시나 일본의 도시 풍경이 조화롭고 우아하며 잘 가꾸어진 것은 우리네와는 다른 호흡으로 달려온 그들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그네들의 국수집은 몇 백 년 간 한 장소를 지키고 있다. 한번 문을 연 가게는 웬만해서는 갑자기 문을 닫거나 업종 변경을 하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본 상점의 노렌 (の-れん, 노렌은 점포나 회사의 문양이 들어간 무명천으로, 상점 입구에 걸어 놓는 것이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게의 전통과 신용을 중시하는 일본 상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네들은 굳이 요란한 간판과 조명으로 ''나 여기 있소!'' 하고 악쓰지 않아도 오랜 기간 지켜온 가게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손님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요즘 종로 거리에 나서면 간판 재정비가 이루어져 제법 멀끔해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위에서부터 내려온 지침에 의해 일괄적으로 진행된 간판 정비 사업은 달리 생각해보면 어지러운 간판만큼이나 우리의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떡집이나 안경가게나 차별성 없이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것들은 가게마다의 전통과 개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난 모습이 아니라 지자체 담당자들의 ‘방침’과 ‘지시’의 결과물이다.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공공디자인 담당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패스트 푸드만큼 쏟아져 나오는 ''패스트 디자인''에 대한 경계이며, 기교가 아니라 정성이 깃들인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요,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우러나오는 디자인문화에 대한 지향이다. 가겟집 주인, 건물주인, 손님, 보행자, 디자이너,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공의 영역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이 바로 공공디자인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멋진 벤치, 설치미술작품과 같은 모양의 가로등, 찍어낸 듯한 키오스크가 아니라 일상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해 표현되는 성숙한 디자인문화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제 디자인은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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