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고향의 봄’배경을 놓고 창원과 양산 사이의 줄다리기가 창원으로 일단락됐다.
‘고향의 봄’은 아동문학가 고 이원수선생이 작사, 수많은 세월동안 애창된 것으로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선생은 양산서 태어나 1년도 못돼 창원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아홉 살까지 살았다.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쓴 동요가 ‘고향의봄’이었다…”
최근 창원시와 시문인협회가 중심이 돼 구성된 ‘고향의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조)’가 사업추진 총회를 가지며 이같은 자료를 공개했다. 추진위는 이선생의 성장기 무렵인 1912∼1921년 본적지 창원군 소답리(현 창원시 중동) 110의 호적등재 사본을 발굴, 공개했다.
또 추진위는 이선생 본인이 직접 감수한 연보 및 가족과 지인의 증언, 작품을 근거로 최종정리된 이원수전집 수록 연보 등을 동시에 내놔 최근 수년간 제기돼온 양산시 지역의 주장과 시의 배경 논란을 정확히 판가름했다.
‘고향의 봄’은 아동문학가 고 이원수선생이 작사, 수많은 세월동안 애창된 것으로 배경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선생은 양산서 태어나 1년도 못돼 창원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아홉 살까지 살았다.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쓴 동요가 ‘고향의봄’이었다…”
최근 창원시와 시문인협회가 중심이 돼 구성된 ‘고향의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조)’가 사업추진 총회를 가지며 이같은 자료를 공개했다. 추진위는 이선생의 성장기 무렵인 1912∼1921년 본적지 창원군 소답리(현 창원시 중동) 110의 호적등재 사본을 발굴, 공개했다.
또 추진위는 이선생 본인이 직접 감수한 연보 및 가족과 지인의 증언, 작품을 근거로 최종정리된 이원수전집 수록 연보 등을 동시에 내놔 최근 수년간 제기돼온 양산시 지역의 주장과 시의 배경 논란을 정확히 판가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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