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가객 농암 이현보 - 제3편 농암과 퇴계의 대화

세월을 격하여 주고받는 거유들의 ‘선문답’

지역내일 2001-07-23
농암과 퇴계와의 교유는 농암의 삶과 문학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농암과 퇴계는 시대를 격하여 교분을 충실히 쌓은 사이였기에 이들의 대화에서 당대의 사회관계에서 어떻게 삶을 풀어나갔으며, 강호의 즐거움과 넉넉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농암과 퇴계가 이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인연이 남다르기 때문이
다. 같은 고향을 가지고 있고, 퇴계의 아버지 역할을 한 삼촌 송재(松齋) 이우(李 )와 농암
은 친구사이이면서 1498년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이현보의 셋째 아들인 이중량
(李仲樑) 역시 친구였던 퇴계와 같은 해에 동시에 과거 급제하여 2대를 거치면서 우의를 다
지게 된다. 그러나 퇴계 아버지 역할을 담당했던 이우가 4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퇴계
형제들은 농암에게 의지하였고 농암은 이들을 친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폈던 것이다.
농암이 74세 되던 해인 1540년, 한편의 시를 40세된 퇴계에게 건넨다. 가뭄이 극심한 때 곧
물이 메마를 물동이 안에서 안심하고 있는 물고기를 인간이 놀리자 이를 들은 물고기가 자
신의 처지와 인간세상이 다를 바 없음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물고기는 이렇게 말한다. “내
가 보는 세상사람 모습한번 들어보소/ 벼슬길에 나서서 명예나 이익에 빠지면/ 남의 꽁무니
쫓기도 하고 떼지어 다니기도 하며/ 임금님 은혜 입기를 구걸하듯 하지 않소/ 청운의 뜻을
품고 조정에서 벼슬할 때는/ 바야흐로 뜻을 얻어 의기가 양양하다가/ 어느날 저녁 갑자기
풍파가 일어나면/ 장차 자기 한몸 용납할 곳도 없지 않소/ 잠시 동안 목숨 붙이고 살다 가
는 것이야/ 사람이나 (물동이속) 물고기가 다를 것이 무엇이요”
퇴계는 농암의 이 시를 보고는 “깊은 훈계는 이 시에 있으니/ 지극한 가르침 새겨서 기억
하리/ 벼슬의 풍랑 속에서 몸 거두어/ 자연의 한가한 흐름속에서 성명을 지키리라…”고 화
답한다. 그리고 퇴계는 농암이 은퇴한 다음해에 관직의 풍파속에서 몸을 거두고 도산으로
내려온다.
농암과 퇴계는 은퇴 이후 어부가를 함께 부르면서 자연을 노래하였고, 퇴계의 거처에서 함
께 자연을 음미하였다. 농암이 84세, 퇴계가 50세 되던 해에 퇴계의 거처인 계상서당을 농암
이 찾았다. 퇴계는 이를 기념하여 “가장 빛이 나기는 늙은 신선(농암)께서 해마다 온갖 꽃
핀 두메로 이르시는 것이라네”라고 읊자, 농암이 이를 받아 “오로지 꽃 같은 곳 따라 여
러번 집지어 옮겼네, 지금은 돌아가는 길 물을 필요 없네 골짜기 건너 바위 뚫고 지나면 냇
물가에 있으니”라고 화답한다.
한서암을 찾은 농암을 보고 퇴계는 “맑은 시내 서쪽가에 띠집을 지었으니/ 속세의 나그네
어찌 지게문을 열라 두드릴 것인가/ 갑자기 산 남쪽에 사시는 신선이 은혜롭게도/ 작은 가
마 타고 온갖 꽃 뚫고 오셨다네” 라고 하였다. 농암은 이날 만남을 “편안한 대접을 받고,
조용히 실컷 마신 뒤 또 글까지 보여주니 더욱 정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바윗길 뚫고 골짜기 넘어 산 속 집 찾았더니/ 반쯤 닫힌 사립문이 나를
위하여 열려있네/ 봄이 찾아온 후 냇가 경치 너무나 사랑스러워/ 취하여 돌아올 것 잊어버
려 해 다 기울어서야 돌아왔네”
농암과 퇴계는 강과 산을 친구삼아 살아가는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의 깊이를 더한다. 강과
산에 묻혀있지만 농암과 퇴계는 신비한 선경에서 살아가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
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귀거래(歸去來)는 현실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평범함
에 대한 회복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퇴계의 제자 이담(李湛)이 너무 놀러 다니는 것을 경계
하여야 한다는 말로 퇴계에게 충고의 언질을 하지만 퇴계는 농암선생의 임천지락(林泉之樂)
을 이야기하면서 강과 산을 벗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자신의 가치관에 한 지표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한 인간을 기림에 필자는 사회적 영향력보다는 그의 삶에 대한 진실성과 다투지 않는 내면
적 충만감을 존중한다. 이점에서 각각의 삶에 충실하고 있는 많은 존재와 자세에 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농암과 퇴계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자기 것에 대한 “놓음” 마음의 넉넉함
과 자유로운 풍취를 가지고자 노력한다. 내가 그가 될 수 없기에 세월을 격하여 그의 삶을
존중하고 찾는 것이다.

권두현 민예총 안동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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