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칼럼>

지역내일 2009-05-01
‘한국의 나오시마’를 생각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녹슨 함석과 낡은 판자로 된 벽면에 경비행기 동체 같은 철제물, 나무 거울 간판 같은 오브제가 붙어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굴곡진 벽면이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호기심을 자아내고, 2층으로 올라서면, 난데없는 자유의 여신상 상반신이 온 방을 채우고 있다.(오오타게 신로가 폐가를 설치작품화한 ‘혀 위의 꿈’).
옛날 미나미데라(南寺) 터에 시골 정미소 창고 같이 생긴 목조 건물이 나온다. 몇개의 꺾어진 벽을 더듬어 들어가면 그야말로 칠흑 같이 깜깜한 밀실이 된다. 공포의 암흑 방에 한참 갇혔다가 달무리 같은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
지난주 일본 나오시마(直島)로 미술 탐방을 다녀왔다. 나오시마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섬 사이의 세토 내해에 있는 3000개의 섬 가운데 면적이 8㎢로 서울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작은 섬이다. 나오시마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구리 제련소가 뿜어내는 공해로 황폐해진 가가와현(香川縣)의 이 섬은 주민이 한 때 200명으로 줄었다가, 한 기업가의 탁견과 주민의 협력과 건축가 예술가들의 기여로 이제는 주민이 3000명으로 늘어난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연간 30만명이 넘는 미술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단지 미술품들을 감상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버려진 섬이 어떻게 하여 불과 20년만에 미술과 건축의 천국으로 변신했는지 알고 싶어서 오는 것일 게다. 이 섬 전체에 깃들어 있는 예술혼은 미래를 볼 줄 아는 기업가의 안목, 주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헌신적인 노력이 이뤄낸 합작품이다.
일본의 교육·실버사업그룹인 ‘베네세’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은 지난 1987년 10억엔 으로 버려진 섬의 절반을 사들여 2년 뒤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섬 곳곳에 예술을 심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나오시마는 4개의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마을 곳곳의 오래된 가옥이나 신사 등을 설치미술의 작품으로 만든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다. 둘째는 자연의 스카이라인을 그대로 살려 땅속에 건축한 ‘지중(地中) 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화가 클로드 모네,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 영상설치작가 제임스 터럴 3인의 작품을 사실상 영구전시하기 위해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맞춤형 건물이다.
셋째는 베네세 하우스로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한 독특한 건축물이다. 미술관이 주(主)이고, 호텔은 부대시설로 보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야요이 쿠사마의 ‘노란 호박’을 비롯한 해변 잔디밭 절벽 언덕 곳곳에 놓여있는 야외 조각품과 설치작품들이다.
나는 ‘나오시마 변신’의 핵심 요소는 기업가 후쿠다케의 기발한 발상과 섬 주민들의 자원봉사정신이라고 본다. 지난달 그가 방한했을 때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 섬에 투자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섬의 젊은이들은 모두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늙은이들만 남게 되어 마을이 공동화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다 현대미술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그룹 매출의 대부분은 학습지를 비롯한 교육사업에서 나왔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고령화에 맞춘 실버사업과 함께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곳곳에 있는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의 안내인은 이곳 주민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다. ‘호왕신사’의 안내인은 30년 간 해군에서 근무하다 퇴역한 사람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일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미술품 감상 못지않게 마을주민들이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낡은 목조 건물의 귀퉁이에 대나무 통을 세우고 중간에 구멍을 파서 거기에 꽃을 심기도 했다. 일본 전통의 정원으로 아름답게 가꾼 개인 주택의 정원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주민들의 마음이 나오시마를 성공시킨 토양이다.
세토 내해는 우리나라 남해의 다도해나 한려수도와 비슷하다. 나오시마도 거제 통영, 고흥 완도, 진도 인근의 작은 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통영의 욕지도(12.5㎢/인구 1700명)나 한산도(14.7㎢/인구 1400명), 완도의 보길도(19.3㎢/인구 2900명)등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세계적인 예술의 섬으로 가꿀 수 있다.
우리에게도 ‘경제는 문화의 시녀’라고 규정짓는 후쿠다케 회장과 같은 안목 있는 기업가, 아름다운 마을을 추구하고 봉사하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고 본다. 다른 게 있다면, 일본의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이고, 우리는 2만달러라는 경제력 차이다.
하지만 예술의 섬을 만드는 데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못된다. 문제는 생각의 틀을 크게 바꿔보는 용기다. 세기의 명화를 CF로 활용하고 있는 LG그룹을 비롯한 우리의 대기업들은 ‘한국의 나오시마’를 만들 역량도, 안목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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