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판용 기사

지역내일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살릴한 것
민주주의 … 그리고 관용
“민주주의 지키는 심정으로 죽음 선택” … 유서 통해 ‘갈등해소’ 촉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기 위해서는 마을 입구에서 분향소에 이르는 1km에 이르는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봉하마을을 찾아온 조문객들은 때로는 1km가 넘는 긴 대열을 만들며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마치 순례길을 가듯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남긴 화두’를 풀어보려는 듯 걷고 또 걸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 제자리로 돌려놓고자 했을 것” =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깊고 무거운 과제를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그분은 (죽음을 앞두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백척간두의 심정이었을 것”이라며 “낡은 수사관행과 통치관행, 국가권력의 폭력, 끊임없이 양산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불신, 공격과 음해에 대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키는 심정으로 뒷산에 오르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오후 분향을 마친 참여정부 청와대 의전비서관 출신인 정윤재씨는 “왜 이렇게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마치 시대의 틈바구니에 끼어버린 것 같다”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조세정책 입안자이기도 했던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자연과학에는 후퇴가 없지만 사회에서는 단 몇 개월 만에도 후퇴가 일어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그것이다”며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우리 사회의 큰 숙제를 노 대통령은 자신의 죽음으로 알리고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현장이자 격정토론장 된 봉하마을 = 봉하마을에 속속 모여든 참여정부의 핵심 주역들은 주역들대로, 노사모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은 그들끼리 밤을 새워가며 격정토론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오전 9시 30분부터 24일 오후 ‘국민장’이 결정되기까지 봉하마을은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의 현장이자,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20여년의 역사가 가진 의미와 과제 미래를 묻고 되묻는 거대한 ‘토론의 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화환을 짓밟고, 조문을 온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물을 뿌리고, KBS 방송차량에 의자를 던지고, 여당 정치인의 문상을 가로막는 울분과 격앙의 거친 감정이 출렁였다.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는 검찰 수사와 이에 맞장구친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참여정부의 후원자라고 자신을 밝힌 중소기업인 최두호씨는 “대통령을 죽게 한 저 사람들 손에 장례를 맡겨야 하느냐”며 “우리 손으로 노 대통령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겠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정치권이 통합의 미학 발휘해야” =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서 남긴 또 다른 메시지는 ‘갈등해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며 ‘관용’을 촉구했다. ‘갈등’을 한 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재임내내’갈등의 리더십’으로 비판받았고 결국 ‘갈등’의 희생양이 됐지만, 그는 ‘갈등해소’를 죽음으로 호소한 것이다.
이 유지는 국민장이라는 장례형식을 통해 노사모만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화해와 용서 관용이 이루어진 상생의 미래로 가자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조문을 마친 후 내일신문 기자와 만나 “조문을 못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다,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원장은 “국가발전의 걸림돌이었던 대립갈등을 넘어 국격에 걸맞는 위상정립을 위해 정치권이 통합의 미학을 발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명박정부도 참여하고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세워지며 전국민의 장례행사로 결정된 ‘7일간의 국민장’은 노 전대통령이 당대에 이룩한 업적과 동시에 새롭게 제기된 시대적 과제가 부딪히고 충돌하며 방향을 모색하는 장을 열 것이다.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인터뷰 - 노정연 부부 출석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서거 통해 우리 사회에 과제 제기”
국민적 애도물결은 ‘사람에 대한 예의’ 갈구하는 목마름의 표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 용산구 청파감리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다.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이 천주교 세례를 받고 어머니 권양숙 여사가 독실한 불교신자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연씨는 청년 시절부터 청파감리교회를 다닌 남편 곽상언 변호사의 인도로 결혼 이후부터 출석하게 됐다고 한다.
25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을 문상하고 정연씨를 만난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담임목사는 “검찰 수사 이후 교회에 거의 나오지 못했다”며 “정연씨 부부를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고 말했다.

-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어떻게 봐야 하나.
우리 사회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기만 할뿐 불통을 소통으로 만드는 통합의 기술이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로고스다. 로고스는 말, 담론이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더뎌도 함께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권위를 타파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목도했다. 자신이 추구한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본 것이다. 이를 보며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느꼈을 수 있을 것이다. 유서에서도 답답함을 호소하지 않았나.

- 원망도 많고 분노도 많다.
일부 노사모 회원들의 격앙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허망하게 갔는데 오죽하랴. 하지만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뜻은 아니지 않나.

-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데.
노신의 이야기 중 썩은 사과를 먹는 법이 있다. 썩은 사과는 썩은 부분만 베어내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조금 섞었다고 모두 버리면 안된다. 설득하고 소통하고 좋은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백을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는 설득하고 통합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 이번 일은 우리 시대의 목마름을 그대로 보여줬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세상에 대한 목마름 말이다.

- 우리들에게 남은 과제도 많은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의도를 읽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역사발전의 계기로 파악해야 한다. 죽음을 통해 제기된 과제를 붙잡고 가야 한다.

- 유족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해 줬나.
유족들의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돌아가신 분과 유족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이번 일이 고통스런 계기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기도했다.

김 목사는 노 전대통령 서거 다음날인 24일 ‘말이 끊어진 자리’라는 주일예배 설교에서 노자의 ‘치인사천 막약색(治人事天 莫若嗇·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한 것이 없다)’이라는 경구로 거칠고 사나워진 우리 사회를 비판했다. “서있는 자리가 다르다고 함부로 규정하고, 헐뜯고 상처내고 모욕 주고 사지로 몰아넣는 야수적 현실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를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진단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진 세상을 치유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설교했다. “그의 죽음은 앞으로도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고도 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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