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교수의이산가족 이야기<40·끝>

남북의 경계를 넘는 인술

지역내일 2001-07-30 (수정 2001-07-31 오전 10:51:12)
의사가 베푸는 어진 의료행위를 일러 ‘인술’이라 한다. 그 인술의 대명사로 이런저런 간행물에서 잊어버릴 만하면 다시 목도하게 되는 분이 바로 장기려 박사이다.

인술의 대명사가 된 장기려 박사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은 이야기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좋은 생각’이란 책의 이달 호에, 또 하나 그분의 숨은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장기려 박사는 ‘한번도 의사를 못보고 죽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뒷산 바윗돌처럼 서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라고 의사가 된 동기를 밝힌 분이다. 장 박사는 평생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1951년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웠을 때, 가진 것이라고는 유엔 민사원조처에서 주는 하루 50인분의 약과 자신을 돕는 11명의 병원식구들 뿐이었지만, 이 병원에서는 날마다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무료로 돌봤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렵기만 했다. 특히 병원 직원들의 월급이 문제였다. 모두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고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었지만, 최소한 생계는 해결되어야 할 일이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전쟁통에 병원 직원들과 그들에게 딸린 부양가족이 모두 44명이었는데, 장 박사는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처럼 미국의 한 선교회에서 매달 500달러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병원 식구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월급은 식구 수대로 나눕시다”
‘이 돈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내가 원장이라고 해서 더 많이 가져가는 것도 공평치 않고, 또 같이 나누는 것도 공평치 않다. 딸린 식구가 열 명인 사람도 있는데….’
결국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월급은 식구 수대로 합시다. 식구 수대로 먹을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오히려 직원들이 “원장님, 좀 이상하잖습니까?”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장 박사는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뭐가 이상한가? 난 아들하고 둘밖에 없는데, 돈 쓸 일이 뭐 있나?” 그러니 아주 작은 월급이었지만, 병원 직원들이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들의 손끝 하나 하나에는 환자를 대하는 정성이 가득했다.
인간적 감동이 어진 의술을 이끌고 나간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살아있는 인술의 모범을 보인 장 박사가 북한에 부인과 가족을 두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월남한 실향민이라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장 박사는 남한에서 일생동안 재혼하지 않고 수절하며,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살았다. 아내가 보고싶을 때마다 전달될 길도 없는 편지를 써서 모아 두었다.
남북간에 공식적인 교환 방문의 물꼬가 트이기 전에 고향과 가족을 찾아갈 길이 있었지만, 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다녀오라고 권유했지만, 의술에서 그러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차례를 미루고 먼저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숙원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이 분단의 시대에 살아있는 교훈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서울과 평양의 교환 방문에서, 그분의 아드님이 의사의 신분으로 평양을 갔고 어렸을 때 헤어졌던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소식과 빛 바랜 편지들을 전했다. 이토록 신실하고 겸손한 인품 앞에서, 그 간절한 소망을 가로막던 완강한 이데올로기도 허망한 세월도 모두 빛을 잃었다. 그분의 삶은 이 분단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살아있는 교훈이 되었다. 그는 인술로써 남북의 경계를 초월해 버렸다.
이달 초 김진복 백병원 의료원장이 북한에 들어가, 위암을 앓고 있는 북한 환자의 수술을 집도했다. 남북 최초의 의료교류라고 해야할까? 국제위암학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 원장은 지난 3일부터 7일까지의 방북기간 중, 국제로터리 등의 모금으로 15만달러 상당의 의료기기를 평양의학대학에 기증하기도 했다.
수술 받은 환자는 경과가 좋다는 뒷소식이 전해져 왔다. 이처럼 좋은 소식들이 수시로 오가는, 아니 그것이 소식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의 차원이 되는 날이 앞당겨졌으면 좋겠다. 남북의 저 굳고도 질긴 인위적 장벽을 무너뜨릴 힘, 그 힘이 분명 이처럼 따뜻한 손길로 건네어지는 인술 가운데에도 있을 것이다.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국장
/경희대 교수/kart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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