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이 민생이다] ①재테크만 있고 노후는 없다?
‘장수리스크’ 퇴직연금으로 풀자
은퇴자 태반 노후대비 미리 안 해 / 몰아주는 퇴직금으로 부동산 ‘올인’ / 떼일 걱정 없고 꾸준한 퇴직연금이 대안
지역내일
2009-08-18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7%에 달하는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다. 18년 후인 2018년에는 14.3%(고령사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24년, 프랑스는 115년 걸렸다. 세계 최고 속도다.
‘장수리스크’도 세계 최고다. 수명 길어지고 은퇴가 빨라지면서 준비 안된 노후가 급격히 길어지는 것.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장수리스크는 0.87로 미국(0.37), 일본(0.35)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예상보다 은퇴기간이 약 25년(87%)가량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은퇴자 74% “은퇴 전까지 노후 준비 안 해” =
그러나 은퇴준비 현황과 인식을 살펴보면 고령화 속도가 무색하다.
연구소가 올 초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은퇴자의 74.4%는 은퇴 전까지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이전에 준비하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살림살이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49.2%는 현재 소득으로 “겨우 기초생계만 가능하다”, 11.6%는 그조차 어렵다고 답했다. 돈이 모자란 이유로는 59.2%가 ‘자녀에 대한 과다한 투자’ 37.5%가 ‘낮은 소득’, 28.3%가 ‘은퇴준비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꼽았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 또한 은퇴준비가 늦은 만큼 줄었다. 은퇴준비를 40대 이전에 한 경우 월평균 소득이 238만원에 달한 반면 은퇴 때까지 준비하지 않은 경우 175만원에 불과했던 것.
◆부동산에 ‘올인’ 불안한 노후 =
노후 준비 방법도 문제다. 은퇴자 중 76.2%는 은퇴자산 축적 수단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예금·적금은 6.8%, 퇴직금·퇴직연금은 5.2%로 미미했다.
그러나 이런 투자방식은 가격변동성이 높아 불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일 ''국내 가계 자산이 불안하다''는 보고서에서 “가계 자산 중 상당부분이 시장가격 변화에 민감하다”며 “이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2006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 평균 자산(2억8112만원) 가운데 부동산이 76.8%며 전ㆍ월세 보증금을 부동산으로 간주하면 부동산 비중은 81%가 된다. 이는 미국(33.2%) 일본(39.0%) 영국(54.0%) 등 선진국보다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비중이 월등히 높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주택시장은 공급과잉 등 하락 압력과 정책 당국의 부양책 등 상승압력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집값이 다시 하락할 경우 부동산 가격이 급변해 가계의 재무상태가 크게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몰아주는’ 퇴직금의 2가지 함정 =
이처럼 ‘척박한’ 노후준비 현실은 기존 퇴직금 제도의 불안한 수급권과 ‘몰아주기’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기업이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의 60%가량을 사내에, 사외에 40%가량을 유보하고 있다. 사내 유보자금은 적지 않은 부분이 회사 운전자금으로 활용된다. 회사 사정이 악화될 경우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 실제로 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3000억원 안팎의 퇴직금이 체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을 한 번에 목돈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직이 잦기 때문이다. 개인은 당장의 목돈을 만질 수 있어 일견 ‘누이좋고 매부 좋은’ 듯하지만 결과는 노후자산 부실이다. 한국노동교육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53.1%는 퇴직금을 노후 아닌 당장의 생활비로 소진하고 있다. 저축·투자 비율은 20.9%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퇴직금누진제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해 기업들은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강화된 수급권·안정성·세제혜택…퇴직연금이 대안 =
아직은 퇴직금제와 병행되고 있지만 2010년 이후 퇴직연금제가 본격 실시되면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높다. 회사가 퇴직금을 외부 금융기관에 맡겨두기 때문에 사업장이 도산해도 떼일 염려가 없고 은퇴시까지 중간정산을 제한함으로써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낸 후 지급받는 급여로 투자하는 개인연금과 달리 퇴직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현재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사업장 수는 전체(5인 이상 사업장)의 10.6%(5만4951개) 수준이다. 정부는 연금 수급권을 강화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류재광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팀장은 “수명이 길어지고 은퇴시기가 빨라지면서 부유한 노후는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며 “퇴직연금은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안정적인 노후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7%에 달하는 고령화 사회에 도달했다. 18년 후인 2018년에는 14.3%(고령사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24년, 프랑스는 115년 걸렸다. 세계 최고 속도다.
‘장수리스크’도 세계 최고다. 수명 길어지고 은퇴가 빨라지면서 준비 안된 노후가 급격히 길어지는 것.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장수리스크는 0.87로 미국(0.37), 일본(0.35)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예상보다 은퇴기간이 약 25년(87%)가량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은퇴자 74% “은퇴 전까지 노후 준비 안 해” =
그러나 은퇴준비 현황과 인식을 살펴보면 고령화 속도가 무색하다.
연구소가 올 초 55세 이상 은퇴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은퇴자의 74.4%는 은퇴 전까지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이전에 준비하는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살림살이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49.2%는 현재 소득으로 “겨우 기초생계만 가능하다”, 11.6%는 그조차 어렵다고 답했다. 돈이 모자란 이유로는 59.2%가 ‘자녀에 대한 과다한 투자’ 37.5%가 ‘낮은 소득’, 28.3%가 ‘은퇴준비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꼽았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 또한 은퇴준비가 늦은 만큼 줄었다. 은퇴준비를 40대 이전에 한 경우 월평균 소득이 238만원에 달한 반면 은퇴 때까지 준비하지 않은 경우 175만원에 불과했던 것.
◆부동산에 ‘올인’ 불안한 노후 =
노후 준비 방법도 문제다. 은퇴자 중 76.2%는 은퇴자산 축적 수단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예금·적금은 6.8%, 퇴직금·퇴직연금은 5.2%로 미미했다.
그러나 이런 투자방식은 가격변동성이 높아 불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일 ''국내 가계 자산이 불안하다''는 보고서에서 “가계 자산 중 상당부분이 시장가격 변화에 민감하다”며 “이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2006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 평균 자산(2억8112만원) 가운데 부동산이 76.8%며 전ㆍ월세 보증금을 부동산으로 간주하면 부동산 비중은 81%가 된다. 이는 미국(33.2%) 일본(39.0%) 영국(54.0%) 등 선진국보다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비중이 월등히 높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주택시장은 공급과잉 등 하락 압력과 정책 당국의 부양책 등 상승압력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집값이 다시 하락할 경우 부동산 가격이 급변해 가계의 재무상태가 크게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몰아주는’ 퇴직금의 2가지 함정 =
이처럼 ‘척박한’ 노후준비 현실은 기존 퇴직금 제도의 불안한 수급권과 ‘몰아주기’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기업이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의 60%가량을 사내에, 사외에 40%가량을 유보하고 있다. 사내 유보자금은 적지 않은 부분이 회사 운전자금으로 활용된다. 회사 사정이 악화될 경우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 실제로 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3000억원 안팎의 퇴직금이 체불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을 한 번에 목돈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직이 잦기 때문이다. 개인은 당장의 목돈을 만질 수 있어 일견 ‘누이좋고 매부 좋은’ 듯하지만 결과는 노후자산 부실이다. 한국노동교육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53.1%는 퇴직금을 노후 아닌 당장의 생활비로 소진하고 있다. 저축·투자 비율은 20.9%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퇴직금누진제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해 기업들은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강화된 수급권·안정성·세제혜택…퇴직연금이 대안 =
아직은 퇴직금제와 병행되고 있지만 2010년 이후 퇴직연금제가 본격 실시되면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높다. 회사가 퇴직금을 외부 금융기관에 맡겨두기 때문에 사업장이 도산해도 떼일 염려가 없고 은퇴시까지 중간정산을 제한함으로써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낸 후 지급받는 급여로 투자하는 개인연금과 달리 퇴직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현재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사업장 수는 전체(5인 이상 사업장)의 10.6%(5만4951개) 수준이다. 정부는 연금 수급권을 강화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류재광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팀장은 “수명이 길어지고 은퇴시기가 빨라지면서 부유한 노후는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며 “퇴직연금은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안정적인 노후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