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함정
김진동 (본지 객원 논설위원)
지난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장년의 L씨는 고민 끝에 퇴직금을 털고 은행대출을 보태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다. 그러나 혹심한 불경기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창업 7개월만에 은행빚 8000만원을 짊어진 채 문을 닫았다. 끝내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년의 K씨(여)는 지난 5월 해고통지를 받았다. 특별한 기능을 갖지 못한 그는 입주 가사도우미로 전업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을 친정과 시집에 얼마간 맡기기로 했다. 졸지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에서도 힘겹게나마 버텨왔던 서민들이 금융위기와 장기불황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요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수출 내수 등 각종 지표가 호전되고 있다. 소비심리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도 전월에 비해서는 플러스 행진을 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버블이 걱정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고 부동산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투자와 고용만 주춤거릴뿐 지표경제는 눈에 띠게 개선되고 있다. 세계가 한국경제의 회복세를 부러워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자영업자 폐업, 비정규직 해고
그러나 서민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확장을 통한 부양책을 쓴 결과이지만 그나마 아랫목만 데워졌을뿐 윗목은 여전히 냉골이다. 냉골이다 못해 찬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소득과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서민생활은 갈수록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불어닥친 금융위기 한파는 서민들에겐 더 매서운 삭풍이었다. 취업의 변두리에 있는 비정규직은 해고를 당하고 자영업자들은 지독한 불경기에 버틸 힘이 없다. 올해 초 두달 사이에 42만명의 자영업자가 도산하거나 폐업을 했다. 2004년 카드대란 때보다 더 혹심한 자영업경기로 자영업자의 몰락이 가시화되는 징조다.
허지만 대기업과 대형 자영업자는 되레 소득이 늘었다. 주식과 부동산 값이 급등하여 자산가와 고소득층의 지갑은 더욱 두둑해졌다.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은 머니게임장이다. 부자는 머니게임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그 사이에서 유동성 여유가 없는 서민들은 패자로써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을 맛봐야 한다.
그로 인해서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소득격차가 10.68배로 벌어졌다. 정부 감세로 줄어든 세금이 가처분소득으로 이전되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소득의 양극화는 더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소득불균형은 지니계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1999년 0.303이던 지니계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지난해에는 0.325까지 치솟았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시 일용직 계약직 등 한계계층이 가장 먼저 직장을 잃고 영세자영업자의 도산도 잇달아 서민층 근로소득이 급감한 반면 고소득층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급등으로 과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서민들은 소득이 줄면서 빚이 늘고 이자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집계한 6월까지의 개인워크아웃 상담건수는 34만5천여명에 이른다. 작년 상반기 16만4천여건에 비해 2배 이상 폭증했다. 올 연말에 가면 지난 2004년 카드대란 사태 때의 76만 5천여건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표경기는 완연하게 호전되고 있다지만 서민생활은 빚더미에 올라 앉아 이자도 못 갚는 고통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남는다.
양극화 함정은 소득격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고용 양극화, 산업 양극화, 자산 양극화 등이 바이러스처럼 확산되어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완연하게 갈라진 일자리 양극화는 소득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시킬뿐 아니라 사회갈등의 씨앗으로 자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끝내는 중산층을 허물어뜨리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중산층 회복에 초점 맞춰야
산업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수출 대기업은 실적이나 경쟁력 측면에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평가되지만 중소기업은 아직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고사위험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양극화 개선에 정치 경제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뒤늦게 내세운 친서민 정책은 중산층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산층 회복 없이 정치 사회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양극화 해소 없이 경제살리기는 허구에 불과하다. 경제가 살아난다해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 지속적인 성장에 덫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김진동 (본지 객원 논설위원)
지난해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장년의 L씨는 고민 끝에 퇴직금을 털고 은행대출을 보태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다. 그러나 혹심한 불경기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창업 7개월만에 은행빚 8000만원을 짊어진 채 문을 닫았다. 끝내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년의 K씨(여)는 지난 5월 해고통지를 받았다. 특별한 기능을 갖지 못한 그는 입주 가사도우미로 전업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돌볼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을 친정과 시집에 얼마간 맡기기로 했다. 졸지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에서도 힘겹게나마 버텨왔던 서민들이 금융위기와 장기불황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다.
요즘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수출 내수 등 각종 지표가 호전되고 있다. 소비심리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도 전월에 비해서는 플러스 행진을 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버블이 걱정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고 부동산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투자와 고용만 주춤거릴뿐 지표경제는 눈에 띠게 개선되고 있다. 세계가 한국경제의 회복세를 부러워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자영업자 폐업, 비정규직 해고
그러나 서민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린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확장을 통한 부양책을 쓴 결과이지만 그나마 아랫목만 데워졌을뿐 윗목은 여전히 냉골이다. 냉골이다 못해 찬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소득과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서민생활은 갈수록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불어닥친 금융위기 한파는 서민들에겐 더 매서운 삭풍이었다. 취업의 변두리에 있는 비정규직은 해고를 당하고 자영업자들은 지독한 불경기에 버틸 힘이 없다. 올해 초 두달 사이에 42만명의 자영업자가 도산하거나 폐업을 했다. 2004년 카드대란 때보다 더 혹심한 자영업경기로 자영업자의 몰락이 가시화되는 징조다.
허지만 대기업과 대형 자영업자는 되레 소득이 늘었다. 주식과 부동산 값이 급등하여 자산가와 고소득층의 지갑은 더욱 두둑해졌다.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은 머니게임장이다. 부자는 머니게임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그 사이에서 유동성 여유가 없는 서민들은 패자로써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을 맛봐야 한다.
그로 인해서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소득격차가 10.68배로 벌어졌다. 정부 감세로 줄어든 세금이 가처분소득으로 이전되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소득의 양극화는 더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소득불균형은 지니계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1999년 0.303이던 지니계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지난해에는 0.325까지 치솟았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임시 일용직 계약직 등 한계계층이 가장 먼저 직장을 잃고 영세자영업자의 도산도 잇달아 서민층 근로소득이 급감한 반면 고소득층은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급등으로 과실을 키웠다는 얘기다.
서민들은 소득이 줄면서 빚이 늘고 이자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집계한 6월까지의 개인워크아웃 상담건수는 34만5천여명에 이른다. 작년 상반기 16만4천여건에 비해 2배 이상 폭증했다. 올 연말에 가면 지난 2004년 카드대란 사태 때의 76만 5천여건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표경기는 완연하게 호전되고 있다지만 서민생활은 빚더미에 올라 앉아 이자도 못 갚는 고통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남는다.
양극화 함정은 소득격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고용 양극화, 산업 양극화, 자산 양극화 등이 바이러스처럼 확산되어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완연하게 갈라진 일자리 양극화는 소득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시킬뿐 아니라 사회갈등의 씨앗으로 자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끝내는 중산층을 허물어뜨리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중산층 회복에 초점 맞춰야
산업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수출 대기업은 실적이나 경쟁력 측면에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평가되지만 중소기업은 아직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고사위험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양극화 개선에 정치 경제적 명운을 걸어야 한다. 뒤늦게 내세운 친서민 정책은 중산층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산층 회복 없이 정치 사회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양극화 해소 없이 경제살리기는 허구에 불과하다. 경제가 살아난다해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 지속적인 성장에 덫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