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짜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예산을 짜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YS의 재정경제원 시절, 해마다 4월이 되면 예산부서마다 팀을 짜 오랜 기간 훈련을 한 뒤 축구대회를 벌이곤 했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몸을 단단히 만들어야 여름부터 다음해 예산안을 만드는 힘든 작업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시즌이 되면 한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타가기 위한 각 부처와 지자체,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로비공세와 압박이 들어온다. 이때 예산부서 관계자들은 안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한푼이라도 허튼 돈이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말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야전침대를 갔다 놓고 밤샘을 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런 ''예산 지킴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출범초에는 ''짠돌이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부처마다 10% 예산을 절감하라고 지시했고, 예산낭비를 막는 ''작은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정부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경기 급락을 막는 데 성공했으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올해에만 57조원의 재정적자가 예상될 정도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이러다가 재정이 거덜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잇따랐다.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25일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10조5천억원의 세수를 확충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한때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2차분 법인세-고소득층 소득세 인하를 유보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재정적자를 가장 확실히 줄일 수 있는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수혜자들의 강력 저항에 부딪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결국 내년의 소득세와 법인세율 2차 인하를 예정대로 진행하되 비과세-감면혜택 축소 등을 통해 향후 3년간 10조5천억원의 세수를 확충하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으로 이명박 정권 5년간 98조9천억원의 세수가 감소하는 것(KDI 추산치)과 비교하면 너무 빈약한 규모다. 또한 이번 세수확충안에는 가전제품에 대한 에너지세 부과, 전세값 과세, 자동차학원 과세 등이 서민-중산층 등에게 부담이 전가될 과세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민주당은 즉각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중산층 증세 개편안''"이라고 정부를 질타하고 나섰다. 이용섭 의원은 "정부는 내년도 세수부족액 23조원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산층 증세''의 대표적인 사례로 ▲에어컨, 냉장고 등에 대한 5% 개별소비세 부과 ▲주택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 과세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액 축소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세율인하 등을 꼽았다.
예산 짜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이뿐이 아니다. 집권여당 의원들까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맹공을 퍼붓고 있다. 내년도 4대강 사업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바람에 민생예산, 지역SOC예산이 깎이자,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거냐", "정권을 내주겠다는 거냐"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같은 비난공세에는 대다수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는 지자체장들도 가세하고 있다. 하두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기획재정부에게 제발 내달초 열릴 의원 연찬회에 와서 의원들을 진정시켜 달라고 SOS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제 생명선이 걸려있는 까닭에 "이번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애꿎은 예산부처가 몰매를 맞아야 할 판이다.
예산 짜는 사람들은 그동안 나라 재정을 튼실히 지켜왔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마지막 투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각부처 입장에선 원성의 표현이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칭찬하는 소리였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 기가 축 쳐진 분위기다. 이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외풍을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벼랑끝으로 모는 압박이 너무나 거세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물급 총리''를 기용하기 위해 막판 고심중이라 한다. 거론되는 일부 인사들을 보면 분명 거물급이다. 제대로 된 거물급을 쓰기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그 거물급 총리는 가장 먼저 재정상태부터 들여다 보길 바란다. 그러면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보일 것이다. 더이상 재정이 망가져선 안된다. 아울러 예산 짜는 사람들의 자긍심도 지켜줘야 한다. 지금 그들은 옆에서 보기에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다.
박태견(<뷰스앤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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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예산>
예산을 짜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YS의 재정경제원 시절, 해마다 4월이 되면 예산부서마다 팀을 짜 오랜 기간 훈련을 한 뒤 축구대회를 벌이곤 했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몸을 단단히 만들어야 여름부터 다음해 예산안을 만드는 힘든 작업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시즌이 되면 한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타가기 위한 각 부처와 지자체,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로비공세와 압박이 들어온다. 이때 예산부서 관계자들은 안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한푼이라도 허튼 돈이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말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야전침대를 갔다 놓고 밤샘을 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런 ''예산 지킴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출범초에는 ''짠돌이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부처마다 10% 예산을 절감하라고 지시했고, 예산낭비를 막는 ''작은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의 기대가 컸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난 정부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경기 급락을 막는 데 성공했으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올해에만 57조원의 재정적자가 예상될 정도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이러다가 재정이 거덜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잇따랐다.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25일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10조5천억원의 세수를 확충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한때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2차분 법인세-고소득층 소득세 인하를 유보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재정적자를 가장 확실히 줄일 수 있는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수혜자들의 강력 저항에 부딪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결국 내년의 소득세와 법인세율 2차 인하를 예정대로 진행하되 비과세-감면혜택 축소 등을 통해 향후 3년간 10조5천억원의 세수를 확충하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으로 이명박 정권 5년간 98조9천억원의 세수가 감소하는 것(KDI 추산치)과 비교하면 너무 빈약한 규모다. 또한 이번 세수확충안에는 가전제품에 대한 에너지세 부과, 전세값 과세, 자동차학원 과세 등이 서민-중산층 등에게 부담이 전가될 과세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었다. 특히 민주당은 즉각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한 `중산층 증세 개편안''"이라고 정부를 질타하고 나섰다. 이용섭 의원은 "정부는 내년도 세수부족액 23조원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산층 증세''의 대표적인 사례로 ▲에어컨, 냉장고 등에 대한 5% 개별소비세 부과 ▲주택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 과세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액 축소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세율인하 등을 꼽았다.
예산 짜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이뿐이 아니다. 집권여당 의원들까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맹공을 퍼붓고 있다. 내년도 4대강 사업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바람에 민생예산, 지역SOC예산이 깎이자,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거냐", "정권을 내주겠다는 거냐"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같은 비난공세에는 대다수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는 지자체장들도 가세하고 있다. 하두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기획재정부에게 제발 내달초 열릴 의원 연찬회에 와서 의원들을 진정시켜 달라고 SOS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제 생명선이 걸려있는 까닭에 "이번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애꿎은 예산부처가 몰매를 맞아야 할 판이다.
예산 짜는 사람들은 그동안 나라 재정을 튼실히 지켜왔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마지막 투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각부처 입장에선 원성의 표현이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칭찬하는 소리였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 기가 축 쳐진 분위기다. 이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외풍을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벼랑끝으로 모는 압박이 너무나 거세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물급 총리''를 기용하기 위해 막판 고심중이라 한다. 거론되는 일부 인사들을 보면 분명 거물급이다. 제대로 된 거물급을 쓰기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그 거물급 총리는 가장 먼저 재정상태부터 들여다 보길 바란다. 그러면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보일 것이다. 더이상 재정이 망가져선 안된다. 아울러 예산 짜는 사람들의 자긍심도 지켜줘야 한다. 지금 그들은 옆에서 보기에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다.
박태견(<뷰스앤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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