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을 지나며
차미례 (언론인, 번역가·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중학생 때 내가 책가방을 들고 뛰어 건너던 세종로 네거리엔 아직 지하도가 없었다. 단출한 2차선에 교통량도 많지 않던 광화문거리에서, 우리들은 요즘처럼 넓지 않고 얌전하게 줄이 그어진 횡단선을 따라 건너다녔다. 급할 땐 대각선 질주를 하기도 했다.
외국 대통령의 방한 때마다 길가에 전교생이 동원되어(부근 학교마다 지정장소가 있었다) 태극기를 흔들던 몇해 동안, 주변 길이 점점 넓혀지고 지하도가 생기고 지상 횡단보도는 없어졌다. 부근의 다른 건널목도 계단이 많고 높직한 육교로 대치되었다. 보행자들이 밀려나고 차량소통 위주의 도시교통정책이 본격화, 반세기 가까이 도심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여년 뒤 2층짜리 신문회관이 헐린 뒤 뒤로 훌쩍 물러난 고층의 프레스센터로 변하고 세종문화회관 주변 건물들 앞길도 계속 넓어졌다. 서울시는 토지 보상금과 공사비 등 천문학적 거금과 수십년의 세월을 바쳐 세종로 거리를 가장 넓고 큰 서울의 중심축 도로로 만들었다. 청와대 앞길에 걸맞는 위용을 갖춘 제왕적 대로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지상 횡단보도가 복원되고 월드컵 응원 열풍 이후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이 조성되면서 ‘보행자의 권리’가 다소 복권되었지만, ‘광장’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시민의 광장이라는 명분을 두고 이를 만든 당국과 이를 이용하려는 시민과의 견해차가 너무 커서 그렇다. 30일로 개장 한달을 맞은 광화문광장에 214만명이 다녀갔다고 자축 분위기지만, 시위라도 할까봐 너무 제약을 해놓은 ‘시민의 광장’은 무리가 있다. 영화관객처럼 탐방객수 만으로 성공을 점치긴 어렵다.
상습정체되는 ‘광화문대로’
본래 ‘광장문화’의 원조 격인 옛 서구의 광장은 도시나 마을 구조상 많은 길들이 한데 모이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집합하는 생활공간이었다. 광장 자체도 흐름과 모임의 결과여서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다.
현대도시에서의 ‘광장’은 미셸 라공 같은 도시학자의 지적대로 중앙집권화한 도시, 경제권력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거대도시 속 군중의 집합을 염두에 둔 파시시트 또는 사회주의 국가의 광장은 도심부를 찢어 넓힌 유난히 더 크고 넓은 거대광장이 되기도 했다. 천안문광장 같은 경우는 그 극치다.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재현해서 국가 중심축으로 되살린 것’ ‘아무 제약과 제한 없이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충되는 주장 아래 서울시가 밀어붙인 ‘작품’이다. 오세훈 시장이 청계천에 이어 화끈한 오세훈표 업적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시달린 결과라는 설도 있다.
문제는 교통의 중심축인 광화문대로의 차량통행을 양쪽에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운데 섬처럼 만들어진 광장의 기능이다. 세검정에서 시청앞까지 자동차로 15분이면 가던 길이 광장 조성후 30~40분 길이 되었다. 확 뚫리던 ‘광화문대로’가 상습정체 병목이 된 것이다.
차도와 광장이 구분되지 않는 돌바닥, 분수 때문에 마른 길에서 갑자기 젖은 도로면을 만나는 위험, 무엇보다 어린이 놀이터와 구분되지 않는 성격탓에 교통사고 위험도 크다. 차들이 길가쪽으로 몰리니 교통정체는 더 극심할 수밖에 없다.
갖가지 조형물은 가까이 찾는 관람객에게는 보이나, 좀 떨어져서 보면 삭막한 돌판 광장에 여기 저기 설치물이 흩어져 있고 녹색 나무 한그루 없는 어수선한 장터처럼 보인다.
녹색 없는 어수선한 장터
공들인 중앙화단은 수만개의 화분을 부지런히 교체하며 형태를 유지할 경우 시청앞 서울광장의 잔디처럼 엄청난 유지비를 요구하는 ‘돈먹는 하마’가 되리라는 우려도 많다.
수십년 넓힌 도로복판을 갑자기 징발당한 뒤 좁은 찻길에서 매일 기다시피 하는 내 느낌엔 광화문광장은 가로수와 중앙분리대가 있던 옛 광화문 도로에 비해 조금도 정답지 않다. 시민의 광장이기엔 강한 주장과 전시효과를 담은 조작적 시설물이 너무 많아서다.
유명장소라면 한번쯤 꼭 가보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하더라도 다시 가고 싶고 매일 가고 싶은 시민의 광장이 될 수 있을까. 도로 속 ‘섬’에다 퍼부은 아까운 내 세금의 ‘밑천’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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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례 (언론인, 번역가·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중학생 때 내가 책가방을 들고 뛰어 건너던 세종로 네거리엔 아직 지하도가 없었다. 단출한 2차선에 교통량도 많지 않던 광화문거리에서, 우리들은 요즘처럼 넓지 않고 얌전하게 줄이 그어진 횡단선을 따라 건너다녔다. 급할 땐 대각선 질주를 하기도 했다.
외국 대통령의 방한 때마다 길가에 전교생이 동원되어(부근 학교마다 지정장소가 있었다) 태극기를 흔들던 몇해 동안, 주변 길이 점점 넓혀지고 지하도가 생기고 지상 횡단보도는 없어졌다. 부근의 다른 건널목도 계단이 많고 높직한 육교로 대치되었다. 보행자들이 밀려나고 차량소통 위주의 도시교통정책이 본격화, 반세기 가까이 도심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여년 뒤 2층짜리 신문회관이 헐린 뒤 뒤로 훌쩍 물러난 고층의 프레스센터로 변하고 세종문화회관 주변 건물들 앞길도 계속 넓어졌다. 서울시는 토지 보상금과 공사비 등 천문학적 거금과 수십년의 세월을 바쳐 세종로 거리를 가장 넓고 큰 서울의 중심축 도로로 만들었다. 청와대 앞길에 걸맞는 위용을 갖춘 제왕적 대로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지상 횡단보도가 복원되고 월드컵 응원 열풍 이후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이 조성되면서 ‘보행자의 권리’가 다소 복권되었지만, ‘광장’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시민의 광장이라는 명분을 두고 이를 만든 당국과 이를 이용하려는 시민과의 견해차가 너무 커서 그렇다. 30일로 개장 한달을 맞은 광화문광장에 214만명이 다녀갔다고 자축 분위기지만, 시위라도 할까봐 너무 제약을 해놓은 ‘시민의 광장’은 무리가 있다. 영화관객처럼 탐방객수 만으로 성공을 점치긴 어렵다.
상습정체되는 ‘광화문대로’
본래 ‘광장문화’의 원조 격인 옛 서구의 광장은 도시나 마을 구조상 많은 길들이 한데 모이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집합하는 생활공간이었다. 광장 자체도 흐름과 모임의 결과여서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다.
현대도시에서의 ‘광장’은 미셸 라공 같은 도시학자의 지적대로 중앙집권화한 도시, 경제권력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거대도시 속 군중의 집합을 염두에 둔 파시시트 또는 사회주의 국가의 광장은 도심부를 찢어 넓힌 유난히 더 크고 넓은 거대광장이 되기도 했다. 천안문광장 같은 경우는 그 극치다.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재현해서 국가 중심축으로 되살린 것’ ‘아무 제약과 제한 없이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충되는 주장 아래 서울시가 밀어붙인 ‘작품’이다. 오세훈 시장이 청계천에 이어 화끈한 오세훈표 업적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시달린 결과라는 설도 있다.
문제는 교통의 중심축인 광화문대로의 차량통행을 양쪽에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운데 섬처럼 만들어진 광장의 기능이다. 세검정에서 시청앞까지 자동차로 15분이면 가던 길이 광장 조성후 30~40분 길이 되었다. 확 뚫리던 ‘광화문대로’가 상습정체 병목이 된 것이다.
차도와 광장이 구분되지 않는 돌바닥, 분수 때문에 마른 길에서 갑자기 젖은 도로면을 만나는 위험, 무엇보다 어린이 놀이터와 구분되지 않는 성격탓에 교통사고 위험도 크다. 차들이 길가쪽으로 몰리니 교통정체는 더 극심할 수밖에 없다.
갖가지 조형물은 가까이 찾는 관람객에게는 보이나, 좀 떨어져서 보면 삭막한 돌판 광장에 여기 저기 설치물이 흩어져 있고 녹색 나무 한그루 없는 어수선한 장터처럼 보인다.
녹색 없는 어수선한 장터
공들인 중앙화단은 수만개의 화분을 부지런히 교체하며 형태를 유지할 경우 시청앞 서울광장의 잔디처럼 엄청난 유지비를 요구하는 ‘돈먹는 하마’가 되리라는 우려도 많다.
수십년 넓힌 도로복판을 갑자기 징발당한 뒤 좁은 찻길에서 매일 기다시피 하는 내 느낌엔 광화문광장은 가로수와 중앙분리대가 있던 옛 광화문 도로에 비해 조금도 정답지 않다. 시민의 광장이기엔 강한 주장과 전시효과를 담은 조작적 시설물이 너무 많아서다.
유명장소라면 한번쯤 꼭 가보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하더라도 다시 가고 싶고 매일 가고 싶은 시민의 광장이 될 수 있을까. 도로 속 ‘섬’에다 퍼부은 아까운 내 세금의 ‘밑천’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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