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다움은 버려선 안될 자산 … 긴 세월 땀으로 만든 독일풍 경관
정부가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살고 싶고, 가고 싶은 금수강촌’의 상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경관과 테마가 있는 농촌이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농촌정책은 생활환경정비 및 소득증대에 치중해 왔다”며 “여기에 그동안 소홀했던 환경과 경관사업을 더해 자연과 인간이 이룬 조화로움이 금수강촌에 담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일의 도시근교 농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백조의 호수’전설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내려다본 퓌센의 전경은 호수와 밭이 어우러진 목가적 풍경이다◆로마시대부터 이어오는 라인강변 포도밭 = 독일 라인강 관광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라는 뤼데스하임에서 코블렌쯔까지 60km구간은 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없다. 경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강 양안엔 독일풍의 주택이 끊이지 않는다. 사는 사람도 많고 관광객도 오가지만 이들은 모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닌다.
라인강 상류에서 530km지점에 있는 뤼데스하임의 인구는 9800여명. 로마인들에 의해 와인농사가 시작되었고, 매년 33만7000개의 객실이 여행객으로 채워지는 관광명문이다. 주민 중 20%는 관광업에, 10%는 와인생산에 종사한다. 백포도주로 유명한 곳이지만 70%는 인근 도시로 출퇴근한다. 한국의 도시근교 농촌 모습이다.
뤼데스하임에서 코블렌쯔 구간엔 하이네 시인이 독일 전설을 노래한 로렐라이언덕이 있고,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통일을 기념해 세운 탑도 있다. 강의 양안엔 로마와 중세의 고성도 줄을 이었다.
놀라운 것은 로마시대부터 경작하고 있다는 라인강변의 포도밭이다. 강변엔 포도밭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이들 중엔 경사가 30도 넘는 비탈에 만든 포도밭들도 적지 않다.
폴커 모슬러 뤼데스하임 시장은 “라인강변의 포도밭은 로마시대부터 이어오는 것”이라며 “일조량이 좋고 향이 좋아 수준 높은 고가의 와인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경사지 포도밭이라고 따로 보조금을 주는 것은 없다”며 “옛부터 주민이 스스로 축대를 쌓고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라인강변에 현대식 건물과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없게 했다. 모슬러 시장은 “독일은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시계획법을 따로 두고 있는데 뤼데스하임도 경관을 유지하고 지역의 정체성 훼손을 막기 위해 이 법에 따라 규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강 양안의 주택은 모두 삼각 지붕에 흰색계열의 벽을 갖춘 독일풍으로 튀지 않고 자연과 어울렸다.
◆작은 경영체들의 자유로운 경쟁 = 독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농촌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독점체를 거부한다.
빼어난 경관을 갖춰 매년 100만명(호텔 투숙객 기준)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퓌센에는 큰 호텔이 없다. 파울 라카브 퓌센 시장은 이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고 다양한 호텔이 소비자들의 폭 넓은 선택을 도와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힐튼같은 큰 호텔을 유치할 생각도 없지만, 큰 호텔이 들어오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스템에서 시장경제가 가장 잘 작동한다는 원리는 경제학교과서 뿐 아니라 이들의 생활철학에 깊이 새겨진 듯하다.
퓌센은 1985년 1만3000명까지 줄어든 인구를 늘리기 위해 기업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 중 한 곳도 협상 중이다. 하지만 인구 증가의 주 원인은 경관이다. 라카브 시장은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이 이곳에 살기 위해 온다”며 “관광객으로 왔다 시민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퓌센시는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라카브 시장은 “자연경관 속에 농업·농촌이 있다”며 “산림자원을 가꾸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데 90%는 유럽연합에서 주는 보조금(리더프로젝트)”이라고 밝혔다.
뤼데스하임 = 정연근·표희수 기자 ygjung@naeil.com
[인터뷰]파울 라카브 퓌센 시장
“대형호텔 누구도 원치 않아”
‘퓌센만의 색깔’ 유지 노력 … 주민도 적극 참여
파울 라카브 퓌센 시장과의 만남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런 만남임에도 안내소까지 직접 나와 시장실까지 안내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작고 아담한 집무실과 수수한 옷차림에서 독일식 실용주의가 드러났다.
남부독일에 있는 퓌센은 1만4000여명의 인구를 가진 곳으로 알프스의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자연과 디즈니랜드성을 지을 때 모델이 되었다는 노이슈반슈타인성 등으로 유명하다.
-퓌센엔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오는데 현대식 대형호텔이나 시설을 유치할 계획은 없나
(황당하다는 듯) 왜 그런 질문을 하나.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고 다양한 호텔이 소비자들의 폭 넓은 선택을 도와준다. 값싸면 싼 대로, 사연 있고 유서 깊은 건물은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반대로 대형호텔 몇 개를 유치하면 소비자들이 큰 호텔 기준에 맞춰야 하지 않나. 유명하고 큰 호텔을 유치할 생각도 없고, 또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관광객들의 요구가 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 별로 못 들어봤다. 고급 유명호텔을 찾는다면 굳이 퓌센같은 곳까지 올 필요가 있을까. 퓌센만의 분위기나 특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퓌센만의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에 따른 규제가 많을 것 같은데, 주민들의 불만은 없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겐 이곳만의 특색을 보여줘야 한다. 누구보다 시민들 자신이 이를 잘 알고 있고, 호텔이나 업소 등을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 잘 끌고 가고 있다. 시에선 이들을 지원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청내에 마케팅 담당부서를 두고 있다.
퓌센=표희수·정연근 기자 hsphy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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