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요상하고도 기괴한 날씨가 연일 변색을 하면서 속세를 희롱했다. ‘90년만의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증명해주듯 수개월을 가뭄의 고통과 나락으로 몰아넣는가 싶더니 어느새 돌변해 수개월치 비를 한날 한시에 쏟아부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기묘한 변화에 세인들은 속절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긴 한숨으로 씁슬한 마음을 달랬다.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에서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한풀 꺽이는가 싶더니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지난 7일 한바탕 소나기와 함께 훌쩍 지나갔다. 또 여름이 지나 더위가 가신다
는 처서(處暑)가 다음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절기상 처서는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깍고, 날씨가 선선해져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우리
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세 번째 피서지로 만휴정을 택했다. 어디를 가야할지 선뜻 정하지 못하던차에 그래도 ‘구
관이 명관’인지라 비교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만휴정으로 향했다. 마음 한구석에‘못해도
본전’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만휴정을 접근해보고 싶은 객기도 있었다.
만휴정 방문을 예정한 지난 1일.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여름나기를 위해 산과 물을 찾아 나서는 피서객들로 좁은 도로는 거짓말 조금
보태 개미한마리 지나기 힘들정도였다. 기자는 땟꺼리(대개 기사를 두고 기자들은 이렇게
표현함)를 핑계삼아 떠나는 나들이반 취재반 길이었지만 이왕지사 떠날바에야 조금의 여유
를 찾기로 했다. 마침 길안으로 접어드는 길은 찾는 이들이 적었든지 원할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로변으로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벼들이 왕성한 생육으로 키자람을 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수확을 기약하는 듯 했다.
‘물’이 있어 찾는 곳
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피서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입소문을 통해 한참 주가를 올
리고 있는 길안다리밑에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로 붐볐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수영실력을 뽐내는
어른들 가족의 심심한 먹거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로 길안다리밑은 북새통이었다.
바쁜 걸음이라 차마 발벗고 내려갈 수 없는 일행은 보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애
마(?)는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던 길을 더욱 재촉했다.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났을
까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쪽은 만휴정 왼쪽은 묵계서원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정표라 자칫 지나칠뻔 하기도 했지만 애마는 놓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해주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물길을 찾아 피서객들이 들어서있었다. 자그마한 돌다리를 지나니 오
랜 세월 마을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나무 한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일행을 맞아주
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두갈래로 나뉘었다. 옆자리에 앉아 길을 안내해주던 동행자도 찾은지
가 오래돼 길을 물어야겠다고 했다. 그늘밑에 앉아 피서객 구경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에게
길을 묻자 곧장 앞으로 가라고 했다. 기자는 그리 성능이 좋지 않은 애마를 끌고 한 대만
겨우 지날 수 있도록 나있는 길을 좇아 올랐다. 5분여를 이리비틀 저리비틀거리는 새 만휴
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뿔사 만휴정 가까이 올랐을쯤 때아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애마를 되돌려 세우기가 적당치 않았다. 한참의 궁리 끝에 올라온 형세 그대로 차
를 내려놓기로 했다. 간신히 올라온 좁은 비탈길을 그것도 꽁무니를 뒤로 하고 내려갈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숙력된 운전솜씨로 별탈없이 애마를 안전하게 내려놓았
다. 일행은 차를 놓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간간히 내리던 가랑비도 그쳐 등뒤로는 연신 땀
방울이 흘렀다. 손바닥으로 훔치고 옷깃으로 닦아내도 얼굴은 비를 맞은 듯 흠씬 젖어있었
다. 그렇게 오른지 10여분.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늘과 맛닿은 계곡물
유명지가 그러하듯 만휴정 역시 산과 계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에 터를 잡았다. 한술
더 떠 만휴정은 시원한 물줄기가 쉴새없이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운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만이었다. 통나무 두 개로 엮인 나무다리를 건너 대문을 들어서자 홀로 독서
를 즐기기에는 안성마춤인 정자하나가 떡하니 서있었다. 모진 세월을 만나 비바람에 부대끼
며 살아온 터라 정자곳곳은 생채기를 안고 있었다. 인적의 왕래가 드물었던지 마루에는 쥐
똥이 이리저리 뒹둘고 있었다. 방은 두칸. 요즘으로 치면 아이들 공간으로 이용하기에 적합
할 듯 싶었다. 마루에서 난간을 딛고 내려다본 계곡과 산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했다.
본당을 이리저리 두르던 일행은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웃통을 벗고 아래 계곡으로 향
했다. 물을 양손에 담아 옷 적는줄 모르고 연신 퍼부어댔다.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
로 나왔다. 한참을 계곡물에서 노닐던 일행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리고 시야를 돌려 이곳
저곳을 살폈다. 파아란 하늘과 맛닿은 맑은 계곡물이며 하늘거리는 연분홍 꽃에 수줍게 자
리잡은 만휴정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보백당이 느즈막히 벼슬을 무르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알만했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
는줄 모른다’고 만휴정이 꼭 그러했다. 그 옛날 선조들이 길을 찾아 떠나고 물을 찾아 모
여든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열마디 발린말로 없는재주 부려봐야 사진한컷 그림한장에 못미치
듯, 한손에 읽을꺼리 한움큼 쥐고 수박한덩이 싸서 만휴정에 올라 지나는 세월이랑 벗하며
한때를 보내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에서
맹위를 떨치던 폭염도 한풀 꺽이는가 싶더니 시나브로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지난 7일 한바탕 소나기와 함께 훌쩍 지나갔다. 또 여름이 지나 더위가 가신다
는 처서(處暑)가 다음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절기상 처서는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깍고, 날씨가 선선해져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우리
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세 번째 피서지로 만휴정을 택했다. 어디를 가야할지 선뜻 정하지 못하던차에 그래도 ‘구
관이 명관’인지라 비교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만휴정으로 향했다. 마음 한구석에‘못해도
본전’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만휴정을 접근해보고 싶은 객기도 있었다.
만휴정 방문을 예정한 지난 1일.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평일이었지만 여름나기를 위해 산과 물을 찾아 나서는 피서객들로 좁은 도로는 거짓말 조금
보태 개미한마리 지나기 힘들정도였다. 기자는 땟꺼리(대개 기사를 두고 기자들은 이렇게
표현함)를 핑계삼아 떠나는 나들이반 취재반 길이었지만 이왕지사 떠날바에야 조금의 여유
를 찾기로 했다. 마침 길안으로 접어드는 길은 찾는 이들이 적었든지 원할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로변으로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벼들이 왕성한 생육으로 키자람을 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수확을 기약하는 듯 했다.
‘물’이 있어 찾는 곳
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피서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입소문을 통해 한참 주가를 올
리고 있는 길안다리밑에는 가족단위의 피서객들로 붐볐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형형색색의 텐트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수영실력을 뽐내는
어른들 가족의 심심한 먹거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로 길안다리밑은 북새통이었다.
바쁜 걸음이라 차마 발벗고 내려갈 수 없는 일행은 보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애
마(?)는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던 길을 더욱 재촉했다.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났을
까 목적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쪽은 만휴정 왼쪽은 묵계서원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정표라 자칫 지나칠뻔 하기도 했지만 애마는 놓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해주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물길을 찾아 피서객들이 들어서있었다. 자그마한 돌다리를 지나니 오
랜 세월 마을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나무 한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일행을 맞아주
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두갈래로 나뉘었다. 옆자리에 앉아 길을 안내해주던 동행자도 찾은지
가 오래돼 길을 물어야겠다고 했다. 그늘밑에 앉아 피서객 구경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에게
길을 묻자 곧장 앞으로 가라고 했다. 기자는 그리 성능이 좋지 않은 애마를 끌고 한 대만
겨우 지날 수 있도록 나있는 길을 좇아 올랐다. 5분여를 이리비틀 저리비틀거리는 새 만휴
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뿔사 만휴정 가까이 올랐을쯤 때아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애마를 되돌려 세우기가 적당치 않았다. 한참의 궁리 끝에 올라온 형세 그대로 차
를 내려놓기로 했다. 간신히 올라온 좁은 비탈길을 그것도 꽁무니를 뒤로 하고 내려갈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숙력된 운전솜씨로 별탈없이 애마를 안전하게 내려놓았
다. 일행은 차를 놓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간간히 내리던 가랑비도 그쳐 등뒤로는 연신 땀
방울이 흘렀다. 손바닥으로 훔치고 옷깃으로 닦아내도 얼굴은 비를 맞은 듯 흠씬 젖어있었
다. 그렇게 오른지 10여분.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하늘과 맛닿은 계곡물
유명지가 그러하듯 만휴정 역시 산과 계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에 터를 잡았다. 한술
더 떠 만휴정은 시원한 물줄기가 쉴새없이 흐르는 계곡을 옆에 끼고 있어 운치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만이었다. 통나무 두 개로 엮인 나무다리를 건너 대문을 들어서자 홀로 독서
를 즐기기에는 안성마춤인 정자하나가 떡하니 서있었다. 모진 세월을 만나 비바람에 부대끼
며 살아온 터라 정자곳곳은 생채기를 안고 있었다. 인적의 왕래가 드물었던지 마루에는 쥐
똥이 이리저리 뒹둘고 있었다. 방은 두칸. 요즘으로 치면 아이들 공간으로 이용하기에 적합
할 듯 싶었다. 마루에서 난간을 딛고 내려다본 계곡과 산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
했다.
본당을 이리저리 두르던 일행은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웃통을 벗고 아래 계곡으로 향
했다. 물을 양손에 담아 옷 적는줄 모르고 연신 퍼부어댔다.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
로 나왔다. 한참을 계곡물에서 노닐던 일행은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리고 시야를 돌려 이곳
저곳을 살폈다. 파아란 하늘과 맛닿은 맑은 계곡물이며 하늘거리는 연분홍 꽃에 수줍게 자
리잡은 만휴정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보백당이 느즈막히 벼슬을 무르고 이곳을 찾은 이유를 알만했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
는줄 모른다’고 만휴정이 꼭 그러했다. 그 옛날 선조들이 길을 찾아 떠나고 물을 찾아 모
여든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열마디 발린말로 없는재주 부려봐야 사진한컷 그림한장에 못미치
듯, 한손에 읽을꺼리 한움큼 쥐고 수박한덩이 싸서 만휴정에 올라 지나는 세월이랑 벗하며
한때를 보내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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