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칼럼 7 사단장식 대통령이 더 좋았나?
옛날신문을 읽다보면 오늘 현실과 대비되는 부분을 종종 발견한다. 32년 전 1977년 11월11일 일어난 이리 역(지금의 익산 역) 화약열차 폭발사고도 그중 하나다. 당시 사고 직후 대통령이 한 지시와 요즘 현안에 대한 대통령 지시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리 사고는 화약 호송원이 다이너마이트 상자 위에 촛불을 켜놓고 자는 바람에 역 구내에서 폭약 30톤이 터진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이리시내 1만3천 가옥 중 70%가 넘는 9천5백동이 파손됐고 사망 59명 등 사상자가 1천3백 명에 이른 건국 이래 초유의 대형 사고였다.
사고 다음날인 12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폭발현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바로 이리시청에 들러 긴급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내용이 참구체적이다. 현장에서 즉각 착수할 일을 조목조목 제시했는데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첫째, 가옥 전파 이재민에게 24인용 텐트를 지급하라. 둘째, 사고가 난 이리 역 자리에 녹지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지어 이재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분양하라. 셋째, 농사짓는 이재민에겐 연립주택을 지어주되 겨울에도 공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업자에게 맡겨라. 마지막, 생계가 곤란한 가구에는 2명분의 특별 취로증을 주어라.
박 대통령은 사흘 후 현장을 점검하고 온 청와대 비서관의 보고를 받고도 추가지시를 내린다. 이것 역시 실질적이다. 이리 역사는 새로 지어라, 복구 작업에 나선 공무원에게 규정대로 일당을 주어라는 것이다. 또 사고 인근 전남과 충남북 지사는 급히 토목 도장공을 모집해 현장에 보내되 그 숙식비용은 당해 지사가 부담하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이런 정도 실무적인 일까지 일일이 적시해 지시하는 게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내무 건설 교통부 등 주무장관이 함께 현장에 갔지만 그들의 의견이나 건의와 상관없이 혼자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명령’하는 모습은 바로 독재자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물론 당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 실행되는 유신시대, 긴급조치 시대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24인용 텐트’ 같은 군대식 지시는 사단장이 일선 내무반에 내려와 시시콜콜 명령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모든 일을 일일이 챙기는 집안 큰 어른의 모습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일견 시원시원하지만 사실은 독선적인 그런 일 처리가 요즘 그리워지기도 한다. 특히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정치권의 내홍과 여권의 분열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엊그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의 원안 추진은 절대불가하며 수정안을 찾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에 대해 아직 ‘의미 있는’ 말을 한 바가 없다.
사실 이 문제가 국내정치 최대 이슈로 대두될 때부터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그림자 역할’만 했다. 처음 정운찬 총리내정자와의 면담도 그랬는데 국회에서 의결한 원안대로 추진하면 문제가 많으니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정 총리내정자가 ‘개인 의견’을 기자들에게 밝히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야당들이 일제히 2005년 국회를 통과한 원안대로 세종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도, 여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할 때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눈치 빠른 국민들은 이미 정 총리가 자기 의견 아닌 이대통령 의중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여권은 그런 상태에서 치른 재 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 일어났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를 만나 대통령은 드디어 “세종 시 문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뒤에 숨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피해가거나 뒤에 숨는다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충분히 숙고하고 잘 논의하라’는 말이 숨지 않고 현안에 정면 대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사실 4일 다시 정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국가경쟁력과 통일 후 미래, 지역발전 등을 염두에 둬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것도 꼬투리 잡히지 않을 ‘두리뭉실 좋은 것’만 나열했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세종시 건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대통령이 섣불리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거기다 유신시대와 지금의 대통령 롤도 달라졌다. 사단장식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국민의식도 그때와 다르고 가부장적 대통령에 대한 거부도 많을 것이다. 국회를 통과했지만 꼭 고쳐야 나라에 이득이 된다면 검토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 온갖 의견을 잘 내놔 보좌진을 긴장시키던 대통령이 세종시 건은 ‘찬성’ ‘반대’ ‘원안’ ‘수정’ ‘정부이전’같은 용어는 일체 안 쓰면서 그저 잘 국민 의견을 조율하라니 그게 신기할 따름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옛날신문을 읽다보면 오늘 현실과 대비되는 부분을 종종 발견한다. 32년 전 1977년 11월11일 일어난 이리 역(지금의 익산 역) 화약열차 폭발사고도 그중 하나다. 당시 사고 직후 대통령이 한 지시와 요즘 현안에 대한 대통령 지시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리 사고는 화약 호송원이 다이너마이트 상자 위에 촛불을 켜놓고 자는 바람에 역 구내에서 폭약 30톤이 터진 어처구니없는 참사였다. 이리시내 1만3천 가옥 중 70%가 넘는 9천5백동이 파손됐고 사망 59명 등 사상자가 1천3백 명에 이른 건국 이래 초유의 대형 사고였다.
사고 다음날인 12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폭발현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바로 이리시청에 들러 긴급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내용이 참구체적이다. 현장에서 즉각 착수할 일을 조목조목 제시했는데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첫째, 가옥 전파 이재민에게 24인용 텐트를 지급하라. 둘째, 사고가 난 이리 역 자리에 녹지대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지어 이재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분양하라. 셋째, 농사짓는 이재민에겐 연립주택을 지어주되 겨울에도 공사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업자에게 맡겨라. 마지막, 생계가 곤란한 가구에는 2명분의 특별 취로증을 주어라.
박 대통령은 사흘 후 현장을 점검하고 온 청와대 비서관의 보고를 받고도 추가지시를 내린다. 이것 역시 실질적이다. 이리 역사는 새로 지어라, 복구 작업에 나선 공무원에게 규정대로 일당을 주어라는 것이다. 또 사고 인근 전남과 충남북 지사는 급히 토목 도장공을 모집해 현장에 보내되 그 숙식비용은 당해 지사가 부담하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이런 정도 실무적인 일까지 일일이 적시해 지시하는 게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내무 건설 교통부 등 주무장관이 함께 현장에 갔지만 그들의 의견이나 건의와 상관없이 혼자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명령’하는 모습은 바로 독재자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물론 당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 실행되는 유신시대, 긴급조치 시대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24인용 텐트’ 같은 군대식 지시는 사단장이 일선 내무반에 내려와 시시콜콜 명령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모든 일을 일일이 챙기는 집안 큰 어른의 모습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일견 시원시원하지만 사실은 독선적인 그런 일 처리가 요즘 그리워지기도 한다. 특히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정치권의 내홍과 여권의 분열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엊그제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의 원안 추진은 절대불가하며 수정안을 찾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에 대해 아직 ‘의미 있는’ 말을 한 바가 없다.
사실 이 문제가 국내정치 최대 이슈로 대두될 때부터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은 ‘그림자 역할’만 했다. 처음 정운찬 총리내정자와의 면담도 그랬는데 국회에서 의결한 원안대로 추진하면 문제가 많으니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정 총리내정자가 ‘개인 의견’을 기자들에게 밝히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야당들이 일제히 2005년 국회를 통과한 원안대로 세종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도, 여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할 때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눈치 빠른 국민들은 이미 정 총리가 자기 의견 아닌 이대통령 의중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여권은 그런 상태에서 치른 재 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 일어났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를 만나 대통령은 드디어 “세종 시 문제는 충분히 숙고해서 하는 게 좋으니까 당에서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뒤에 숨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피해가거나 뒤에 숨는다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충분히 숙고하고 잘 논의하라’는 말이 숨지 않고 현안에 정면 대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사실 4일 다시 정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국가경쟁력과 통일 후 미래, 지역발전 등을 염두에 둬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는데 이것도 꼬투리 잡히지 않을 ‘두리뭉실 좋은 것’만 나열했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세종시 건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대통령이 섣불리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거기다 유신시대와 지금의 대통령 롤도 달라졌다. 사단장식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국민의식도 그때와 다르고 가부장적 대통령에 대한 거부도 많을 것이다. 국회를 통과했지만 꼭 고쳐야 나라에 이득이 된다면 검토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 온갖 의견을 잘 내놔 보좌진을 긴장시키던 대통령이 세종시 건은 ‘찬성’ ‘반대’ ‘원안’ ‘수정’ ‘정부이전’같은 용어는 일체 안 쓰면서 그저 잘 국민 의견을 조율하라니 그게 신기할 따름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