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만에 정리한 친일(親日)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 인명사전’이 8일 세상에 나왔다. 해방이 되고 64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친일’(親日)인사들의 면면들이 한권의 책으로(전 3권) 나왔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친일의 단죄가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전 발간을 발표했던 8일에도 ‘사전’에 등재된 인사들의 후손들과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이 발표현장에 나와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난하고 사전발간을 반대했으며 일부 언론들은 사전발간 사실 자체마저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친일이 청산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친일의 실상과 친일인사들의 면면이 일단 정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전’ 편찬은 부끄러운 우리 현대사의 한 대목을 극복해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사전발간에 즈음해 “기나긴 망각의 세월을 딛고 이제서야 역사의 치부를 드러낸 사전편찬은 우리 민족 전체의 참회”라며 “우리 역사의 한 시기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열어갈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감회어린 소회를 밝혔다.
한국은 식민역사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
친일문제를 지금까지 거론하고 있는것부터가 비극적인 일이다.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 친일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했으나 정치적 압박과 경찰의 공공연한 테러로 결국 1년도 안돼 해체됐고 친일단죄는 지금까지 금단의 벽속에 갇히게 됐다. 비록 정부수립 초기라고는 하나 당시의 나라사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36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았으면서도 반세기를 훨씬 넘겨서까지 단 한명의 친일도 청산하지 못한 나라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불과 4년여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는 전후 나치 협력자 767명을 색출해 사형집행했고 2777명을 종신형에 처했다. 역사청산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게 잘한 역사청산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한명의 청산도 못한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상징적으로라도 친일청산의 절차를 밟았더라면 21세기 들어서까지 ‘친일청산’을 붙들고 고뇌해야 할 단초는 없어졌을 것이다.
친일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정리되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2003년 국회에서 관련예산이 삭감되면서 국민들이 성금 7억여원을 모았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회비를 내 사전편찬이라는 결실을 보게됐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정부 아닌 국민이 성금을 모아 ‘친일’을 단죄했다는 의미도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에도 친일청산을 위한 노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가 1993년 ‘친일파 99인’의 행적을 3권의 책으로 낸 일이 있고 이에 앞서 실천문학사는 1986년 ‘친일문학선집’ 2권을 발간, 친일문학의 실상을 소개한 일이 있다.
어두운 역사에 대한 참회 없이 앞으로 갈 수 없어
이번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의 친일행적이 수록돼 있다. 꽤 방대한 양이다. 사전 발표가 있자 일부에서는 명예훼손이라며 법정투쟁을 벌일 태세라고 하나 별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박정희 전대통령측과 언론인 고 장지연씨 유족들이 사전 발간에 앞서 이름을 빼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정부수립 이후 이름을 남긴 사람들 측에서 공적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사리에 맞지 않다. 정부수립 이후 공적이 있다고 해서 친일 행적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이번 사전 발간을 두고 후손들의 불만은 그렇다치고 세칭 진보와 보수의 양진영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하는 것은 안타깝다. 친일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는가. 일부에서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이는 정통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정한 참회없이 역사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임춘웅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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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 인명사전’이 8일 세상에 나왔다. 해방이 되고 64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친일’(親日)인사들의 면면들이 한권의 책으로(전 3권) 나왔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친일의 단죄가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전 발간을 발표했던 8일에도 ‘사전’에 등재된 인사들의 후손들과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이 발표현장에 나와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난하고 사전발간을 반대했으며 일부 언론들은 사전발간 사실 자체마저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친일이 청산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친일의 실상과 친일인사들의 면면이 일단 정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전’ 편찬은 부끄러운 우리 현대사의 한 대목을 극복해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사전발간에 즈음해 “기나긴 망각의 세월을 딛고 이제서야 역사의 치부를 드러낸 사전편찬은 우리 민족 전체의 참회”라며 “우리 역사의 한 시기를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열어갈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감회어린 소회를 밝혔다.
한국은 식민역사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
친일문제를 지금까지 거론하고 있는것부터가 비극적인 일이다.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 친일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했으나 정치적 압박과 경찰의 공공연한 테러로 결국 1년도 안돼 해체됐고 친일단죄는 지금까지 금단의 벽속에 갇히게 됐다. 비록 정부수립 초기라고는 하나 당시의 나라사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36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았으면서도 반세기를 훨씬 넘겨서까지 단 한명의 친일도 청산하지 못한 나라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불과 4년여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는 전후 나치 협력자 767명을 색출해 사형집행했고 2777명을 종신형에 처했다. 역사청산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게 잘한 역사청산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한명의 청산도 못한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상징적으로라도 친일청산의 절차를 밟았더라면 21세기 들어서까지 ‘친일청산’을 붙들고 고뇌해야 할 단초는 없어졌을 것이다.
친일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정리되지 못한 것은 끝내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2003년 국회에서 관련예산이 삭감되면서 국민들이 성금 7억여원을 모았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 회비를 내 사전편찬이라는 결실을 보게됐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정부 아닌 국민이 성금을 모아 ‘친일’을 단죄했다는 의미도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에도 친일청산을 위한 노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가 1993년 ‘친일파 99인’의 행적을 3권의 책으로 낸 일이 있고 이에 앞서 실천문학사는 1986년 ‘친일문학선집’ 2권을 발간, 친일문학의 실상을 소개한 일이 있다.
어두운 역사에 대한 참회 없이 앞으로 갈 수 없어
이번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의 친일행적이 수록돼 있다. 꽤 방대한 양이다. 사전 발표가 있자 일부에서는 명예훼손이라며 법정투쟁을 벌일 태세라고 하나 별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 박정희 전대통령측과 언론인 고 장지연씨 유족들이 사전 발간에 앞서 이름을 빼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정부수립 이후 이름을 남긴 사람들 측에서 공적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사리에 맞지 않다. 정부수립 이후 공적이 있다고 해서 친일 행적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이번 사전 발간을 두고 후손들의 불만은 그렇다치고 세칭 진보와 보수의 양진영에서 전혀 다른 평가를 하는 것은 안타깝다. 친일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는가. 일부에서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이는 정통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정한 참회없이 역사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임춘웅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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