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뚱뚱한 세종시 ’
차미례 ( 언론인. 번역가. )
내가 충남 연기군 행복도시 예정지에 가본 것은 ‘토지보상 신속히 실시하라’ 와 ‘토지수용결사반대’같은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맞서있던 시기였다. 개발 현장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갈등과 불안감이 가득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골목 어귀에 토지보상위원회의 주민긴급회의 소집 공고와 토지보상거부 및 결사항쟁을 호소하는 격문이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다. 상가나 가로변에는 어김없이 급조된 부동산 사무실들과 은행출장소들이 몰려있었다. 땅과 돈을 노리는 외지인들의 후끈한 열기와 불안하고 스산한 주민들의 표정들이 교차했다.
토지수용과정부터 그 후 주민생활의 모든 변화와 생활사를 기록하기 위한 국립민속박물관의 현지 조사팀과 함께 내려갔던 나는 700년간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노씨 가문의 선산에 올라 금남면과 남면 일대를 내려다 보았다. 산 전체의 묘지는 잔디와 수목에서 모두 뿌리깊은 세월의 관록이 느껴졌다. 그 많은 무덤이 파헤쳐진다니 마음이 아파왔다. ‘ 행정수도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묘지 이전과 토지수용을 결정했다는 몇몇 가문 후손들은 비장한 결의에 가득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보상금으로 그만한 농토를 구할 길이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양보’를 하고 있었다. “ 나라 일이니까. 세상은 변하고 고향이 크게 발전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이런일이 왜 하필 여기 우리한테 일어나는가... ”
마을의 작은 부분을 원형대로 보존해서 선진국형 자연사박물관 단지로 조성하려던 민속박물관의 계획은 전시관 하나만을 빼고는 수포로 돌아갔다. 당장의 생업과 조상묘지까지 양보했던 주민들의 자존심은 분노로 변했다. 정부기관대신 공장과 기업과 학교, 그 밖의 수많은 ‘다른 것들’이 들어온다는데, 그건 당초 주민들이 기대한것도 원한 것도 아니다.
행복도시의 정식 명칭이 세종특별자치시로 확정된 것은 2006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인터넷 사전에도 행정복합도시 세종특별시 신행정수도 행복도시 행정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란 명칭이 병기돼있다. 그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이름도 많았다.
지금은 더 헷갈린다. 9부 2처 2청의 중앙행정기관 이전계획은 올9월 정운찬 총리내정자가 ‘자족도시’가 아니란 이유로 수정론을 제기한 이래 사라졌고, 수많은 새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이번엔 ‘자족 기능확충’이 화려한 명칭으로 전개된다. 행정도시는 곤란하니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만든단다. 성격은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 또는 ‘첨단녹색지식산업도시’로 하고 과학비즈니스벨트, 국가산업단지로 지정개발, 수도권 기업이전 혜택, 연구소유치, 자율형 사립고 공립고와 특목고 유치, 외국교육기관유치 , 대기업 문화시설투자 유도를 한다고 한다. 입주기업엔 도로 용수등 국고지원과 세제혜택도 주고 토지공급 지원금 공여 계획도 단기간에 연속 발표되었다. 기업특혜설과 타지역과의 형평성 논란, 역차별 논란이 일자 이번엔 인센티브를 ‘파격’에서 ‘적정’으로 하향조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공학자들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최적의 교육도시가 산업단지를 겸하고 수도권공장이전 장소가 동시에 대학과 연구소 , 예술기관의 계획도시가 되기는 어렵다. 학교, 공장, 기관, 기업 오피스가 공존한다해서 자족확충도 아니다. 한국에 자족도시는 있는가? 정치적 계획도시는 생태적으로 자족도시가 못된다. ‘파격적 대우’와 ‘적정한 대우’ 사이로 모든 유치대상을 다 끌어온다해도 원안보다 훌륭한 자족도시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아이의 음식이 부적절하다며 뺏어버리고 임기응변으로 수십가지 식품을 계속 먹여 뚱보를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른가. 지나치다니까 이번엔 감량설이 나온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줄이면 입주경쟁도 감소한다. 감량과 과식의 반복은 몸을 죽인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세종시는 뚱뚱하고 불건강한 기형도시로 온갖 정치분쟁의 불씨만 낳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거창한 계획들이 불과 한두달 새 이뤄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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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례 ( 언론인. 번역가. )
내가 충남 연기군 행복도시 예정지에 가본 것은 ‘토지보상 신속히 실시하라’ 와 ‘토지수용결사반대’같은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맞서있던 시기였다. 개발 현장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갈등과 불안감이 가득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골목 어귀에 토지보상위원회의 주민긴급회의 소집 공고와 토지보상거부 및 결사항쟁을 호소하는 격문이 나란히 붙어있기도 했다. 상가나 가로변에는 어김없이 급조된 부동산 사무실들과 은행출장소들이 몰려있었다. 땅과 돈을 노리는 외지인들의 후끈한 열기와 불안하고 스산한 주민들의 표정들이 교차했다.
토지수용과정부터 그 후 주민생활의 모든 변화와 생활사를 기록하기 위한 국립민속박물관의 현지 조사팀과 함께 내려갔던 나는 700년간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노씨 가문의 선산에 올라 금남면과 남면 일대를 내려다 보았다. 산 전체의 묘지는 잔디와 수목에서 모두 뿌리깊은 세월의 관록이 느껴졌다. 그 많은 무덤이 파헤쳐진다니 마음이 아파왔다. ‘ 행정수도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마지못해 묘지 이전과 토지수용을 결정했다는 몇몇 가문 후손들은 비장한 결의에 가득차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보상금으로 그만한 농토를 구할 길이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양보’를 하고 있었다. “ 나라 일이니까. 세상은 변하고 고향이 크게 발전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이런일이 왜 하필 여기 우리한테 일어나는가... ”
마을의 작은 부분을 원형대로 보존해서 선진국형 자연사박물관 단지로 조성하려던 민속박물관의 계획은 전시관 하나만을 빼고는 수포로 돌아갔다. 당장의 생업과 조상묘지까지 양보했던 주민들의 자존심은 분노로 변했다. 정부기관대신 공장과 기업과 학교, 그 밖의 수많은 ‘다른 것들’이 들어온다는데, 그건 당초 주민들이 기대한것도 원한 것도 아니다.
행복도시의 정식 명칭이 세종특별자치시로 확정된 것은 2006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인터넷 사전에도 행정복합도시 세종특별시 신행정수도 행복도시 행정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란 명칭이 병기돼있다. 그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이름도 많았다.
지금은 더 헷갈린다. 9부 2처 2청의 중앙행정기관 이전계획은 올9월 정운찬 총리내정자가 ‘자족도시’가 아니란 이유로 수정론을 제기한 이래 사라졌고, 수많은 새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이번엔 ‘자족 기능확충’이 화려한 명칭으로 전개된다. 행정도시는 곤란하니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만든단다. 성격은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 또는 ‘첨단녹색지식산업도시’로 하고 과학비즈니스벨트, 국가산업단지로 지정개발, 수도권 기업이전 혜택, 연구소유치, 자율형 사립고 공립고와 특목고 유치, 외국교육기관유치 , 대기업 문화시설투자 유도를 한다고 한다. 입주기업엔 도로 용수등 국고지원과 세제혜택도 주고 토지공급 지원금 공여 계획도 단기간에 연속 발표되었다. 기업특혜설과 타지역과의 형평성 논란, 역차별 논란이 일자 이번엔 인센티브를 ‘파격’에서 ‘적정’으로 하향조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공학자들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최적의 교육도시가 산업단지를 겸하고 수도권공장이전 장소가 동시에 대학과 연구소 , 예술기관의 계획도시가 되기는 어렵다. 학교, 공장, 기관, 기업 오피스가 공존한다해서 자족확충도 아니다. 한국에 자족도시는 있는가? 정치적 계획도시는 생태적으로 자족도시가 못된다. ‘파격적 대우’와 ‘적정한 대우’ 사이로 모든 유치대상을 다 끌어온다해도 원안보다 훌륭한 자족도시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아이의 음식이 부적절하다며 뺏어버리고 임기응변으로 수십가지 식품을 계속 먹여 뚱보를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른가. 지나치다니까 이번엔 감량설이 나온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줄이면 입주경쟁도 감소한다. 감량과 과식의 반복은 몸을 죽인다. 이런 상태로 간다면 세종시는 뚱뚱하고 불건강한 기형도시로 온갖 정치분쟁의 불씨만 낳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거창한 계획들이 불과 한두달 새 이뤄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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