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에 설자리 잃는 서민들
살림하고 있는데 철거 강행 ‘서러운 세입자’
동절기 행정대집행 자제 무색 ‘쫓겨나는 노점상’
아시아인권위 “폭력적인 철거문화 근절” 촉구
#지난해 12월 24일 3시쯤 마포구 동교동 ㄷ음식점에는 법원 직원 용역 회사 직원 등 20여명이 몰려와 테이블 주방용품 등 각종 집기들을 철거했다. 이 모(50) 사장은 잠시 쉬고 있을 때 법원 직원 등이 들어와 서류를 들이밀고 제대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집기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이 사장과 종업원 1명은 당시 직원들에 둘러싸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이 사장 등은 음식점 밖으로 끌려나오다시피 했고 음식점 주위로는 펜스(철판)가 둘러쳐져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이 사장은 “엄동설한에 이렇게 철거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내 가게를 앞에 두고 못 들어가는 게 견딜 수 없어 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26일 새벽부터 이 사장은 음식점 안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전기장판으로 근근이 추위를 견딘다. 씻는 것도 불편하다. 이 사장은 “조금이나마 물러설 곳이 있었다면 예전에 떠났을 것"이라면서 "음식점은 네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전부였다”고 호소했다.
이 사장의 음식점은 명도소송에서 지난해 봄 패소했다. 이 사장은 개발 붐이 일면서 작은 건물들을 헐어 대형 건물을 지으려는 업자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 중 하나다. 이 사장은 권리금은커녕 소송 진행 과정에서 보증금 등도 이미 다 까먹어 이사 비용 300여만원으로는 아무 곳에서도 음식점을 얻을 수 없다며 절망했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 평범한 가장이었던 김 모(66)씨가 자신이 살던 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아파트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사업에 의해 철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11월말부터 철거 작업은 시작됐다. 그러나 당장 갈 곳 없는 10여가구는 남아 있었다.
김씨네 가족도 옆집의 바닥을 깨고 배관을 뜯어내는 바람에 매일 소음과 먼지에 시달렸지만 그냥 버티고 살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 철거작업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항의도 해봤지만 철거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는 서울시와 세입자들 간에 보상문제를 놓고 법적 소송이 수개월째 진행 중이다. 숨진 김씨는 임대주택 입주권이 취소되면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서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잦은 올 겨울 갈 곳 없이 쫓겨나는 서민들은 더 서럽다.
재개발을 위한 철거작업은 서민들 사정과는 상관없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뿐 아니라 종로구 옥인동 시민아파트 역시 세입자 등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동원한 강제철거는 진행되고 있다.
이런 재개발지역뿐 아니라 길거리 노점상들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영세 세입자를 위해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한다는 행정지침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 신촌과 홍대 일대 노점상인들은 구청측의 강제철거로 생계 수단을 잃게 될 판이다.
신촌과 서대문지역 노점상인의 모임인 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와 전국노점상총연합,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관계자 40여명은 지난달 23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절기에는 행정대집행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이행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2008년 11월 동절기(한겨울)에는 강제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행정지침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마포구청이 지난 18일 용역 400여명과 지게차를 동원해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홍익대학교역 인근 노점마차 5동을 철거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이 고용한 용역과 노점상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노점상 7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서부노련 관계자는 “이 엄동설한에 행정대집행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구청측 편의만을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지금까지 한 차례 철거후 구청측에서 특별히 후속조치를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 또 강제철거를 하려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들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한 이유는 ‘디자인 거리’조성 때문이었다.
서울시와 구청측은 특히 민간이 하는 일(철거)에 대해 간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동설한 강제철거’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최근 ‘서울시의 주거권 보호 실패가 한 세입자를 자살로 내몰았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서울시가 2008년 11월28일 동절기 철거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왕십리, 마포구 용강아파트, 종로구 옥인아파트 등에서 동절기 철거가 진행됐다”며 “철거된 용강아파트 주변에 거주했던 15가구는 이로 인해 안전을 위협받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아시아지역 대표적인 비정부 인권단체다.
이 단체는 또 민간에서 진행되는 철거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무원이 인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주거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정부는 제3자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주민들이 대체거주지를 얻을 때까지 철거를 중단하고 재개발 사업에서 폭력적인 문화를 근절시킬 것을 촉구했다.
고병수 송현경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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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고 있는데 철거 강행 ‘서러운 세입자’
동절기 행정대집행 자제 무색 ‘쫓겨나는 노점상’
아시아인권위 “폭력적인 철거문화 근절” 촉구
#지난해 12월 24일 3시쯤 마포구 동교동 ㄷ음식점에는 법원 직원 용역 회사 직원 등 20여명이 몰려와 테이블 주방용품 등 각종 집기들을 철거했다. 이 모(50) 사장은 잠시 쉬고 있을 때 법원 직원 등이 들어와 서류를 들이밀고 제대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집기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이 사장과 종업원 1명은 당시 직원들에 둘러싸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이 사장 등은 음식점 밖으로 끌려나오다시피 했고 음식점 주위로는 펜스(철판)가 둘러쳐져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됐다.
이 사장은 “엄동설한에 이렇게 철거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근처에서 서성거리다 내 가게를 앞에 두고 못 들어가는 게 견딜 수 없어 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26일 새벽부터 이 사장은 음식점 안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전기장판으로 근근이 추위를 견딘다. 씻는 것도 불편하다. 이 사장은 “조금이나마 물러설 곳이 있었다면 예전에 떠났을 것"이라면서 "음식점은 네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전부였다”고 호소했다.
이 사장의 음식점은 명도소송에서 지난해 봄 패소했다. 이 사장은 개발 붐이 일면서 작은 건물들을 헐어 대형 건물을 지으려는 업자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 중 하나다. 이 사장은 권리금은커녕 소송 진행 과정에서 보증금 등도 이미 다 까먹어 이사 비용 300여만원으로는 아무 곳에서도 음식점을 얻을 수 없다며 절망했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 평범한 가장이었던 김 모(66)씨가 자신이 살던 이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아파트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사업에 의해 철거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11월말부터 철거 작업은 시작됐다. 그러나 당장 갈 곳 없는 10여가구는 남아 있었다.
김씨네 가족도 옆집의 바닥을 깨고 배관을 뜯어내는 바람에 매일 소음과 먼지에 시달렸지만 그냥 버티고 살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 철거작업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항의도 해봤지만 철거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는 서울시와 세입자들 간에 보상문제를 놓고 법적 소송이 수개월째 진행 중이다. 숨진 김씨는 임대주택 입주권이 취소되면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서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잦은 올 겨울 갈 곳 없이 쫓겨나는 서민들은 더 서럽다.
재개발을 위한 철거작업은 서민들 사정과는 상관없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뿐 아니라 종로구 옥인동 시민아파트 역시 세입자 등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동원한 강제철거는 진행되고 있다.
이런 재개발지역뿐 아니라 길거리 노점상들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영세 세입자를 위해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한다는 행정지침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 신촌과 홍대 일대 노점상인들은 구청측의 강제철거로 생계 수단을 잃게 될 판이다.
신촌과 서대문지역 노점상인의 모임인 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서부노련)와 전국노점상총연합,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관계자 40여명은 지난달 23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절기에는 행정대집행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이행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2008년 11월 동절기(한겨울)에는 강제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행정지침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마포구청이 지난 18일 용역 400여명과 지게차를 동원해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홍익대학교역 인근 노점마차 5동을 철거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이 고용한 용역과 노점상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노점상 7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서부노련 관계자는 “이 엄동설한에 행정대집행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구청측 편의만을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지금까지 한 차례 철거후 구청측에서 특별히 후속조치를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 또 강제철거를 하려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들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한 이유는 ‘디자인 거리’조성 때문이었다.
서울시와 구청측은 특히 민간이 하는 일(철거)에 대해 간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동설한 강제철거’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인권위원회(AHRC)는 최근 ‘서울시의 주거권 보호 실패가 한 세입자를 자살로 내몰았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서울시가 2008년 11월28일 동절기 철거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왕십리, 마포구 용강아파트, 종로구 옥인아파트 등에서 동절기 철거가 진행됐다”며 “철거된 용강아파트 주변에 거주했던 15가구는 이로 인해 안전을 위협받았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아시아지역 대표적인 비정부 인권단체다.
이 단체는 또 민간에서 진행되는 철거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정부와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무원이 인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주거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정부는 제3자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주민들이 대체거주지를 얻을 때까지 철거를 중단하고 재개발 사업에서 폭력적인 문화를 근절시킬 것을 촉구했다.
고병수 송현경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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