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 개교 10년 전주주부학교 > 전주

아줌마들의 작은 반란

지역내일 2001-09-07
금암동에 위치한 전주주부학교(교장 이명광, 진북동)에 들어서면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전주주부학교는 10년 전, 밤 시간이 자유롭지 못한 주부들을 위해 몇 몇의 뜻 있는 야학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 그 후로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못 배운 것이 한이 된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부학교가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찾아오는 주부들이 많았으나 해가 바뀌어가면서 차츰 그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회원수가 줄어들면 운영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련만 박영수 교감은 "갈수록 찾아오는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배우는 것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한 이들보다 배운 이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부들 중 일부는 남편 몰래 다니기도 하고 또 남편이 아내 몰래 등록을 해놓고 나중에서야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며 학교문을 두드리는 주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신감이 생기고 생활하는 자세가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무시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던 주부들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대학교에까지 진학하면서 가족들도 자랑스러워하는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이다.

보람된 일 만큼 가슴아픈 일도 많다.
못 배운 것을 한으로 품고 살아온 주부들은 하나, 둘 배워가면서 "공부처럼 쉽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며 입을 모은다고 한다.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는 수업을 격일제로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한 과정을 마치면 상위 과정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보는데, 뒤늦게 공부에 맛을 들인 주부들이기 때문에 검정고시 합격률도 매우 높다고 한다. 지난 봄의 경우는 한 반 전체가 모두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경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에서 4월의 고입검정고시와 5월의 중입검정고시에서는 정선주 주부와 노애성 주부가 각각 59세와 69세의 나이로 전북최고령으로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아직은 많은 수가 고등학교 과정으로 끝을 내지만 욕심이 많은 주부들 중에는 대학에도 진학해 사회에 나가 자기 일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4년제 대학 진학자는 전주대 4명, 원광대 2명 정도지만 방송통신대에는 20여 명 정도가 진학했다. 한 주부는 방송통신대 4년 동안 유아교육과 교육학 학위를 동시에 따내기도 했다고 한다.
박영수 교감은 "엊그제도 방송통신대에서 졸업논문을 쓰고 들렀다는 옛 제자가 찾아와서 담소를 나누었다"며 주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이 찾아올 때가 가장 보람되고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늘상 보람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영수 교감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주부들이라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는 주부들을 볼 때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특히 98년도 IMF 때문에 중도 포기자가 가장 많았고, 그 이후에도 가족의 병 수발이나 남편의 실직으로 주부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박영수 교감은 "나이 들어서 정말 어렵게 배우겠다고 찾아 온 주부들이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찾아 올 때면 그런 이야기를 해야하는 본인만큼이나 가슴이 아프다"며 "어디가서든 배움에의 열정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고 말했다.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졸업식과 동창회
전주 주부학교의 16, 17기 졸업식이 지난 7일에 있었다. 50여 명의 졸업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평생에 처음으로 졸업식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졸업식은 늘 눈물바다가 된다.
이날 있었던 동창회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는 이순자(64, 금암동) 주부는 "작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한다는 할머니를 보고 용기를 내서 등록을 했다"며 "자식들도 대학까지 공부하라고 응원해주고 나도 건강만 허락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해 늦깎이 공부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딴 주부들은 평생 처음으로 여고 동창회를 갖는다. 주위에서 여고 동창회에 간다고 할 때가 가장 부러웠다는 주부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첫 동창회를 열고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창회를 갖는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공부한 이들인지라 그 어떤 동창회보다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돈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가족같은 학교
전주주부학교에 재직중인 9명의 교사들은 차비 정도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80이 넘어서도 배우겠다는 의지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찾아와 침침한 눈을 빛내며 앉아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마 어느 누구라도 쉽게 그만둘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주부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는 다른 학교들보다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학생들도 교사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어머니뻘 되는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자세도 깍듯하다.
오는 13일까지 전주주부학교가 제20기 학생을 모집한다. 배움에의 욕심을 가지고도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이를 위해 주부학교는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주주부학교 : Tel. (063)271-6050
신은정 리포터 purmy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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