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여는책] ‘나는 서 있다’

지역내일 2010-02-12 (수정 2010-02-12 오전 7:20:43)
차 미 례
언론인. 번역가

전범석 지음
예담 9800원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전신마비 환자가 된 의사의 투병기록
“의사로서 환자를 포기할 수 없듯이 나의 삶 또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쓰러졌다. 사회적으로 쓰러지는 것 말고, 그냥 쓰러졌다. 쓰러지는 사람들은 두가지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 쓰러진 것도 모르고 쓰러진 사람. 현기증을 느껴 손을 짚거나 방어동작을 하면 부상이 적지만, 돌연 의식이 끊기는 후자는 뇌진탕으로 심각한 중증장애에 이를 수 있다.
나는 평소 다니던 무술관에서 서있다 갑자기 통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져 시멘트 기둥 모서리에 오른쪽 관자노리와 얼굴을 찍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2008년 여름의 일이다. 잠시후 의식이 돌아왔을 땐 얼굴과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머리가 다 깨진 듯 아파서 봉술 연습하던 무술인들의 무기에 잘못 강타 당한 줄 알았지만, 혼자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송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뇌파 검사와 초음파검사등 여러가지 뇌 검사를 다 했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박상의 내출혈로 턱밑에 큼직한 피주머니가 혹처럼 늘어졌을 뿐이다. 오래전 이 병원에서 받은 암수술이 뇌종양으로 전이된 게 아닌가해서 의료진은 뇌검사를 집중적으로 했지만 그건 일단 완치 판정을 받았었고, 주치의인 방영주 박사도 그건 원인이 아니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쓰러진 원인을 탐문( 취재)하기를 그치지 않는 동안 수많은 지인들이 비슷한 경험담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욕실에서 쓰러진 사람, 침실에서 쓰러졌다 반시간 만에 깨어난 사람, 일하다 말고 쓰러지는 것을 동료가 받아주어 뇌손상을 면한 사람.... 마치 이 세상이 쓰러진 사람으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나는 서 있다’의 저자 전범석 박사도 쓰러진 사람이다. 그는 공교롭게도 서울대병원의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운이 나빴다. 무쇠처럼 단련된 몸의 중년 남자가 남한산성 등산중 정상에 서자마자 갑자기 통나무처럼 쓰러져 바위에 부닥쳤다. 앞니들이 깨지며 충격을 흡수한 덕에 더 심한 뇌손상과 사망은 면했지만,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머리부분과 언어만 온전할 뿐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2004년 여름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기록을 남겼다. 전신마비 상태에서 자신의 병을 잘 아는 그는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하고 직접 메모를 할 수 없으니 구술을 받아 적게 했다. 이를 악물고 재활치료에 매달려 9개월만에 두 발로 걸어나왔고 3년만에 진료실에 복귀했다. 다른 환자에 비해 그는 운이 좋았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파킨슨병과 이상운동 질환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 자신의 증상의 정체를 파악하고 수술후 투약과 처방까지 지시할 수 있었다. 그 숱한 쓰러진 사람중에서 병원 구급 팀에게 “ 내가 C5 콰드리플레지아 (5번째 경수부위에 생긴 척수손상)여서 헬기가 있어야겠습니다. 위치는 남한산성 벌봉 정상입니다”라고 침착하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병원에 후송돼 수술을 받고 전신마비에서 다시 일어서기까지 몸의 상태와 변화를 먹는 것, 배변, 물리치료과정까지 부끄러움 없이 세밀하게 기록했고, 의사로서의 모든 권위의식과 환자로서의 모든 절망을 다 넘어서는 과정( 두가지가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을 글로 남겼다.
그가 서문에서 “ 이 책은 달콤한 승리의 기록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중인 투병기록이며, 아직 시련 속에 있거나 고난이 끝나지 않을 사람을 위한 글이다.”라고 밝혔듯 절망, 분노, 원망, 후회, 자기연민같은 환자들 고유의 심리적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솔직히 돌아보고 이를 가감없이 기록했다. 특히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Why me?)라는 억울함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이기고 자신의 기나긴 싸움의 과정을 냉철하게, 긍정적으로 기록한 점에서는 많은 환자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감탄과 존경을 자아낼 만 하다.
서평가로서나 그 이전의 일간신문 출판담당 기자로서 필자가 습관적으로 의심스럽게 살피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첫째는 성공학 책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종류의 ‘하우투 북 How-to book’ 들이다. 처세술을 포함해서 요리, 스포츠등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책은 그 종류와 출판 물량이 하도 많아서 진위 여부나 수준 여하를 가리기도 힘들다. 책에 적힌대로 따라 했다가는 실패에 이르기 십상인 부실한 내용도 많아서, 신문에 실을 때면 긴장해서 내용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경험담과 소설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자전류나 체험기들이다. 선거철에 쏟아지는 정치가들의 선전용책처럼 무가치하고 목적이 뻔한 책들이 많다. 아니면 너무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만의 감상이나 경험담을 과장하거나 미화한 책도 많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아예 서평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지만, 그래도 모래 속에서 금을 찾듯 간혹 좋은 체험담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기 힘든 아이템들이다. 내가 병원에서도 해답을 못구한 ‘쓰러짐’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얻으려고 읽게 된 ‘나는 서 있다’는 그런 책이다. 솔직하고 정확한 기록이야말로 인류공유의 귀중한 자산이다. 책은 저자가 전신마비로 누워있다가 T베드( 환자의 몸을 강철 프레임에 묶어 세워주는 장치)신세를 지며 조금씩 일어서서 마침내 두 발로 진료실에 복귀하기까지의 경험과 긍정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하늘은 최고의 의사인 그를 쓰러뜨렸지만, 그는 환자의 고통을 몸으로 체험하고 희망과 절망을 논할 줄 아는 철학자가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절망에 내몰린 환자들이 병원 시스템에 묶인 채 과로와 무관심 속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의사 대신 이런 ‘아군’을 갖게 되다니, 멋지지 않은가. 그처럼 쓰러진 모든 사람들이 ‘나는 서 있다’고 외칠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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