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칼럼]품위 없는 사회

지역내일 2010-03-24
품위 없는 사회
민병욱 (언론인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를 하나만 들라면 나는 두말없이 ‘품위’를 말하겠다. 우리는 너무 쉽게 품위를 잃었다. 구성원끼리 존중하지 않고 모욕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한다. 서로 품격을 떨어뜨리고 상처를 준다. 특히 정치계에서는 말의 폭력, 정신적 폭행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자행된다. 그들은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품위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갖춰야할 위엄이나 기품’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려는 품위는 그 정도까지 격조가 높은 것도 아니다. 출중한 인격과 품행으로 우뚝 서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지위나 직책에 합당한 언행을 하면 “품위를 지킨다”고 말할 정도의, 어떤 의미에서 소극적 품위다.
지금 사회에선 그것조차 지키는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다섯살 어린이가 어른처럼 말하는 걸 품위 있다고 하지 않는다. 이익을 남기는 게 목표인 상인이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판다고 해서 품위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연치(年齒)를 갖추고 자신이 선 자리와 맡은 일, 하는 생각이 모나거나 비뚤어지지 않고 보편적 상식에 맞아야 품위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

없으면 곧 드러나는 게 품위
물론 어떤 때는 외모만으로 품위가 있고 없음을 직감하기도 있다. 직책이나 경력을 보고 지레짐작하는 수도 있다. 그 경우 나중에 직접 언행을 보고 잘못 판단한 걸 깨닫기도 한다.
있는 척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없으면 곧 드러나는 게 품위다. 말도, 행동도 않고 살 수는 없으며 몸에 배어 있는 것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퇴했지만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인터뷰 파동은 ‘품위 없음’의 대표적인 사례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방송을 만들어야할 그 이사장은 “MBC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까이고 매를 맞은 뒤 ‘좌빨’ 80%를 척결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청소부 역할을 하라고 시켜 (사장이) 청소부 역할을 한 것”이라고 자랑하듯 공개했다.
그는 학자 시절 ‘방송 독립’을 소리높이 외친 사람이다. 그런데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앉자 ‘큰집’과 자신의 방송에 대한 인사농단을 큰 전공(戰功)이나 내세우듯 떠벌렸다.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손봐 “좌파를 청소했다”는 말은 그 방송사 직원은 물론, 그 방송을 믿고 보아온 국민들까지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아니, 말한 자신을 비천하게 만든다. 동원한 용어의 유치함은 물론, 교수 출신 언론인으로서 일말의 품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당 고위인사의 발언도 같은 범주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년 좌파정권의 교육’과 ‘흉악한 아동 성폭력 범죄’를 연장선상에 병치(倂置)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는 전에도 성에 차지 않는 일이 생기면 좌파 탓을 하곤 했다. 나쁜 것은 무조건 좌파라고 매도하는 이념 편향과 국민 편 가르기식 발언이 국민의 대표이자 집권당 대표의원이 쓸 용어며 지킬 품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엊그제는 그가 강남의 어느 큰 절 스님을 좌파로 지칭하며 ‘제거’를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라면 분명히 그런 언행을 했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동안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려 왔기 때문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은 막무가내 깎아내리고 모욕하는 언사를 거침없이 써온 걸 알기에 그의 항변은 씨가 먹히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걸맞지 않은 언행으로 스스로 품위를 깎은 예는 이밖에도 많다.
인터넷에 우스개로 올린 네티즌의 동영상에 발끈해 정식수사를 의뢰한 문화부 장관, 교육 수장 자리에 앉은 뒤 뇌물 통장까지 만들어 비자금을 쌓아올린 전 서울시 교육감, “아프리카는 무식한 흑인들이 뛰어다니는 곳”이란 상식 이하 발언을 하는 장관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제도를 통해 그 권한 아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여야 품위 있는 사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품위 없는 사회는? 당연히 사람들을 모욕하고 존중하지 않는 사회다. 구성원들이 그로 인해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사회가 바로 품위 없는 사회인 것이다.

제도가 사람 모욕 않는 사회
제도에 의해 공적 지도적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제도를 방패삼아 구성원을 모욕하고 인사권으로 청소하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권력을 쥔 이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색깔을 덧씌우고 무 뽑듯 제거하려드는 사회는 또 어떤 사회인가.
국민이 모욕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사회는 분명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이른바 국격을 높이려면 품위 있는 사회부터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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