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딸기’를 살립시다
전강석 (경남통일농업협력회 회장)
2005년 경상남도 남북교류협력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2006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경남도는 도지사를 중심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해왔다.
북 식량 문제 해결에 앞장섬으로써 도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사)경남통일농업협력회와 유기적 관계로 효율성을 높여왔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함께했던 평양시 강남군 장교리 협동농장의 농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2007년 도민들의 성금으로 장교리 주민들의 오랜 바람인 소학교를 2008년 완공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사업 첫해인 2006년 가을 북에서 키운 딸기 모종 1만주를 들여오게 되었다.
경상남도의 농업지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노력을 담은 고마움의 표시였다. 작지만 상호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후 2007년 2만5000주, 2008년 5만주, 2009년 10만주로 양과 질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2009년에 들어온 10만주의 모종으로 사천 지역에서는 서울과 부산으로 판매를 하고, 밀양에서는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장애인 노인 실향민 어린이들이 수확체험을 하며 통일을 느끼는 소중한 자리를 만들었다.
온실서 늙어가는 딸기 모주들
그런데 올해 들어 농업은 인도적인 지원이 아니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딸기 모주가 평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3월 중 북으로 가서 증식을 시작해야 하는 데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모주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보다 앞서는 인도적 사업은 없다. 농업은 바로 그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다. 4∼5개월만 먼저 지원하면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거의 3배의 성과를 낼 수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경상남도에서도 북의 농업지원 및 개발사업으로 10억원의 예산을 확정하여 도의회의 승인을 받은 상태이다. 또한 경상남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서 구체적 사업내용까지 확정 했다.
지자체에서 조례안에 따라 진행하는 사업을 통일부에서 사전에 어떤 조율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면 과연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2월 6일 방문한 순안구역 내 천동국영농장 주민들은 올해 농사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계이앙에 대한 논의, 온실 비닐교체 등 봄을 맞을 준비에 부산하였다.
그들은 경남에서 보내주는 농자재, 농기계로 한톨의 식량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지원이 중단된다면 천동농장 주민들에게 어려움만 가중시킨 꼴이 된다. 준비했던 농지는 다시 옛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고, 비닐 없는 온실은 뼈대만 앙상한 거추장스러운 짐이 된다.
평화 화해 신뢰 무너지는 순간
그들이 도와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던가?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조례안 만들어서 찾아 갔지 않았는가!
어느 날 상식이 없어진 사회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통일딸기는 남에서 조직배양 되어 평양으로 가서 북의 농민손으로 많은 수를 늘려 다시 경남으로 가져와 수확하는 평화의 상징이다. 대결이 아닌 생명 탄생과 성장을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낸 평화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남과 북 농민들의 땀이 배여 쌓였던 원과 한을 녹여내는 화해의 상징이며 4년간 지속된 신뢰의 상징이다. 이 평화와 화해와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민간과 지자체에서 만들어온 소중한 통일의 노력을 끝내 물거품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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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석 (경남통일농업협력회 회장)
2005년 경상남도 남북교류협력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2006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경남도는 도지사를 중심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해왔다.
북 식량 문제 해결에 앞장섬으로써 도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사)경남통일농업협력회와 유기적 관계로 효율성을 높여왔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함께했던 평양시 강남군 장교리 협동농장의 농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림으로써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2007년 도민들의 성금으로 장교리 주민들의 오랜 바람인 소학교를 2008년 완공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사업 첫해인 2006년 가을 북에서 키운 딸기 모종 1만주를 들여오게 되었다.
경상남도의 농업지원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노력을 담은 고마움의 표시였다. 작지만 상호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후 2007년 2만5000주, 2008년 5만주, 2009년 10만주로 양과 질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2009년에 들어온 10만주의 모종으로 사천 지역에서는 서울과 부산으로 판매를 하고, 밀양에서는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장애인 노인 실향민 어린이들이 수확체험을 하며 통일을 느끼는 소중한 자리를 만들었다.
온실서 늙어가는 딸기 모주들
그런데 올해 들어 농업은 인도적인 지원이 아니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딸기 모주가 평양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3월 중 북으로 가서 증식을 시작해야 하는 데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모주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보다 앞서는 인도적 사업은 없다. 농업은 바로 그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다. 4∼5개월만 먼저 지원하면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거의 3배의 성과를 낼 수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경상남도에서도 북의 농업지원 및 개발사업으로 10억원의 예산을 확정하여 도의회의 승인을 받은 상태이다. 또한 경상남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서 구체적 사업내용까지 확정 했다.
지자체에서 조례안에 따라 진행하는 사업을 통일부에서 사전에 어떤 조율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면 과연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난 2월 6일 방문한 순안구역 내 천동국영농장 주민들은 올해 농사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계이앙에 대한 논의, 온실 비닐교체 등 봄을 맞을 준비에 부산하였다.
그들은 경남에서 보내주는 농자재, 농기계로 한톨의 식량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지원이 중단된다면 천동농장 주민들에게 어려움만 가중시킨 꼴이 된다. 준비했던 농지는 다시 옛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고, 비닐 없는 온실은 뼈대만 앙상한 거추장스러운 짐이 된다.
평화 화해 신뢰 무너지는 순간
그들이 도와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던가?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조례안 만들어서 찾아 갔지 않았는가!
어느 날 상식이 없어진 사회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통일딸기는 남에서 조직배양 되어 평양으로 가서 북의 농민손으로 많은 수를 늘려 다시 경남으로 가져와 수확하는 평화의 상징이다. 대결이 아닌 생명 탄생과 성장을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낸 평화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남과 북 농민들의 땀이 배여 쌓였던 원과 한을 녹여내는 화해의 상징이며 4년간 지속된 신뢰의 상징이다. 이 평화와 화해와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민간과 지자체에서 만들어온 소중한 통일의 노력을 끝내 물거품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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