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학수사는 어느 수준일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생긴지 50년이 됐고 각 경찰청에는 과학수사요원으로 활동한지 15년이 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예산 노부부살인 사건처럼 그동안 대조식별이 어려웠던 지문대조가 이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순식간에 처리되는 수준으로 올랐다. 혈흔 DNA 지문 검시 족윤적 감식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시신주변 물체, 매장토양을 통한 사건발생 시간 확인, 프로파일링을 통한 범인행동양식 파악 등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개별 사건에서 과학수사가 그늘에 가려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를 각 사건을 통해 연재해 독자들로 하여금 수사의 이해를 돕고, 동시에 치안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자 한다.
지문은 개인별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동일한 지문을 가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지문의 특징은 범인을 특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약과 감식방법 또한 상당한 발전을 이뤄 유리창 테이프 타일 등 어느 곳에서든 지문을 현출해 낼 수 있다.
1992년 7월 14일 충북 충주시. 오씨는 언니가 지난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아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한여름이라 날씨는 짜증이 절로 날 정도로 무더웠다. 아침녘에 잠깐 잠이 들었던 오씨는 7시쯤 일어나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시장에 있는 언니 주점으로 향했다. 7시 40분쯤 도착한 시장 주점 골목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골목 어귀와 안쪽에는 취객들이 토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골목 가운데쯤 위치한 언니 주점은 문이 약간 열려있었다. 이상한 예감을 느낀 오씨는 허겁지겁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막 내실에 들어선 오씨는 그만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주점내실서 하의 벗겨진 채 살해
아침 8시 출근을 하던 유인홍 경장(현재 경위)은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형사계 동료 2명과 함께 살인 현장으로 급파됐다. 골목에는 10여개의 주점들이 서로 마주보고 늘어서 있었다.
살인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를 받은 파출소 직원들이 현장을 봉쇄해 놓고 있었다. 주점은 단층 건물로 술을 먹는 내실과 작은 홀, 부엌으로 된 5평정도 크기의 조그만 곳이었다.
내실은 술을 먹다 싸웠는지 방바닥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조그만 마호가니 상위에는 술잔과 담배갑 수박 등이 그대로 놓인채 시신 옆으로 밀쳐져 있었다.
술잔은 두 개로 하나는 반쯤 찼고, 다른 하나는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방바닥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몇 개 있었고 술상 주변 방바닥에는 양주병 맥주병 등 10여개가 쓰러지거나 세워져 있었다. 방바닥에 여성이 반듯이 누운 채 죽어있었고 하의가 벗겨져 있었다.
유 경장은 현장 훼손을 줄이기 위해 비닐봉지로 신발 째로 감싸 신고 바지 아랫단 부분을 묶었다. 장갑은 공사현장에서 사용하는 두터운 목장갑을 꼈다. 당시는 아직 과학수사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수사 장비도 거의 없었다.
현재 사용하는 장화 고무장갑(라텍스 장갑) 머리캡 마스크 등은 당시 지급되지 않았다. 충주경찰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수사 요원도 유 경장밖에 없었다.
유 경장은 형사 2명의 보조를 받아 현장 감식을 시작했다. 유 경장은 1976년에 입사한 16년차 경력자로 1년에 100구 정도의 변사체를 감식했다. 먼저 현장 곳곳을 촬영했다. 당시 캠코더는 지급되지 않아 일반 사진기로 찍었다. 시신도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했다. 피해자는 45세의 여성으로 주점 주인이었다. 하의는 벗겨진 채였고, 항문 아래 부분에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이 약간 보였다.
분말기법을 통한 지문 현출
우선 눈에 띄는 술병 배설물 담배꽁초 등을 증거물로 채취했다. 이어 현장 지문 채취에 들어갔다. 1980년대부터 강력순간접착제를 사용하는 슈퍼 글루 기법이 개발됐으나 유 경장은 흑색분말기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유 경장은 일단 술병과 술상 그리고 방바닥을 중심으로 감식 순서를 잡았다. 술병과 술상에 준비한 흑연가루를 붓에 묻혀 붓을 툭툭 털듯이 발라나갔다. 손가락에 묻어 있는 지방을 이용한 방법이다. 가루를 너무 많이 묻히면 지문이 ‘떡’이 돼 버리므로 소량을 미세하게 묻혀야 했다. 방바닥에서는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방바닥에서 음모 1개를 찾았다. 내실 출입문에서도 지문을 감식했다. 여러 개의 다른 지문이 나왔다. 어느 것이 범인의 것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술병에서 약간의 쪽 지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술상을 감식하던 유 경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술상 밑 부분에서 왼손 시지와 중지 지문이 선명하게 나왔다. 범인이 왼손으로 술상을 잡고 옆으로 밀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 경장은 지문채취 리프트를 이용해 지문을 현출했다.
지문 감식이 끝나고 피해자 시신을 국과수로 보냈다. 채취한 지문은 경찰청 증거분석계로 보냈다.
지문 찾았지만 대조 어려워
국과수와 경찰청에서 시신과 증거물 분석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 경장은 3일간 하루에 세 차례씩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현장을 방문했다. 경험에 따르면 현장은 가는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영감을 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국과수에서 시신분석 결과가 나왔다. 시신 경직도 등으로 분석한 사망시각은 00시30분이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목이 졸려 죽은 것이었다. 음부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음모 6개를 발견했는데 음모를 통해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음부 바깥부분에서 정액흔적을 찾았다. 정액 분석으로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당시는 DNA가 밝혀지기 전이라 정액이나 음모를 통해서 혈액형 밖에 못 밝힌 것이다. 특이한 것은 피해자의 질 속에서 나온 정액을 통해 감식한 혈액형은 AB형이었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확정증거는 지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문 대조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컴퓨터를 통한 자동검색시스템(AFIS)이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지문 대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성별 연령대 주소지 등의 범위를 좁혀줘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범인 신원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범인이 충주 거주자가 아니라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나이 또한 특정할 증거가 없었다. 주변 탐문을 통해서 목격자를 찾아야 했다.
며칠 동안의 탐문 끝에 주점골목에서 당시 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를 찾았다. 목격자 김씨는 그날 저녁 8시쯤 건너편 주점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중 바람 쐬러 나오다 오씨 주점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옆모습을 얼핏 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보통체격이라는 것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손님은 없었다는 것도 기억했다. 그러나 그도 범인의 얼굴이나 나이를 짐작하지 못했다. 유 경장은 답답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있었다.
15년이 흘러도 지문은 남는다
세월이 흘러 주점골목의 흔적은 사라졌다. 유 경장은 경위로 승진해 수사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사건 이후 15년이 흘렀으나 시간만 나면 골목 어귀를 서성였다. 무언가 또 다른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유 경장은 컴퓨터를 통해 지문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본청에 갖추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불현 듯 주점 여주인 살해사건이 떠올랐다. 곧바로 사건파일을 들춰 본청에 지문 식별 요청을 했다. 본청 증거분석계는 미제사건 파일에서 지문을 찾아 자동검색시스템에 적용했다. 지문의 주인은 나승요(1960년 생). 사건 당시 32세였다.
경찰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유 경위는 나씨 체포에 나섰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이미 전과 5범의 범죄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살인 후에도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도와 준강도 등으로 또다시 4회에 걸쳐 처벌받았다. 나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충주경찰서 형사들은 최근 범죄를 저지른 공주와 대전을 대상으로 탐문에 나섰다. 탐문 19일만인 5월14일 형사들은 승복을 입은 나씨를 체포했다. 나씨는 1m70cm 정도의 키에 보통 체구였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인하는 범인
그는 15년 전 사건당일 저녁 주점골목을 배회하다 8시쯤 오씨의 주점에 들어갔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내실에 들어가 술을 마시던 나씨는 자정쯤 오씨에게 여관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술상을 왼손으로 잡아 밀치고 강제로 오씨를 성폭행하려 했다. 오씨가 발로 노씨를 차는 등 강하게 반항하자 노씨는 한 손으로 오씨의 목을 잡아 넘어뜨린 후 피해자의 반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배위에 올라타고는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항거불능으로 만들었다. 바지를 벗고 강간하려는 순간 오씨가 손톱으로 할퀴는 등 거세게 반항했다.
이에 그는 양손으로 오씨의 목을 졸라 사망케 했다. 오씨가 숨지는 과정에서 배설을 하자 놀란 나씨는 바지를 주워 입고는 급히 밖으로 달아났다. 그는 그날로 충주를 떠나 공주 등에서 공사판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 계룡산으로 들어가 도인 행세를 했다. 이어 그는 머리를 깎고 스님 행세를 하며 동학사 금산사 일대를 돌아다니다 또 다시 강도 절도 등 범죄를 저질렀다. 나씨는 경찰에서 살인 사실을 부인하다가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응하면서 살해사실을 인정하고 범행동기와 범행현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서 술을 마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다며 살인을 부인했다. 그러나 사체에서 발견된 정액과 음모에서 나온 혈액형이 나씨의 것과 일치했고, 오씨의 손톱 밑에서 나온 혈액형도 나씨의 것과 동일했다. 또한 술상에서 나온 지문이 나씨 것으로 판명됐다.
나씨 변호인은 피해자의 질 속에서 발견된 정액이 나씨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으나 재판장은 배설물이 사체의 이동 등으로 인한 흐트러짐 없이 항문 아래에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피해자의 사체 주위에 벗겨져 있던 하의에 전혀 묻어있지 않은 점을 들어 피해자가 사망한 후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자를 간음하려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질 속에 있던 정액은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에 누군가와 성교를 했을 수 있으나 이것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나씨는 항소심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그 형량을 줄여줄 것을 간청했으나 판사는 나씨의 범행이 잔인하고 뉘우침이 없어 그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씨는 징역 20년 형을 받고 현재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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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은 개인별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동일한 지문을 가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지문의 특징은 범인을 특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약과 감식방법 또한 상당한 발전을 이뤄 유리창 테이프 타일 등 어느 곳에서든 지문을 현출해 낼 수 있다.
1992년 7월 14일 충북 충주시. 오씨는 언니가 지난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아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한여름이라 날씨는 짜증이 절로 날 정도로 무더웠다. 아침녘에 잠깐 잠이 들었던 오씨는 7시쯤 일어나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시장에 있는 언니 주점으로 향했다. 7시 40분쯤 도착한 시장 주점 골목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골목 어귀와 안쪽에는 취객들이 토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골목 가운데쯤 위치한 언니 주점은 문이 약간 열려있었다. 이상한 예감을 느낀 오씨는 허겁지겁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막 내실에 들어선 오씨는 그만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주점내실서 하의 벗겨진 채 살해
아침 8시 출근을 하던 유인홍 경장(현재 경위)은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형사계 동료 2명과 함께 살인 현장으로 급파됐다. 골목에는 10여개의 주점들이 서로 마주보고 늘어서 있었다.
살인 현장에 도착하니 신고를 받은 파출소 직원들이 현장을 봉쇄해 놓고 있었다. 주점은 단층 건물로 술을 먹는 내실과 작은 홀, 부엌으로 된 5평정도 크기의 조그만 곳이었다.
내실은 술을 먹다 싸웠는지 방바닥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조그만 마호가니 상위에는 술잔과 담배갑 수박 등이 그대로 놓인채 시신 옆으로 밀쳐져 있었다.
술잔은 두 개로 하나는 반쯤 찼고, 다른 하나는 가득 채워져 있었다. 방바닥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몇 개 있었고 술상 주변 방바닥에는 양주병 맥주병 등 10여개가 쓰러지거나 세워져 있었다. 방바닥에 여성이 반듯이 누운 채 죽어있었고 하의가 벗겨져 있었다.
유 경장은 현장 훼손을 줄이기 위해 비닐봉지로 신발 째로 감싸 신고 바지 아랫단 부분을 묶었다. 장갑은 공사현장에서 사용하는 두터운 목장갑을 꼈다. 당시는 아직 과학수사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수사 장비도 거의 없었다.
현재 사용하는 장화 고무장갑(라텍스 장갑) 머리캡 마스크 등은 당시 지급되지 않았다. 충주경찰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수사 요원도 유 경장밖에 없었다.
유 경장은 형사 2명의 보조를 받아 현장 감식을 시작했다. 유 경장은 1976년에 입사한 16년차 경력자로 1년에 100구 정도의 변사체를 감식했다. 먼저 현장 곳곳을 촬영했다. 당시 캠코더는 지급되지 않아 일반 사진기로 찍었다. 시신도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했다. 피해자는 45세의 여성으로 주점 주인이었다. 하의는 벗겨진 채였고, 항문 아래 부분에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이 약간 보였다.
분말기법을 통한 지문 현출
우선 눈에 띄는 술병 배설물 담배꽁초 등을 증거물로 채취했다. 이어 현장 지문 채취에 들어갔다. 1980년대부터 강력순간접착제를 사용하는 슈퍼 글루 기법이 개발됐으나 유 경장은 흑색분말기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유 경장은 일단 술병과 술상 그리고 방바닥을 중심으로 감식 순서를 잡았다. 술병과 술상에 준비한 흑연가루를 붓에 묻혀 붓을 툭툭 털듯이 발라나갔다. 손가락에 묻어 있는 지방을 이용한 방법이다. 가루를 너무 많이 묻히면 지문이 ‘떡’이 돼 버리므로 소량을 미세하게 묻혀야 했다. 방바닥에서는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방바닥에서 음모 1개를 찾았다. 내실 출입문에서도 지문을 감식했다. 여러 개의 다른 지문이 나왔다. 어느 것이 범인의 것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술병에서 약간의 쪽 지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술상을 감식하던 유 경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술상 밑 부분에서 왼손 시지와 중지 지문이 선명하게 나왔다. 범인이 왼손으로 술상을 잡고 옆으로 밀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 경장은 지문채취 리프트를 이용해 지문을 현출했다.
지문 감식이 끝나고 피해자 시신을 국과수로 보냈다. 채취한 지문은 경찰청 증거분석계로 보냈다.
지문 찾았지만 대조 어려워
국과수와 경찰청에서 시신과 증거물 분석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 경장은 3일간 하루에 세 차례씩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현장을 방문했다. 경험에 따르면 현장은 가는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영감을 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국과수에서 시신분석 결과가 나왔다. 시신 경직도 등으로 분석한 사망시각은 00시30분이었다.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목이 졸려 죽은 것이었다. 음부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음모 6개를 발견했는데 음모를 통해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음부 바깥부분에서 정액흔적을 찾았다. 정액 분석으로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이 재차 확인됐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당시는 DNA가 밝혀지기 전이라 정액이나 음모를 통해서 혈액형 밖에 못 밝힌 것이다. 특이한 것은 피해자의 질 속에서 나온 정액을 통해 감식한 혈액형은 AB형이었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확정증거는 지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문 대조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컴퓨터를 통한 자동검색시스템(AFIS)이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지문 대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성별 연령대 주소지 등의 범위를 좁혀줘야 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범인 신원에 대한 단서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범인이 충주 거주자가 아니라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나이 또한 특정할 증거가 없었다. 주변 탐문을 통해서 목격자를 찾아야 했다.
며칠 동안의 탐문 끝에 주점골목에서 당시 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를 찾았다. 목격자 김씨는 그날 저녁 8시쯤 건너편 주점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중 바람 쐬러 나오다 오씨 주점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옆모습을 얼핏 봐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보통체격이라는 것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다른 손님은 없었다는 것도 기억했다. 그러나 그도 범인의 얼굴이나 나이를 짐작하지 못했다. 유 경장은 답답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있었다.
15년이 흘러도 지문은 남는다
세월이 흘러 주점골목의 흔적은 사라졌다. 유 경장은 경위로 승진해 수사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사건 이후 15년이 흘렀으나 시간만 나면 골목 어귀를 서성였다. 무언가 또 다른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25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유 경장은 컴퓨터를 통해 지문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본청에 갖추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불현 듯 주점 여주인 살해사건이 떠올랐다. 곧바로 사건파일을 들춰 본청에 지문 식별 요청을 했다. 본청 증거분석계는 미제사건 파일에서 지문을 찾아 자동검색시스템에 적용했다. 지문의 주인은 나승요(1960년 생). 사건 당시 32세였다.
경찰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유 경위는 나씨 체포에 나섰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이미 전과 5범의 범죄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살인 후에도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도와 준강도 등으로 또다시 4회에 걸쳐 처벌받았다. 나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충주경찰서 형사들은 최근 범죄를 저지른 공주와 대전을 대상으로 탐문에 나섰다. 탐문 19일만인 5월14일 형사들은 승복을 입은 나씨를 체포했다. 나씨는 1m70cm 정도의 키에 보통 체구였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인하는 범인
그는 15년 전 사건당일 저녁 주점골목을 배회하다 8시쯤 오씨의 주점에 들어갔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내실에 들어가 술을 마시던 나씨는 자정쯤 오씨에게 여관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술상을 왼손으로 잡아 밀치고 강제로 오씨를 성폭행하려 했다. 오씨가 발로 노씨를 차는 등 강하게 반항하자 노씨는 한 손으로 오씨의 목을 잡아 넘어뜨린 후 피해자의 반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배위에 올라타고는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항거불능으로 만들었다. 바지를 벗고 강간하려는 순간 오씨가 손톱으로 할퀴는 등 거세게 반항했다.
이에 그는 양손으로 오씨의 목을 졸라 사망케 했다. 오씨가 숨지는 과정에서 배설을 하자 놀란 나씨는 바지를 주워 입고는 급히 밖으로 달아났다. 그는 그날로 충주를 떠나 공주 등에서 공사판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 계룡산으로 들어가 도인 행세를 했다. 이어 그는 머리를 깎고 스님 행세를 하며 동학사 금산사 일대를 돌아다니다 또 다시 강도 절도 등 범죄를 저질렀다. 나씨는 경찰에서 살인 사실을 부인하다가 거짓말탐지기 검사에 응하면서 살해사실을 인정하고 범행동기와 범행현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서 술을 마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다며 살인을 부인했다. 그러나 사체에서 발견된 정액과 음모에서 나온 혈액형이 나씨의 것과 일치했고, 오씨의 손톱 밑에서 나온 혈액형도 나씨의 것과 동일했다. 또한 술상에서 나온 지문이 나씨 것으로 판명됐다.
나씨 변호인은 피해자의 질 속에서 발견된 정액이 나씨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으나 재판장은 배설물이 사체의 이동 등으로 인한 흐트러짐 없이 항문 아래에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피해자의 사체 주위에 벗겨져 있던 하의에 전혀 묻어있지 않은 점을 들어 피해자가 사망한 후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자를 간음하려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질 속에 있던 정액은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에 누군가와 성교를 했을 수 있으나 이것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나씨는 항소심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그 형량을 줄여줄 것을 간청했으나 판사는 나씨의 범행이 잔인하고 뉘우침이 없어 그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씨는 징역 20년 형을 받고 현재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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