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문재인 상임이사 노 대통령 서거 1주년 인터뷰
“진보민주주의 ‘빨갱이’ 소리 듣지 않을 때 노 대통령 편히 쉬실 것”
천안함 사건, 서해평화지대 무력화시킨 책임 따져야
지난 1년간 이명박정부 누구도 ‘유감’ 전해 온 사람 없어
18일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속에 법무법인 부산을 찾았다. 문재인 변호사, 자신은 노무현 재단 상임이사로 불리기를 바라는 사람, 노무현 정권이 추구한 깨끗한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치에 몸담는 것은 자신의 업이 아님을 공표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을 역사인물로 가장 존경하는 그와 마주앉아 서거1주년을 앞두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회고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한 후 1년을 회고한다면.
국가적으로 볼 때 참담하다. 참여정부 퇴임 때 어느 정도의 후퇴나 정체는 예상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김대중 정부 이전이 아니라 70~80년대로 돌아가 버렸다.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는 6월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힘들게 발전시키다 김대중 정부 때 비약시켰고 참여정부때 질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 모든 진보를 순식간에 허물어버리는 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다. 참담하다. 다소 후퇴하더라도 다음에 노력해서 되돌릴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남북관계처럼 한번 망가지면 복구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이런 걸 다 망가뜨린 건 실정을 넘어서 범죄, 아니 역사적 죄악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요새 천안함 사건 보면서도 노 대통령이라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거나 선거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참모들이 그런 관점에서 얘기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단호하게 물리치고 그랬으니까.
사건 초기에 초동대응 잘했다고 했는데 군쪽의 보고만 듣고 그리 판단했을 것이다. 군의 생리를 모르고 보고의 생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범한 잘못이다.
안보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대통령이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한 후 최고결정권자가 판단을 해야 한다.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 애기하면 쉽게 자기확신에 빠지고 잘못한 줄도 모르고 실수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균형을 잡아줄 두 전직대통령이 안계신 것은 이명박정부로서도 불행에 빠져드는 고리가 될 수 있다.
-노 대통령 재임기간이라면 천안함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당선자 시절에 북핵위기가 발생해 미국에서 제한적 북폭 얘기가 나왔다. 당선자는 거듭거듭 한국의 동의없는 공격은 있을 수 없다고 했고 한미정상회담 때도 계속 강조했다. 노 대통령 같으면 천안함의 원인조사에 사심없는 객관적 과학적 조사를 지시하면서 동시에 상황을 파탄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는 정책기조를 분명히 누누이 강조했을 것이다.
서해에서는 의도하지 않아도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지대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초전박살해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안 일어나게 하는 조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서해평화지대를 남북간에 합의했다. 해상의 개성공단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것인데 이 정부가 다 부정해 버렸다. 이런 점을 되집어 한다.
-참여정부는 성공과 실패의 평가가 엇갈린다. 국정운영을 한번 경험했으니 다시 한다면 어떤 점을 극복하겠다는 교훈이 있는가.
경험이 꼭 좋은지 모르겠다. 과거 관행과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에 더 쉽게 타협해버릴지도 모른다. 조금 더 영악하게 해서 단기적인 인기나 지지를 올릴지는 모르지만 긴 역사로 볼 때 그걸 더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참여정부는 현실적인 역량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가치만을 앞세워 힘에 부치게 밀어붙이다가 고전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민심과 함께 가는 데 실패했다, 더디더라도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차근차근히 했어야 하는데 우리가 좀 서둘렀을 수도 서툴렀을 수도 있고, 우리가 옳다는 오만한 마음가지고 그냥 밀어 붙였을 수도 있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서 가능한 부분만 하자고 했다면 개혁은 거의 못했을 것이다. 열악한 언론환경과 두터운 기득권층의 완강함은 주어진 환경인데 그 속에서 일하자면 우리역량이 강화되는 길밖에 없었다. 미국과 자주 외교에서 한걸음 더 못나간 이유가 미국보다도 더 물고 뜯는 국내의 여론 때문 아니었는가. 국민과 소통하며 했어야 한다는 말은 원칙적인 얘기지만, 현실적으로 그 적절한 수준을 찾는다는 건 어렵고 또 현실가능한 수준에서 하자고 임했으면 개혁이 정말 초라해졌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검찰권을 내놓은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었고 그 때문에 검찰로부터 존중받기보다는 퇴임 후 무시 경멸당해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의 정치중립 문제는 김대중 정부도 실패한 민주화운동세력의 오랜 요구였다. 중립화 보장은 정도껏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장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안하는 것이다. 검찰을 장악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쓰면 검찰한테 특권을 줘야한다. 봉사를 요구하면 대가를 줘야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검찰과 정권의 야합 역사였다.
정치중립은 무슨 특별법을 만들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부분이다. 중립을 훼손하지 않는 대통령의 결단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문화로 뿌리박혀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정부가 도로 뒤집어 버리니까 문제가 된 것이지 참여정부의 중립보장이 이상적이어서 문제라는 시각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검찰권을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퇴임 후 검찰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공개적으로 즉답할 일은 아니다. 다만 김대중 정부와 그 앞의 정권들이 집권초기 검찰권을 장악한 듯이 보여지만 임기후반에 힘이 떨어지고 미래권력이 부상하면 ‘야합’이 급속도로 무너졌다. 두 정권 모두 아들이 구속되고 검찰에 의해 망가지다시피하지 않았느냐. 검찰과 정권의 ‘야합’은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지난 1년간 노 전대통령이 가장 생각날 때는 언제였나.
그게 참 희한하더라. 사진을 보거나 묘역을 찾거나 하는 특별한 순간에는 무덤덤하다. 그럴 때가 아니고 문득 불쑥불쑥 떠오르며 목이 매인다든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런다.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에 별다른 말도 아닌 얘기를 듣다가 눈물이 나니 이상하다.
-1년이 지났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점이 이해되는가.
당시 우리는 사법적 대응에 자신이 있었고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논의했기 때문에 몸을 던지는 그런 선택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모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그분의 성정과 본인은 자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국민께 죄송해 하는 마음 때문에….
일이 터지고 난 후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서를 보면 문장을 다듬을 정도로 머리속에 꽤 오랫동안 품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걸 우리가 까마득히 몰랐다는 것이 진짜 가슴아팠다.
-묘역의 박석에 ‘편히 쉬십시오’라고 썼는데 노 전대통령이 아직 편히 가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가.
마지막의 그 분의 고통들, 남아있을 회한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그 말이 제일 절실했다.
-누군가가 정치적 위업을 계승하고 후계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때가 편히 쉴 때라고 보는가.
그분이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빨갱이’ 소리 듣지 않고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진보의 토대나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싶었던 그분의 남은 생애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뤄지면….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유감이나 사과를 전해 온 적이 있는가.
전혀 없었다. 그 쪽은 행사 등 의전차원에서 불가피한 경우 아니면 우리와의 접촉을 금기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