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5기 과제와 전망 ''지방자치 새 역사를 쓰자'']투명행정으로 지방경쟁력 높여야
비리로 얼룩진 구태 탈피 시급 … 견제 장치·기구 강화가 관건
민선5기 지방자치가 시작됐다. ‘지방자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절름발이 지방자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선4기 들어 토착비리, 재정난 등이 심각해지면서 ‘지방자치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유권자들은 6·2 지방선거를 통해 ‘변화’를 선택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지방자치의 일대 도약을 이뤄내길 바라고 있다. 내일신문은 새로 출범하는 민선5기의 과제와 전망을 6회에 걸쳐 짚어본다.
‘공정하고 부패없는 깨끗한 행정’ ‘학연·지연을 떠나 공정한 인사제도’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적 행정’ ….
민선5기를 관통할 또하나의 핵심 단어는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이다. 민선4기까지 단체장 전횡과 부정·부패, 견제기구인 지방의회의 비리 등으로 지방자치제도가 얼룩져왔기 때문이다. 민선5기 단체장은 물론 여소야대로 처지가 바뀐 지방의회까지 투명행정으로 지방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선4기 기초단체장 48.3% 기소당해 = 지난 2006년 선거로 뽑힌 민선4기 단체장 246명 가운데 6월 말 현재 절반에 달하는 119명(48.3%)이 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42명이 제대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직위를 상실했다. 민선1~4기 단체장 기소 현황을 보면 지방자치 퇴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종 범죄로 기소된 지방자치단체장은 민선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민선1기때 총 245명 가운데 23명(9%)이 기소되더니 4년이 지난 민선2기에는 248명 중 60명(24%)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민선3기에도 248명 중 78명(31%)으로 다시 늘었다.
유형별로는 뇌물수수가 가장 많다. 민선1기 16명(6.5%) 민선2기 33명(13.3%) 민선3기 29명(11.5%)이 뇌물수수로 기소됐다. 민선1~3기를 통틀어 78명이니 선거법 위반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민선1~3기 단체장 숫자(73명)보다 많다.
뇌물수수를 부르는 요인은 ‘토착비리’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가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법기관에 의해 뇌물수수로 처벌받거나 자진사퇴하거나 자살한 23개 사례를 검토한 결과(복수요인) 각종 인허가로 인한 비리가 9건으로 가장 많다. 골프장 아파트 조선소 골재채취 등이다. 그 다음은 각종 건설과 연결된 관급공사(7건)와 승진 보직전환 등 인사(6건)문제다.
나머지가 도시계획(3건) 관급용역(2건) 조달(1건) 직권남용(1건)이었다. 김장민 연구원은 “믿을 수 있는 측근을 통해 받으면 사후에 뇌물수수가 발각되더라도 단체장이 범행을 부인하거나 은폐할 수 있어 최근에 그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체장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는 단체장과 같은 소속 정당 일색으로 채워지면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김명환 상지대 교수는 “단체장과 의회의 일당독재가 문제”라며 “자치단체장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저하돼 독주가 그대로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2006년 7월 출범한 서울시의회가 대표적이다. 선출식 의원 96명 모두가 서울시장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었던 서울시의회에서 뇌물수수 등 비리혐의로 시의원 32명이 실형이나 벌금형을 받았고 선거법 위반으로 4명이 벌금형을 받았다.
◆민선5기 변화의 싹 보인다 = 민선5기 출발과 함께 각 단체장들은 공직사회에 고도의 투명성을 주문하는 한편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후감시를 강화할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도민참여예산위원회와 도 감사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고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재개발·재건축에 주민 참여를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은 행정기관 중 처음으로 감사관을 민간 전문가로 채용하기로 했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서울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을 견제하기 위한 주민참여예산제도 도입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변화에 기대를 걸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비용 선거구조가 토착세력과 연계한 비리로 이어지고 정당공천제가 높은 도덕성과 뛰어날 자질을 가진 인물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된다는 것이다. 금창호 지방행정연구원 자치행정연구실장은 뇌물수수의 근본적 원인을 선거제도로 꼽고 “단체장 개인의 도덕성 강화와 함께 선거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기초단체장 상당수가 선거법 위반이나 비리 등으로 중도하차한 것은 책임정치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라며 “정당공천제가 책임정치를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직접 견제할 수 있도록 마련된 각종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좋은 해법으로 꼽힌다. 주민감사청구제 주민소환제 등 사후 감시장치를 주민들이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도입된 주민소환제가 대표적이다. 지역 주민 투표로 단체장과 지방의원 해임까지 가능한 제도이지만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4월까지 전국 26곳 단체장에 대한 소환이 추진됐고 김황식 하남시장과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해서는 주민투표까지 갔지만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투표함도 열지 못하고 무산됐다. 금창호 연구실장은 “1차로는 지방의회가 견제해야 하지만 지방의회에서도 걸러내지 못한 부분은 주민과 시민단체가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효율·생산성 높이는 방안 = 민선4기 지방단체장 재보권선거 관리비용만 260억원. 선거운동비용이나 단체장 선거로 인한 행정공백,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신뢰도 저하까지 따지면 지역사회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은 어마어마해진다.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고스란히 주민 몫으로 돌아온다.
민선5기 새 단체장들이 지방자치제의 질적 도약을 위해 투명·청렴 행정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는 “부정부패는 행정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그에 따라 (지방)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깨끗하게 실력으로 승부해야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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