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지도자’ 관문에 서다
은평을에서 정세균 대표민주당 정세균(사진) 대표가 ‘관리형 대표’를 넘어 명실상부한 당의 대표지도자로 자리잡을 관문에 섰다. 이번 재보선은 ‘정권심판론’ 성격을 띠지만, 동시에 ‘정치인 정세균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기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서울 은평을 선거는 정세균 대표에 대한 관심을 기대로 바꿀지, 아니면 실망감으로 돌릴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리라는게 당내외의 공통된 관측이다.
차기 지도부를 뽑을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지지층은 네 번의 선거 실적을 놓고 정세균 대표를 평가하겠다는 분위기다. 특히 중년의 전통적 지지자들은 정세균 대표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 자리를 채울 대표지도자로 성장할지 눈여겨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세균 대표의 27일 서울 은평을 유세 현장 분위기는 비장하고 절박했다. 그는 퇴근길 유권자를 한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저녁을 걸렀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6000원짜리 김치찌개로 허기를 때웠다. 심지어 밥을 먹고 일어서자마자 식당에 있는 시민에게 “야권단일후보, 장 상에게 꼭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잠시 쉬려고 앉았다가도 당원들 요청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 유세를 계속됐다.
그는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검은등산화를 신고 자정 무렵까지 거리를 누볐다. 메시지도 간결해졌다. “이재오는 안됩니다. 여러분, 민주당과 야당을 도와주십오. 부탁드립니다.” 당직자들은 “정 대표의 연설 중 이날 밤 연설의 호소력이 가장 강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인 정세균’에 대한 유권자 발언이 달라지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는 “정세균 대표가 너무 부드러워”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 야권연대와 승리 이후에는 “정세균 대표가 누구야? 만만치 않은 것 같아”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은평을 유세현장에서는 “어유, 이번에 이기면 정말 눈여겨보겠다”는 발언이 많았다.
특히 야권후보단일화가 극적으로 타결된 이후 민주당 지지층들이 유세현장에 몰려나와 정 대표를 반기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27일 한밤 유세에서 50대 한 여성은 얼음물을 들고 나와 정 대표를 찾았다. “우리 대표님, 우리 대표님, 김대중 대통령만큼 우리 마음 알아주세요.” 60대 한 남성은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 창문을 열고 “정세균, 최고!”를 외쳤다.
오랜기간 민주당을 지지해온 당원들의 대화 내용은 은평을 선거에 따라 민심이 어떻게 바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정세균 대표가 DJ보다는 아직 좀 약하지? 그래도 복이 많은 사람인가봐. 선거때마다 이겼으니까. 이번에 장 상을 공천했다고 말이 많았는데 이기면 누가 시비를 걸 수 있겠어. 근데 지면? 시끌시끌하겠지. 잘 봐야 해.”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대통령후보였던 그가 왔다”
인천 계양에서 정동영 의원27일 정동영(사진) 의원은 김희갑 후보가 뛰고 있는 인천계양에서 5번 유세전을 펼쳤다. 특별한 연고 때문이 아니다. 김희갑 후보가 그의 계파 인물도 아니다. 태백의 최종원 후보가 한번만 더 다녀가 주면 박빙전을 뒤집을 수 있다고 요청했지만, 그는 전날밤 중앙당이 계양투입을 결정하자 이에 따랐다. ‘당과 지역에서 요구하면 그대로 따라 뛴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저녁 7시 계산역 앞. 연단에서 사회자는 “17대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정동영 의장이 오셨다”고 소개했다. 사회자는 “정 의장이 대통령이 됐더라면 남북관계가 이렇게 파탄 났겠느냐, 4대강사업이 벌어졌겠느냐”며 그를 이명박 대통령과 맞대비시켰다.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노령기초연금이 깎였겠느냐”며 노인정책 관련 발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8시반 계산 홈플러스 앞 사거리, 유세장 패션으로 굳힌 노타이의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선 그는 “삼복염천에 6.25 이후 최대의 군사훈련이 동해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멀쩡한 한반도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남방3각 북방3각이 대결하는 80년대로 되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대비되는 측면을 대북정책으로 내보인 셈이다.
‘정 의장’이 뜨자 멀리 대전과 부천 등지에서 몰려온 그의 열렬지지자들이 유세장 분위기를 달구었다. 대구출신이라는 한 열성팬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정동영이 대통령 됐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의 큰 표차 때문인지 민주당은 현정부의 실정을 김대중 노무현 10년과 대비시킬 뿐 “정동영이었다면…”이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정 의장’의 핵심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차기당권 경쟁을 눈앞에 두고 “정동영이었다면…”이라는 ‘MB 반사효과’를 통해 그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고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여성은 “송영길 시장이 잘해서 인천에서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면서 “정 의장이 저번에 주류 비주류 하는 것 보고 실망했다”고 말해 차세대 광역단체장에 대한 앞선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정 의원은 시장방문길에 민주당 당원이라는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24년 산 토박이를 빼고 한달 산 생면부지를 공천하느냐”는 등의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특히 유모차를 끌고 외출나온 엄마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멈춰서서 한참을 얘기를 나누었다.
정 의원의 한밤 유세는 저녁아홉시반에 현장을 떠남으로써 비교적 일찍 끝났다. 그는 “열두시까지 유세를 해야지 벌써 마이크를 끄느냐”고 했지만, 김희갑 후보측이 밤늦게 시끄럽다고 민원역효과만 난다며 현장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인천 계양 =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칩거에서 ‘중심’ 가는 길목
충주에서 손학규 전 대표손학규(사진) 전 대표는 은평과 강원, 천안 등에서도 지원유세를 펼쳤지만 가장 마음을 쓴 곳은 충주다. 최근 1년6개월을 머물렀던 인연이 있다. 충주(忠州)는 중심(中心)이다. 그가 민주당과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가느냐 변방에 머무느냐의 길목에 충주가 있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이 종친 27일 밤 12시까지 충주 시내를 누볐다. 1분1초가 아깝다는 듯 발걸음은 빨랐고, 유권자들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이날 오전 5시, 충주시내 공원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지원활동을 시작했고 낮에 잠깐 강원도 철원과 태백을 갔다가 저녁 7시쯤 다시 충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정기영 후보의 손을 잡고 4000여명이 운집한 기독교행사에 참석했다. 행사 중 빠져나오기가 힘들어 3시간여를 발이 묶였다. 밤 10시, 그는 유권자들을 더 만나야 한다며 수행원들을 다그쳤다.
그는 끼니를 걸렀다. 오전에 차에서 먹은 김밥 한 줄과 만두 1인분, 오후에 강원도에서 넘어오며 먹은 옥수수 하나가 이날 식사의 전부였다고 한다.
26일 지원유세 때는 5시간을 넘게 유세차를 타고 돌며 비를 흠뻑 맞으며 600곳의 상가를 방문했다. 정기영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이에 힘을 얻었다. 거리 유세를 함께 따라다녔던 한 선거운동원은 “중앙당에서 여러 분이 지원유세를 왔지만 손 전 대표는 자기 선거처럼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며 고무됐다.
선거 초반, 공천 갈등으로 시·도의원들과 당원들의 선거 참여가 미온적이었으나 갈등의 양축의 손을 잡아끈 것도 그였다. 시도 의원들을 독려해 뭉치게 만들었다. 선거운동원들은 “선거 초반 열세를 면치 못했던 판세를 박빙 승부로 바꿔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들도 호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밤 늦은 시간 거리에서 거물급 정치인을 마주치는 놀라움에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연수동 식당에서 만난 안성욱(36)씨는 “밤 늦은 시간까지 거리에서 만나게 되니 망설였던 투표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밤 12시. 더 이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자 그는 선거사무실을 찾아 남아있던 선거운동원들을 격려했고, 정당사무실로 옮겨 시도의원들과 회의를 이어갔다. 그가 지원유세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간 시간은 심야인 2시 30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손 전 대표에게 충주 재보선은 오랜 칩거를 끝내고 중앙정치무대로 복귀하는 길목이다. 그 자신이 매일 충주에 상주하다시피했다. 주변에선 위험한 도박이라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진로에 충주재보선 결과는 족쇄든 날개든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
충주 =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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