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진실
박준수/밀리언하우스/1만3천원
‘돈’과 ‘탐욕’은 동일선상에 있다. 돈이 부족할 때는 아껴 쓰다가도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 ‘절약’이란 단어를 금세 잊어버리고는 ‘더 많이’를 외쳐댄다. 탐욕 앞에서는 의리도, 친구도 심지어 국가도 없다.
박준수씨는 소설 ‘악화의 진실’에서 조선말기에 돈맛에 놀아난 군상들을 끄집어 냈다.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기 직전부터 당백전이 소멸된 이듬해까지 조정과 한양 시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요 줄거리다. 상인들간의 세력다툼, 화폐위조범과 이들을 잡으려는 관리의 추격전은 긴장감을 주면서 시대상을 절묘하게 현실화시킨다.
대원군이 바닥난 국가재정을 상평통보(엽전)의 백배 액면가를 가진 당백전으로 메우려는 시도는 행정부가 통화량 관리를 하는 것이 갖는 폐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전에 충분히 문제점이 제기되지만 ‘경복궁을 재건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백전은 통화량을 급속도로 늘려 결국 물가를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었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정부에 대한 신용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상인세력간의 다툼을 그린 대목에서는 ‘무더기 빚 투자’ ‘사재기’ ‘담합’ 등의 과정과 결과를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미래의 이익을 현재에 소비하는 빚잔치의 결과는 오늘날의 국가, 지방정부, 기업, 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인들이 당백전 발행에 대응하는 모습은 가치이동경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통화량 급증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치가 화폐에서 실물로 옮겨가는 이치를 보여준다.
화폐위조사건에서는 인간의 탐심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가 조장한 때문이라는 질책도 곁들여놨다. 정부가 상평통보 100개의 가치를 가진 당백전을 상평통보 3개를 녹여 만들 수 있도록 무게와 배합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보여준다. 화폐위조범을 잡을 때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이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화폐란 신용을 자양분으로 하는 아주 민감한 유기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박준수/밀리언하우스/1만3천원
‘돈’과 ‘탐욕’은 동일선상에 있다. 돈이 부족할 때는 아껴 쓰다가도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 ‘절약’이란 단어를 금세 잊어버리고는 ‘더 많이’를 외쳐댄다. 탐욕 앞에서는 의리도, 친구도 심지어 국가도 없다.
박준수씨는 소설 ‘악화의 진실’에서 조선말기에 돈맛에 놀아난 군상들을 끄집어 냈다.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기 직전부터 당백전이 소멸된 이듬해까지 조정과 한양 시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요 줄거리다. 상인들간의 세력다툼, 화폐위조범과 이들을 잡으려는 관리의 추격전은 긴장감을 주면서 시대상을 절묘하게 현실화시킨다.
대원군이 바닥난 국가재정을 상평통보(엽전)의 백배 액면가를 가진 당백전으로 메우려는 시도는 행정부가 통화량 관리를 하는 것이 갖는 폐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전에 충분히 문제점이 제기되지만 ‘경복궁을 재건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백전은 통화량을 급속도로 늘려 결국 물가를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었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정부에 대한 신용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상인세력간의 다툼을 그린 대목에서는 ‘무더기 빚 투자’ ‘사재기’ ‘담합’ 등의 과정과 결과를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미래의 이익을 현재에 소비하는 빚잔치의 결과는 오늘날의 국가, 지방정부, 기업, 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인들이 당백전 발행에 대응하는 모습은 가치이동경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통화량 급증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치가 화폐에서 실물로 옮겨가는 이치를 보여준다.
화폐위조사건에서는 인간의 탐심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가 조장한 때문이라는 질책도 곁들여놨다. 정부가 상평통보 100개의 가치를 가진 당백전을 상평통보 3개를 녹여 만들 수 있도록 무게와 배합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보여준다. 화폐위조범을 잡을 때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이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화폐란 신용을 자양분으로 하는 아주 민감한 유기체”라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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