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을 타는 내 몸은 악기여라“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분당차병원 지하 강당에서 울리는 고운 선율이 생채기 앉은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듯 그 치유의 힘에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
35명의 화음이 모여 솜털마냥 부드러운 노래를 실어 나르는 이곳. 성남시니어여성합창단이 모여 노래를 하는 곳이다.
올해 초 창단을 했으니 이제 막 태동한 신생 합창단이지만 원숙미와 함께 흘러나오는 세련되고 고운 창법에는 세월을 통해 다듬어진 인생이 담겨있다.
평균 연령 65세, 여성 시니어로 구성된 이들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환희와 기쁨, 슬픔과 고단함을 초월한 소리에는 사람의 몸을 타고 나오는 소리도 이처럼 아름다운 악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노래를 좋아하는 열정엔 나이가 필요 없다
“제가 36년 동안 성남여성합창단에서 활동을 하다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노래를 좋아 하고,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지요. 여러 지인들과 뜻을 모아 준비를 한끝에 올해 1월에 창단을 하게 됐답니다.” 합창단 창단의 주역인 박종순(63·태평동) 단장의 설명이다.
박 씨의 설명처럼 이곳은 55세 이상 시니어들이 모여 노래하고 활동하는 모임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35명 단원 모두가 한 결 같이 노래와 함께 한 인생임을 증명하듯 예찬론을 펴는 이들. 다만 노래교실 단골 메뉴인 유행가가 아닌 가곡이나 클래식을 좀더 좋아한다는 것이 차이 라면 차이. 그래서일까 단원들 대개는 학교 합창단이나 시 소속 합창단, 혹은 어머니합창단 등에서 활동했던 베테랑 단원들이다.
“기존 합창단은 연령 제한이 있어서 편입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노인들도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생기니 옳다구나 가입을 했죠.” 서울 태화 합창단과 분당 어머니합창단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던 장명희(65·정자동)씨의 가입 동기다.
“55세부터 70세까지 단원을 모집했는데 워낙 출중한 분들이 많이 오셔서 아쉽지만 그중 25분을 탈락시켰어요. 오디션 통과 하신 분들은 정말 내로라하는 실력들을 갖춘 분들이시죠.” 창단 멤버들의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박 단장의 설명에 자부심이 한껏 드러나 있다.
벨칸토, 분당 마사회 등에서 합창단 활동을 해왔던 유신박(70·정자동)씨도 시니어합창단의 위상이 생각보다 높다고 뿌듯해 한다.
“그동안은 노래교실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성남시 합창제에 저희들이 나가는걸 보고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달리 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죠.”
학교, YMCA, 성당 성가대에서 20년 이상 노래를 불러왔던 김행자(65·야탑동)씨도 “젊은 사람들 위주로 단원들을 모집해 45세가 넘으면 커트라인에 걸렸는데 시니어 합창단은 새 로운 인생, 새 길을 열어 준 곳이다”며 자랑대열에 합류한다.
노래와 라인댄스의 결합, 내년엔 해외 공연도 앞둬
이렇듯 합창단 활동으로 활기찬 인생을 되찾았지만 이들에겐 아직 난제들이 남아 있다.
“고맙게도 분당 차병원에서 지하 강당을 연습장소로 쓸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있지만 저희들이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단독 공간이 없어 그게 제일 아쉬워요.”
시니어 합창단은 현재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태로 박종순 단장이 개인적인 사비를 털어 드레스도 마련하고 운영경비도 대고 있지만 개인이 충당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그저 인생 후반기에도 사람들과 어울려 좋아하는 노래하면서 살고 싶은데 여건 마련이 쉽지만은 않네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맹렬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단원들. 얼마 전 7월에는 성남합창제에 출전해 호응을 얻었고 그동안은 지역의 소외된 곳으로 봉사도 다니며 몸과 마음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치유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단다.
앞으로 11월에 있을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공연 연습에 한참인 이들은 노래 연습이 끝나면 ‘라인댄스’를 배우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용 지휘자(경기대, 경희대 출강)님과 라인댄스를 가르쳐 주시는 강사님도 모두 무료 로 봉사를 해주고 계세요.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시죠.”
노래를 하고 라인댄스를 하면서부터 몸이 아픈 것도 낫고 우울증도 고쳤다는 단원들을 보면서 꿋꿋이 밀고 나간다는 박 단장.
“노래하면서 마음이 즐거우니 자식들이 섭섭하게 해도 서운함이 덜해 관계가 좋아지는 것 같아요. 라인댄스하면서는 무릎 관절도 좋아지니 우리 같은 할머니들에게 이만큼 좋은 활동이 어디 있겠어요.”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내년쯤엔 연주요청이 들어온 일본, 중국 등지로 방문계획을 세우고 있단다.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는 시니어 합창단의 하모니가 내년엔 중국과 일본에서도 잔잔한 선율로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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