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되살린 생태 · 환경 보물창고
호수 살린 바닷물로 이번에는 조력발전까지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안산시입니다." 지하철 4호선 종착역으로 더 알려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를 뒤로 하고 5㎞ 남짓 달리다 보면 시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너른 갯벌 위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왼편으로는 군데군데 삐쭉이 솟은 송전철탑이 우선 눈에 띈다. 시화호다.
◆육지가 된 섬, 생업 바뀐 주민들 = "시화호는 각별한 곳입니다."
12.7㎞에 달하는 긴 방조제를 건너면 포도와 바지락칼국수로 이름난 대부도다. 최인모(42) 대부동 주민자치위원장은 대부도 토박이이자 시화호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온 산증인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3m×2.5m 크기의 창에 가리개를 친다. 금방 지나온 시화호와 방조제가 한 눈에 들어온다.
"1998년이나 1999년쯤 될 거예요. 더 개발되기 전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요."
항공사진을 구해 가리개를 자체 제작했다. 최씨는 "더 이전 풍경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대부도에서는 돈 자랑 말라'고 했어요. 대부도가 바지락칼국수로 유명하잖아요? 갯벌에 나가기만 하면 바지락을 캘 수 있었거든요. 농사짓는 것처럼 모종 심고 비료 주고 하지 않아도…."
호수를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고서 섬은 육지가 됐다. 그 과정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쪽 바다와 갯벌 40%가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시화호를 만들 때 가장 희생이 컸던 이들은 대부도 주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 사람들이 대부분 그대로 살아요. 대신 '업'이 바뀌었죠. 전에는 반농반어였는데 이제는 농사만 지어요."
바다에 면한 지역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섬을 휘감아 돌던 바닷물이 제방에 막히면서 동남쪽 바다에 뻘(개흙)이 쌓이고 있단다. 최씨는 "선감도에서 동동 말부흥까지 뻘이 깊어지고 선감도 부두는 아예 잠겨버렸다"고 말했다. 굴 산지로 이름난 말부흥에서 굴은 거의 사라졌고 낙지만 조금씩 잡힐 정도다. 어촌계도 없어졌다. 바다나 갯벌뿐 아니다. 섬 한가운데 솟은, 주민들 자랑거리였던 황금산은 골재 채취로 파헤쳐졌다.
"물론 육지가 되고 나서 좋은 점도 있죠. 혜택이라고까지 하기는 뭐하지만."
1970년대에야 전기가 들어왔고 바다 건너 병원까지 가지 못해 맹장염으로 사망하는 주민이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은 나아졌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호수 =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같아요."
바지락을 비롯해 조개와 해산물 천국이었다가 호수를 조성한 후 어패류에겐 지옥이 됐고 어렵사리 바닷물을 통하게 한 뒤에는 천연기념물과 희귀동물이 찾는 생태천국이 됐다는 얘기다.
1994년 1월 시화호가 완공된 후 10여년간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라 불렸다. 바닷물이 통하지 않자 갯벌 속 생물이 죽어가기 시작했고 인근 공장 오폐수와 생활하수가 호수로 유입됐다. 1997년 27ppm까지 수질이 악화됐다. 주민들이 나섰다. 매일같이 시화호를 감시하고 관련 회의마다 방청하며 목소리를 냈다. 환경단체가 힘을 합쳤고 언론이 주목했다. 여론에 밀린 정부는 결국 바다와의 통로를 다시 열었다. 현재 배수갑문을 통해 하루 두차례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바람이 부는 날이면 호수 건너편 신도시까지 악취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았어요."
갯벌 생물들이 숨을 쉬기 시작하면서 시화호도 되살아났다. 수질은 평균 2.7ppm. 해수 수질로는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기준 2급수 수준까지 개선됐다. 천연기념물인 큰고니가 대부동을 찾고 노랑부리저어새는 호수 건너 반월공단 앞에 둥지를 틀었다. 매과에 속하는 흰고리수리까지 멸종위기 혹은 희귀 철새들이 조류 관찰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안산시는 100여종에 이르는 철새 15만 마리 가량이 시화호를 찾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간석지는 포유류 천국이 됐다. 고라니를 비롯해 고양이과에 속하는 삵 너구리 족제비 산토끼 개체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안상철 안산시 문화관광과장은 "시화호는 이제 죽음의 호수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자연학습장"이 됐다고 말했다. 습지가 될 갯벌에는 습지공원이 들어서 수도권 시민들이 줄을 잇는다.
◆"과거에 파헤친 것 복구는 해놓고…" = 시화호는 지금 한단계 더 도약을 준비 중이다. 호수를 살리기 위해 끌어들인 바닷물을 활용한 조력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지속적인 수질개선을 위해 2000년 안산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안산시에서 제안했다. 시화호 수질을 살리면서 하루 25만5000㎾에 달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시는 발전소가 준공되면 대부도와 시화호 일대를 수상생태 탐방과 철새관광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정도에서 멈췄으면 싶어요. 시화호가 다시 지옥이 돼가려는 징조가 보여요. 인간이 훼손한 걸 자연이 겨우 복원해가는 중인데…."
최인모씨는 "간석지에 대규모 공단과 농경지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큰 계획도 좋지만 과거에 파헤친 것 복구는 해놓고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최소한 주민들에게 복구 계획이라도 제시해야 한단다.
"사리포구를 복원해 시화호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을 띄울 수도 있어요. 방아머리에 내려 대부도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있구요. 황금산은 조금만 가다듬어주면 산악자전거 산악오토바이 경주장으로 충분하거든요. 주민들하고 의논해서 시화호 활용방안을 찾으면 좋겠어요."
바다와 평야가 만나는 서해안. 선사시대부터 수산물 보고였고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도 화수분같은 식량창고이자 거대한 소금제조장이었다. 서해안의 중요한 어항이자 대중국 무역항이던 군자만(경기만)이 시화호로 바뀐지 16년. 모습을 달리한 군자만이 세월을 넘어 또다시 '화수분'을 꿈꾼다.
[담수호로 조성해 해수호로 변경]
시화호는 1970년대부터 계획된 반월특수지역개발계획에 따라 조성된 인공호수다. 경기도 안산시를 비롯해 시흥시와 화성시에 둘러쌓여 있다.
1987년 6월 착공해 대부도와 화성을 잇는 불도 탄도 대선방조제가 1988년 5월 완공됐다. 1994년 1월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를 잇는 주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시화호가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시화호라는 이름은 양쪽 끝인 시흥과 화성의 앞 글자를 따서 붙였다.
시화방조제 총 길이는 12.7㎞이고 호수 면적은 43.80㎢, 총 저수량은 3억3200만톤이다. 방조제 건설로 주변에 1만3345㎢에 달하는 간석지가 만들어졌다.
시화호는 본래 담수호로 만들어졌다. 호수 주변 간석지를 농지나 산업단지로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시화호 물을 그 용수로 공급할 작정이었던 것. 그러나 방조제 완공 이후 시화호 수질이 급격히 악화돼 환경부는 2005년까지 방조제 공사비용(4930억원)과 맞먹는 4500억원 가량을 투입해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997년부터는 수질개선을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2000년 12월 결국 시화호 담수화를 포기했다.
[연재를 마치며]
지역 골칫거리도 가능성은 있다
팔도강산에는 이름에 걸맞게 전국 방방곡곡에는 자신들만의 자랑거리 '향토자원'이 있다. 임실치즈같은 먹을거리, 한산모시를 활용한 입을거리, 완주한지를 이용한 볼거리 등 다양하다.
울주옹기처럼 선대에서 전해준 기술도 있고 합천 불교문화처럼 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자산도 있다. 때로는 안산 시화호처럼 지역 골칫거리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고 장흥 무산김처럼 생산법을 달리해 자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초 '향토자원 명품화·국제화' 계획을 세우고 9월부터 본격적인 자원 발굴에 나섰다. 잠재력이 있는 향토자원을 전수 조사, 성장 가능성이 있는 상품은 집중 지원해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발굴된 자원은 7만여건. 행안부는 내년부터 이들 자원을 명품화 가능 정도에 따라 핵심자원(5%) 유망자원(10%) 잠재자원(20%)으로 분류, 산업화나 산·학·연 협력 연구·상표개발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핵심자원은 지적재산등록과 국·내외 판촉까지 도울 계획이다. 향토자원 개발 우수 지자체는 행·재정적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읍·면·동마다 1개 명품 향토자원 갖기'. 원효대사가 걸었던 그 길을 스페인의 카미고 델 산티아고(순례자의 길)처럼, 백제와 신라 왕릉이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세계인이 공유하는 명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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