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진단>정부, 시장규율 존중해야(김기수 2001.10.24)
김기수 금융팀장
정부가 증시부양을 위해 내놓은 장기증권저축 판매가 기대치에 밑돌고 있다.
10월 22일 오후부터 23개 증권사가 판매한 장기증권저축상품의 판매액이 71억2600만원에 그쳤다. 이날 대부분의 투신운용사는 판매사를 통한 자금유입이 미미해 펀드 설정조차 못했다. 23일에는 은행권도 영업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지만 호응도는 신통치 않다.
장기증권저축은 근로자주식저축과는 달리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첫해에 5.5%, 2년차에 7.7%(주민세 포함)의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데도 고객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상품명칭만 보면 ‘저축상품’이지만 실제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투자상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투자의 경우 주식편입비율이 무조건 70% 이상이어야 한다. 주식을 사고 파는 횟수도 연 400%로 제한돼 있어 투자이점이 상당히 떨어진다.
정부가 투자상품을 저축상품으로 포장 고객 유인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회사는 저축상품이라는 명칭을 붙여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연말에 세액공제를 노린 자금이 몰린다면 1조원 이상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모 은행 관계자는 이 상품의 판매시한인 2002년 3월까지 금융권에서 3조5000억원 가량이 판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상품이 주가가 떨어졌을 때 운용을 시작해 장기투자를 통해 주가가 올라 안정적인 수익률을 달성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주가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결과가 예상과 전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주가가 폭락해 고객이 원금을 날린 후 ‘저축상품’에 대한 원금보장을 요구한다면 정부와 금융기관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원금보장은 절대 안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고객의 항의에 치이고 정치논리에 휘둘려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한남투신증권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부는 한남투신증권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영업정지를 신청하자 국민투신(현재 현대투신증권)에 떠넘겨 원금보장의 길을 터 주었다. 국민투신이 한남투신 인수를 전격 발표하던 날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하던 날이었다. 원금마저 날릴뻔 했던 호남지역의 80만 한남투신 고객은 김 대통령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 후 퇴출은행의 실적배당상품인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한 고객들은 한남투신 사태를 사례로 들며 금융감독위원회에 몰려들어 시위를 계속했다.
99년 대우사태가 터진 뒤 정부는 또 다시 대우채 편입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해 손실을 보전해주었다. 수익증권이 투자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손실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번에 시판된 장기증권저축은 근로자주식저축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재경부가 관행적으로 ‘증권저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데 솔선수범 해야 한다. 원칙이 무너지면 시장규율이 서지 않고 시장경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예금자’는 원금의 보전을 중시하고 필요할 때 현금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면 ‘투자자’는 원금 손실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도 차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부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상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투자자들을 모아야 한다.
원금손실 등 투자위험 미리 고지하고 교육해야
정부와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투자자의 역할과 투자에 따른 위험을 미리 고지하고 교육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원금손실이 이루어졌을 때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세금인 재정으로 손실분을 메워주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미 연준(FRB) 그린스펀 의장이 “초등학교 때부터 금융을 배워야 한다”며 조기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경제와 투자교육을 촉진시키기 위해 경제학자와 사업가, 노동단체의 대표 등으로 구성된 미국경제교육협의회(NCEE)를 발족시켜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와 투자교육을 측면지원하고 시장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와 금융회사가 투자상품을 저축상품으로 포장해 고객을 유인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경제관료는 IMF 이후 급변한 경제환경을 따라잡지 못할 경우 제2의 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시장규율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김기수 금융팀장내일진단>
김기수 금융팀장
정부가 증시부양을 위해 내놓은 장기증권저축 판매가 기대치에 밑돌고 있다.
10월 22일 오후부터 23개 증권사가 판매한 장기증권저축상품의 판매액이 71억2600만원에 그쳤다. 이날 대부분의 투신운용사는 판매사를 통한 자금유입이 미미해 펀드 설정조차 못했다. 23일에는 은행권도 영업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지만 호응도는 신통치 않다.
장기증권저축은 근로자주식저축과는 달리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첫해에 5.5%, 2년차에 7.7%(주민세 포함)의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엄청난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데도 고객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상품명칭만 보면 ‘저축상품’이지만 실제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투자상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투자의 경우 주식편입비율이 무조건 70% 이상이어야 한다. 주식을 사고 파는 횟수도 연 400%로 제한돼 있어 투자이점이 상당히 떨어진다.
정부가 투자상품을 저축상품으로 포장 고객 유인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회사는 저축상품이라는 명칭을 붙여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연말에 세액공제를 노린 자금이 몰린다면 1조원 이상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모 은행 관계자는 이 상품의 판매시한인 2002년 3월까지 금융권에서 3조5000억원 가량이 판매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상품이 주가가 떨어졌을 때 운용을 시작해 장기투자를 통해 주가가 올라 안정적인 수익률을 달성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주가는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결과가 예상과 전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주가가 폭락해 고객이 원금을 날린 후 ‘저축상품’에 대한 원금보장을 요구한다면 정부와 금융기관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원금보장은 절대 안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고객의 항의에 치이고 정치논리에 휘둘려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한남투신증권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부는 한남투신증권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영업정지를 신청하자 국민투신(현재 현대투신증권)에 떠넘겨 원금보장의 길을 터 주었다. 국민투신이 한남투신 인수를 전격 발표하던 날은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하던 날이었다. 원금마저 날릴뻔 했던 호남지역의 80만 한남투신 고객은 김 대통령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 후 퇴출은행의 실적배당상품인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한 고객들은 한남투신 사태를 사례로 들며 금융감독위원회에 몰려들어 시위를 계속했다.
99년 대우사태가 터진 뒤 정부는 또 다시 대우채 편입 투신사 수익증권에 대해 손실을 보전해주었다. 수익증권이 투자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손실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번에 시판된 장기증권저축은 근로자주식저축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재경부가 관행적으로 ‘증권저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데 솔선수범 해야 한다. 원칙이 무너지면 시장규율이 서지 않고 시장경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예금자’는 원금의 보전을 중시하고 필요할 때 현금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반면 ‘투자자’는 원금 손실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도 차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부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투자상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투자자들을 모아야 한다.
원금손실 등 투자위험 미리 고지하고 교육해야
정부와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투자자의 역할과 투자에 따른 위험을 미리 고지하고 교육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원금손실이 이루어졌을 때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세금인 재정으로 손실분을 메워주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미 연준(FRB) 그린스펀 의장이 “초등학교 때부터 금융을 배워야 한다”며 조기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경제와 투자교육을 촉진시키기 위해 경제학자와 사업가, 노동단체의 대표 등으로 구성된 미국경제교육협의회(NCEE)를 발족시켜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와 투자교육을 측면지원하고 시장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와 금융회사가 투자상품을 저축상품으로 포장해 고객을 유인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경제관료는 IMF 이후 급변한 경제환경을 따라잡지 못할 경우 제2의 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시장규율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김기수 금융팀장내일진단>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