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와 수험생 자녀 교육
유급 출산 휴가 180일, 자녀 교육비는 국가가 다 제공함. 자녀 용돈까지 국가가 책임, 모든 학교 학생 무료 급식, 자녀 결혼식 때 부모는 꽃다발 하나 주는 것으로 끝, 18세가 되면 자녀는 경제적 독립, 노후 은퇴하면 여행을 즐길 정도의 연금 지급. 스웨덴의 복지 제도다. 이런 제도적 여건아 갖추어져 있으므로 그들은 가족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다. 그리고 가족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18세를 넘어서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을 무척 수치스러워하고 또 노년에 접어든 부모가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것 또한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일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반대의 극단적 가족 온정주의로 가족간 개인들이 전인격적으로 통합되어 있고 모든 문제를 가족이 똘똘 뭉쳐서 가족 간의 기적적인 사랑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다. 그래야 국가는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인 불행에 복지 제도를 발전시키지 않아도 되는 면책 특권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 사회의 복지 제도는 발전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온정주의는 정부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호도하는 좋은 방책일 뿐이다. 사실 서구 복지 사회는 자녀의 교육 문제도 복지 제도 속에 포함시켜서 사고하는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처럼 자녀 교육으로 몸살을 앓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녀가 명문대를 들어가면 그 일은 가족 모두의 기쁨이고 그에 따른 다른 가족 구성원의 고통을 다함께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방 소도시에 ‘경축 김OO 씨 장남 XX 고시 시험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그 도시의 중심부에 걸려 있는 현상도 결국은 이러한 가족주의의 확대 현상이기도 하다. 이젠 한국도 개인주의가 확대되어야 할 시기에 왔다.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인데 그것을 가족 전체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면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그 일에 대해서 도움을 준다. 단 도움을 줄 뿐이지 결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나 선택한 것에 대해서 강하게 참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선택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루기 때문이다. ‘너(자식)는 나(부모)의 모든 것’이라는 명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옛말에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성년이 되고 나면 자식은 또 다른 가정을 이루는데 부모가 자식을 ‘너는 나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온정주의적 태도는 자칫 큰 배신감을 느끼게 하여 가족 간의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고 3 시절에 극단적인 상태가 되었다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모든 갈등이 한 번에 해결되는 현상이 있다.
수험생이 된 자식에게 부모는 이렇게 말을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이제 네가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경쟁은 사소했지만 이제부터의 경쟁은 전국의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그 경쟁에 너 혼자 이겨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지만 가족 구성원으로서 방관하기 어렵다. 그래야 너도 그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너도 그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지녀야 한다. 지금은 네가 모든 여건 상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정신적인 독립을 원하면 현실적 육체적 독립도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도와서 중요한 시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모든 것은 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오락을 즐기건, 놀이에 빠지건, 이성 교제에 마음이 홀리건 그것은 너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는 일이다. 대신 그에 따른 너의 책임도 따라야 한다. 부모는 단지 지금 네가 힘든 시기에 봉착했기 때문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혹시 너의 선택이 삶의 경험이나 사회적 현실감이 부족해서 문제가 나타난다면 부모는 단호하게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네가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다 질만큼 자신이 있다면 부모는 당연히 너의 생각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어떤 대학을 선택할 것인가도 너의 삶의 일부이고 어떤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도 너의 삶의 일부다.
부모는 네가 부모의 손이나 보행기에 의지해서 걸었을 때보다 너 스스로 바닥을 딛고 걸음마를 스스로 해냈을 때 눈물이 나도록 감동했던 것은 언젠가는 네가 너 스스로 삶을 영위해야 할 시기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너를 영원히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이 수험 생활 동안 너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단지 너의 선택을 존중한 상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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