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 버리고 몸 낮춰야 … 일 하는 것 자체가 중요"
임상병리실장에서 실버북카페 바리스타로 변신 … "올해 바리스타 자격증 딸 것"
"돈ㆍ지위 집착 버리고 봉사생활로 생각 바꿔야"
지난 17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지나 현대그룹 맞은편으로 휘돌아가니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5시를 넘어가는 시각, '삼가연정'의 문을 열었다. 첫인상부터 깔끔하고 유례없는 추위에 비견되는 따듯함이 배어있었다.
서너테이블에 이미 손님들의 오손도손 대화가 넘나들고 있었다. 김영출 씨(만 69세)가 흰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김 씨는 얼마전 방문한 한 손님 얘기를 꺼냈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었다. "대뜸 '우리 한국사람들은 아직 멀었다'고 다그쳤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내가 서빙을 잘못했나 뭘 실수했나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 노인들은 귀천없이 일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장관, 사장하다가 (바리스타같은) 이런 것 못한다"는 얘기였다.
◆"생각부터 바꿔라" = 김 씨는 "은퇴 전에 한 일이나 직업을 생각해서 이런 일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아집을 버리고 몸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돈 없어서 이러냐고도 생각한다"면서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얘기를 풀어냈다.
그는 "처음에는 (바리스타 한다고)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놀러 다닌다고 했다"면서 "월급도 받고 자주 나가다보니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얘기했는데 아이들도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니 좋다'면서 동의해줬다"고 설명했다. 또 "친구나 교회 장로•목사님이 보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이런저런 경과를 말하니 잘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줘 그때부터는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사장이 퇴직한 이후 호텔에서 서빙하는 것을 보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나도 노력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이제는 누가 알아봐도 괜찮다"고 소리내어 웃었다.
◆꽃배달하면서도 기뻐해 = 김 씨는 일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재산이 있으면 좋겠지만 행복은 물질이 많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다"면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철을 타고 다니며 꽃바구니를 배달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봤다"면서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뭔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기에게 적합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있다"면서 "이런 일을 하면 될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뭐든지 찾아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는 "포기하면 안된다"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뭐든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은퇴후 "일하고 싶다"고 느끼기까지 = 41년에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김 씨는 63년부터 서울로 올라왔다. 지인의 소개로 고졸인데도 서울대병원 임상병리실에서 일하다가 이듬해인 64년에 처음 생긴 임상병리자격증을 취득했다.
74년 순천향대학병원이 한남동에 처음 만들어질 때 옮겨갔다. 거기서 만 61세 정년까지 일하며 38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쳤다. 마지막 직책은 임상병리실장이었다.
2001년 은퇴하기 직전에 아들을 결혼시켰다. 딸과 함께 부부가 같이 살았다. 그는 "1~2년간은 집에 있으면서 고향에도 가고 국내여행도 했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었다"면서 "또 집에 서 딸과 같이 있으니 잔소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다시 일을 갖기까지 = 김 씨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는 "사업을 한 번 해보려다가 망했다"면서 더이상은 말하길 꺼려했다. "보통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쉽게 퇴직금으로 사업하려다가 사기당하기 십장"이라고 하자 "맞다.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며 "연금을 일시불로 타지 않은 게 잘한 선택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선배의 소개로 호텔에서 주차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1주일정도하는데 자녀들이 힘드니까 하지말라고 했다"면서 "가족들이 반대하는데 계속 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상병리학과 후배의 도움도 받았다. 후배는 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임상병리자격증이 있었던 김 씨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달에 15일 정도 채혈과 심전도 측정을 하는 일이다. 그는 "힘들지도 않고 원래 기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쉬었다. '도대체 뭔가', '나에게 적합한 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찾게 된 단초였다.
◆1년간의 준비 = 김 씨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성동구로 이사 간 이후 성동구청을 많이 활용했다. 등록해 놓으니 연락이 왔다. 서울시청에서 만든 직업소개소 같은 곳을 연결해줬다. 나와 있는 일자리는 주로 주차관리나 아파트관리, 지하철 배달 같은 것이었다.
직업교육도 있었다.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한 교육이 눈에 띄었다. 2009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창업 아카데미 1기였다. 동기는 23명. 현재는 12명이 남았다. 본격 창업에 들어가기 전에 실력을 검증하는 기간도 가졌다. 6개월간 커피와 음료수를 노상에서 팔아봤다. 낙원상가를 넘어 종로까지 이어가는 '길 카페'는 좋은 평점을 받았다.
김 씨는 "2009년말 사회적기업 '삼가연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육도 받았지만 실제 영업을 할 때도 젊은 바리스타 매니저의 도움을 많이 얻었다"면서 "처음엔 음료 이름도 잘 몰랐지만 이젠 이름도, 커피 만드는 법에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월 40여만원, 돈보고는 못한다 = 김 씨는 하루 6시간 일한다. 격일제로 일주일에 세 번 나온다. 주당 20시간이다. 시급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많지는 않다. 월급이 40만원을 조금 넘는다.
김 씨는 "주차관리를 하면 월 80만~100만원정도를 벌기 때문에 이 일을 돈을 보고 하면 못한다"면서 "봉사정신이 있어야 하고 너무 지위와 돈에 집착하다보면 개인이나 동료관계가 이상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쉬는 날은 친구들도 찾아보고 미뤘던 일들도 챙긴다"며 "요즘은 오후 2시 40분에 출근해 9시까지 일한다. 1주일마다 오전과 오후가 바뀌고 같이 일하는 동료도 순환한다"고 설명했다.
◆"일만 주면 계속 하고 싶다" = 김 씨는 "일만 주면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겸손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는 좀 더 교육을 받아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은퇴하지 않은 직장인들에게도 조언 한마디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정년이 너무 빠르다. 70세까지는 일을 하게 해 줘야 하는데"라며 먼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한 직장에서 전공을 쌓는 게 중요하고 이것은 은퇴후의 자신의 진로와 연결돼 있다"면서 "미리 계획을 세워 노년에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고 준비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와 서울시가 지원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삼가연정'는 책•차•사람의 아름다움이 이어지는 정자란 뜻의 실버북카페다. 조만간 2호, 3호점도 문을 열 계획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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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병리실장에서 실버북카페 바리스타로 변신 … "올해 바리스타 자격증 딸 것"
"돈ㆍ지위 집착 버리고 봉사생활로 생각 바꿔야"
지난 17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지나 현대그룹 맞은편으로 휘돌아가니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5시를 넘어가는 시각, '삼가연정'의 문을 열었다. 첫인상부터 깔끔하고 유례없는 추위에 비견되는 따듯함이 배어있었다.
서너테이블에 이미 손님들의 오손도손 대화가 넘나들고 있었다. 김영출 씨(만 69세)가 흰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김 씨는 얼마전 방문한 한 손님 얘기를 꺼냈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었다. "대뜸 '우리 한국사람들은 아직 멀었다'고 다그쳤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내가 서빙을 잘못했나 뭘 실수했나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 노인들은 귀천없이 일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장관, 사장하다가 (바리스타같은) 이런 것 못한다"는 얘기였다.
◆"생각부터 바꿔라" = 김 씨는 "은퇴 전에 한 일이나 직업을 생각해서 이런 일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아집을 버리고 몸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돈 없어서 이러냐고도 생각한다"면서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얘기를 풀어냈다.
그는 "처음에는 (바리스타 한다고) 가족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놀러 다닌다고 했다"면서 "월급도 받고 자주 나가다보니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얘기했는데 아이들도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니 좋다'면서 동의해줬다"고 설명했다. 또 "친구나 교회 장로•목사님이 보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이런저런 경과를 말하니 잘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줘 그때부터는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사장이 퇴직한 이후 호텔에서 서빙하는 것을 보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나도 노력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이제는 누가 알아봐도 괜찮다"고 소리내어 웃었다.
◆꽃배달하면서도 기뻐해 = 김 씨는 일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재산이 있으면 좋겠지만 행복은 물질이 많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다"면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철을 타고 다니며 꽃바구니를 배달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봤다"면서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뭔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기에게 적합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있다"면서 "이런 일을 하면 될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뭐든지 찾아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는 "포기하면 안된다"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뭐든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은퇴후 "일하고 싶다"고 느끼기까지 = 41년에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김 씨는 63년부터 서울로 올라왔다. 지인의 소개로 고졸인데도 서울대병원 임상병리실에서 일하다가 이듬해인 64년에 처음 생긴 임상병리자격증을 취득했다.
74년 순천향대학병원이 한남동에 처음 만들어질 때 옮겨갔다. 거기서 만 61세 정년까지 일하며 38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쳤다. 마지막 직책은 임상병리실장이었다.
2001년 은퇴하기 직전에 아들을 결혼시켰다. 딸과 함께 부부가 같이 살았다. 그는 "1~2년간은 집에 있으면서 고향에도 가고 국내여행도 했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었다"면서 "또 집에 서 딸과 같이 있으니 잔소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다시 일을 갖기까지 = 김 씨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는 "사업을 한 번 해보려다가 망했다"면서 더이상은 말하길 꺼려했다. "보통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쉽게 퇴직금으로 사업하려다가 사기당하기 십장"이라고 하자 "맞다.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며 "연금을 일시불로 타지 않은 게 잘한 선택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선배의 소개로 호텔에서 주차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1주일정도하는데 자녀들이 힘드니까 하지말라고 했다"면서 "가족들이 반대하는데 계속 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임상병리학과 후배의 도움도 받았다. 후배는 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임상병리자격증이 있었던 김 씨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달에 15일 정도 채혈과 심전도 측정을 하는 일이다. 그는 "힘들지도 않고 원래 기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쉬었다. '도대체 뭔가', '나에게 적합한 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찾게 된 단초였다.
◆1년간의 준비 = 김 씨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성동구로 이사 간 이후 성동구청을 많이 활용했다. 등록해 놓으니 연락이 왔다. 서울시청에서 만든 직업소개소 같은 곳을 연결해줬다. 나와 있는 일자리는 주로 주차관리나 아파트관리, 지하철 배달 같은 것이었다.
직업교육도 있었다.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한 교육이 눈에 띄었다. 2009년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창업 아카데미 1기였다. 동기는 23명. 현재는 12명이 남았다. 본격 창업에 들어가기 전에 실력을 검증하는 기간도 가졌다. 6개월간 커피와 음료수를 노상에서 팔아봤다. 낙원상가를 넘어 종로까지 이어가는 '길 카페'는 좋은 평점을 받았다.
김 씨는 "2009년말 사회적기업 '삼가연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육도 받았지만 실제 영업을 할 때도 젊은 바리스타 매니저의 도움을 많이 얻었다"면서 "처음엔 음료 이름도 잘 몰랐지만 이젠 이름도, 커피 만드는 법에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월 40여만원, 돈보고는 못한다 = 김 씨는 하루 6시간 일한다. 격일제로 일주일에 세 번 나온다. 주당 20시간이다. 시급은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많지는 않다. 월급이 40만원을 조금 넘는다.
김 씨는 "주차관리를 하면 월 80만~100만원정도를 벌기 때문에 이 일을 돈을 보고 하면 못한다"면서 "봉사정신이 있어야 하고 너무 지위와 돈에 집착하다보면 개인이나 동료관계가 이상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쉬는 날은 친구들도 찾아보고 미뤘던 일들도 챙긴다"며 "요즘은 오후 2시 40분에 출근해 9시까지 일한다. 1주일마다 오전과 오후가 바뀌고 같이 일하는 동료도 순환한다"고 설명했다.
◆"일만 주면 계속 하고 싶다" = 김 씨는 "일만 주면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겸손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는 좀 더 교육을 받아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은퇴하지 않은 직장인들에게도 조언 한마디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정년이 너무 빠르다. 70세까지는 일을 하게 해 줘야 하는데"라며 먼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한 직장에서 전공을 쌓는 게 중요하고 이것은 은퇴후의 자신의 진로와 연결돼 있다"면서 "미리 계획을 세워 노년에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고 준비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와 서울시가 지원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삼가연정'는 책•차•사람의 아름다움이 이어지는 정자란 뜻의 실버북카페다. 조만간 2호, 3호점도 문을 열 계획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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