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29. 200년 동안 지어진 대가옥, 강릉 선교장

지역내일 2001-11-03
<문화유산> 29. 200년 동안 지어진 대가옥, 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호)은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통가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흔히 큰 기와집을 99칸집이라 하는데, 대부분 실제 칸수는 99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선교장은 99칸집이 아니라 아예 100칸이 넘는 102칸집이다.
9개동으로 구성된 건물들의 구성과 배치도 완전히 새롭다. 사랑채로 쓰인 건물만 5동이나 되고, 궁궐건축처럼 길게 늘어선 23칸짜리 행랑채며, 집 입구에 자리잡은 커다란 연못과 정자, 열화당 앞의 서양식 채양 등도 지금까지의 전통가옥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000 200년 동안 확장과 변형 거듭한 건축 000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강릉지방의 학문적 전통과 지리적 특성, 200년에 걸친 선교장의 건축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강릉지역은 동해안에서 몇 안 되는 평야지대에 속한다. 이곳에 토착화한 세력들은 대관령 바로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남대천 상류의 작은 물줄기가 농지조성과 치수(治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강릉에 진출한 신흥씨족들은 해안의 평야지대를 개간하면서 자리를 잡아나갔다. 율곡 이 이와 이매창이 태어난 오죽헌, 허 균과 허난설헌이 자란 초당동, 선교장이 자리한 배다리골 ― 선교장의 ‘선교(船橋)’는 배다리라는 뜻이다 ― 등이 이런 예에 속한다.
선교장은 배다리골에 터를 잡은 18세기 중반부터 200여년 동안 크게 4차례의 대대적인 확장과 변형을 거쳤고, 시대에 따라 건물의 성격과 용도가 변하면서 전체 영역이 차츰차츰 넓어졌다. 주택건축으로는 아주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000 왕손의 서자로 태어난 입향조 이내번 000

입향조 이내번(1693~1781)은 우연히 족제비 떼를 따라가다가 배다리골을 발견하고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여겨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재화가 늘어나고 자손들의 번창을 보장하는 형상’이라는 지극히 실리적인 판단이었다.
이내번은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11세 손이었으나 서자(庶子)였다. 1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안동 권씨와 함께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주했다. 처음엔 경포대 옆 저동에 살았으나 재산을 조금씩 모으면서 배다리골 터를 사서 선교장의 터전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는 학문보다 집안을 번창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왕손이라고는 하지만 서출(庶出)이었고 멀리 타지로 와서 기존 토박이들의 텃세 속에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현실적인 조건이 그를 보다 실리적으로 만들었던 듯하다.
이내번 당시에는 현재의 안채 쪽에 영동지방과 경북 안동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口자집을 지었다고 전한다. 3대손 오은 이 후(1773~1832)는 집안의 제일 목표를 ‘가족의 화합’에 두었다. 그는 열화당을 지어 일찍 세상을 떠난 두 동생의 자식들(조카들)을 한울타리에 모여 살게 했다.
‘열화당(悅話堂)’이란 집 이름도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듣는다(悅親戚之情話)’는 뜻의 시 귀절에서 따왔다.

000 “금강산 유람길에 잠시 묵어 가시오” 000

4대손 이봉구가 과거에 급제, 통천 군수가 되면서 선교장은 전국적인 교류의 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외별당을 지어 분가하기 전의 지손(支孫)들을 살게 하고, 열화당은 전국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이용하게 된다.
6대손 이근우(1877~1938) 대에서는 활래정과 방해정을 중건하여 손님들의 격에 맞도록 접대 장소를 세분화할 정도로 ‘장(莊)’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경포대를 끼고 있는 선교장은 “금강산 유람길에 잠시 묵어 가시오”라는 초대가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영의정 조인영으로부터 당대에 이름을 날리던 정치가 예술가들이 모두 선교장을 거쳐 금강산을 다녀갔다. 열화당 앞의 서양식 차양은 개화기 러시아 영사의 선물이었다. 선교장이 102칸이란 대규모 건축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영동지방 유일의 만석꾼’이라는 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었다.
“선교장은 하나의 주택이 아니다. ‘대가족’이 사는 주택과 외부 손님들을 위한 주택,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집이다. 동쪽 안채와 동별당이 가족용 주택이라면, 서쪽 열화당 부분은 게스트 하우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의 분석이다.

000 ‘줄행랑’과 ‘활래정’의 역할 000

긴 기간 동안 끊임없이 확장·변형된 건축물이지만 선교장은 너무나 아름답다. 처음부터 어떤 뚜렷한 마스터플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는 ‘줄행랑’과 ‘활래정’이란 두 개의 기준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높이와 형태가 제각각인 열화당 서별당 안채 동별당은 앞에 23칸의 줄행랑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운 질서와 통일감을 얻는다. 배다리골 전체로 확장된 선교장 영역의 경계에 서 있는 활래정은 보이지 않는 대문으로서 시각적인 기준요소가 된다.
선교장 9세손 이강백씨는 지난 여름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외별당’을 복원했다. 동시에 안채에 있던 살림집을 외별당으로 옮기고 안체 영역 전체를 공개했다. 현재 선교장에는 민속자료전시관과 향토음식관, 참방짜수저공방, 목공예방, 도자기 공방 등이 입주해 있다.
선교장 영역 전체가 우리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것이 9세손 이강백씨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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