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언론인 번역가
구제역 발생 두달 반만에 15만마리의 소와 315만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어 땅에 묻혔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첨단문명의 시대에 우리와 가장 친숙한 가축들이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떼죽음을 당하다니….
구제역은 벌써 70개 시군에서 발생, 무려 4632곳의 매몰지가 전국에 걸쳐 생겨났다. 2차대전 때 600만명 이상 조직적으로 '살처분'당한 유대인의 수에 슬슬 육박해가고 있다.
살처분은 처음엔 축산 관련 공무원들과 수의사가, 나중에는 지방공무원들과 지원에 나선 일반공무원들이 맡았다. 몇명이 과로로 순직했고, 나머지도 수천마리 가축의 비명소리와 몸부림치며 죽어간 집단매몰지의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환청, 불면, 식욕 부진 등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에서 생존자로 살아남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강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죽이기가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를 죽이는 것이 쉬우며, 벌레 같은 것을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즉 문제는 시선, 눈동자"라고 말했다. 희생자에게서 주체적이거나 공격자를 알아보는 듯한 시선을 발견할 때 가해자는 동정심, 죄악감으로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살처분 엄마소 모정'에 눈물바다
그래서 나치는 유대인의 '살처분'을 맡은 SS대원의 작업을 쉽게 해주기 위해 학살수용소 재소자들을 분뇨 범벅을 만들었다. 일부러 고안된 대형 분뇨 풀형 공동변소위 널빤지를 타고 용변을 보다 빠져죽게 하는가 하면 자기 배설물을 마셔 치우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 더럽고 참을 수 없는 악취에 가득한 '빨리 청소해버려야 할 군상'의 모습, 집단학살한 가매장 장소를 다시 파내 소각하는 '지옥도'의 참상은 이 방면의 고전인 테렌스 데프레의 '생존자'에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실수로, 정책상의 무능 때문에 대량 살처분하게 된 우리 경우는 죽은 가축도 억울하지만 준비되고 훈련된 살처분 인력이 아닌 '가해자'들도 심신의 상처가 크게 마련이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얼마 전 인터넷을 눈물바다로 만든 어느 살처분 엄마소의 모정을 기록한 공무원들의 증언이다.
강원도 횡성의 살처분 현장에서 길어야 1분밖에 못 버틸 안락사용 주사를 맞은 어미소가, 태어난 지 얼마안된 아기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며 밑에서 젖먹는 송아지를 위해 몇분이나 억지로 더 버티다 송아지가 떨어진 뒤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살처분되어 엄마 옆에 묻힌 아기 송아지, 살처분 주사를 놓으려는 수의사의 고무장갑 끝을 엄마 젖꼭지로 알고 빨아대던 또 다른 갓난 송아지의 충격적 모습의 기록들은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는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구제역 감염소와 함께 있던 모든 건강한 소들까지 떼로 살처분한 방식과 허술한 관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영하의 혹한 속에서 급매몰한 상습침수 하천변, 지반침하와 급경사의 붕괴위험지역, 땅밑이나 가축사체 위의 비닐이 찢긴 곳 등 부실 매몰 현장이 숱하게 드러났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침출수의 식수원 오염이나 바이러스의 증식으로 인간에 대한 2차 감염피해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구제역 첫 발생 이후 3주일의 늑장 방역 탓에 벌써 3조원이 넘는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400만 생명체들 '핏물의 반격' 걱정
식수원 오염과 다른 전염병이 전국의 매몰지 주변에서 발생할 경우 피해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환경재앙에 대한 발빠른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고사하고 '언론보도가 과장됐다'며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이다. 재앙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환경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관재(官災)가 벌써 400만 생명체의 숨을 끊었다. 이제 엄청난 '핏물의 반격'과 함께 국민건강의 초토화를 부를까 속이 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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