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얼마 전, 차가운 월세방에서 굶주린 주검으로 발견된 한 젊은 여성의 소식이 우리를 충격과 전율에 빠뜨렸다.
32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학력과 시나리오 작가라는 남다른 이력이, 그럼에도 창피를 무릅쓰고 이웃에 '남는 밥과 김치'를 구해야 했던 그녀의 상황이 아프게, 당황스럽게, 불편하게, 우리의 가슴을 찌른다.
그녀가 일해 왔던 영화계에서 반성과 비판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국영화산업노조는 "영화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고 이해를 대변해야 할 책무를 진 노동조합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는 영화산업시스템과 정책당국의 책임을 촉구했다. 또 "실업부조제도가 현실화됐더라면 작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정치인들도 자책의 말을 보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최문순 의원은 "문화예술인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켜주고 적극 보장해야 할 국회 문방위 위원으로서 안타깝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며 "예술인복지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돼 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도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는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술인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아무쪼록 이런 자책과 다짐이 빈말로 끝나지 않고, 춥고 배고픈 무명 영화예술인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우리에게 이렇게 큰 충격을 주는 것은, 그녀의 불행이 영화 또는 예술계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의 노력과 열정이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화계나 예술계만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만이 아닌 '젊은이 착취'
그녀의 죽음은 그러한 비극이 특정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불편하게, 당황스럽게 한다. 풍요가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안정된 일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섭게 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예비 최고은'들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자 비율이 나날이 높아만 간다. 그나마 취업자의 숫자에 들었어도, 인턴 또는 비정규직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그들 중에 정규직으로의 진입에 성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당수는?
그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풀려 나갈까. 결혼을 해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룰 수는 있을까? 젊어서는 그런대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치자. 나이 들면 어떻게 될까. '최고은 사건'은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름붙인 '88만원 세대'의 너무나 비극적인 결말이었던 셈이다.
요즘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복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건 복지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복지 이전의, 일자리의 문제다. 일자리의 과부족, 질의 저하, 일자리의 안정성이 문제다.
줄어만 가는 정규직을 놓고 피 튀기는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일자리를 불안정하고 질 낮게 만드는 것을 요즘 말로 고용의 '유연화'라고 하던가.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뿐, 구조조정이 공기업의 평가기준이 되는 세상이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의 빈곤화가 심각하다. 20대에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여성들이 40·50대에도 계속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일이란 어떤 것일까? 그때그때 살아남기에 급급한 비정규직을 전전한 그들에게 변변한 노후대책이 있을 리 없다. 연금도 기대하기 어렵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최고의 복지, 일자리가 문제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승자 독식' '무한 경쟁'으로 흘러가게 두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마침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내년의 양대 선거가 대한민국 초유의 정책 선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 했던가. 복지를 토론하고, 일자리를 어떻게 설계하고 나눌지 모두가 관심 갖고, 고민하고, 요구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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