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환송함으로써 이혼에 관하여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판결에 나타난 사례를 보면 A씨는 레지던트로서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두고 선배의 소개로 미국에 있는 모 음대를 졸업했다는 여성인 B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A씨와 B씨는 혼인 초부터 생활방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어왔는데 B씨가 음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고, A씨가 초등학교 동창생과 부정한 관계를 맺고 B씨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등으로 부부관계 없이 갈등관계가 지속돼왔다. 그 후 A씨는 B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B씨가 거부하자 집을 나와 별거하면서 B씨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A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판단을 사유로 해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함으로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배척했다.
이혼에 관해 전통적인 견해는 혼인파탄의 책임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이다. 그 논거는 "파탄주의를 도입하면 바람피운 남성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어 전업주부 등 경제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거나 혼인관계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자의 이혼청구는 정의 관념에서 볼 때 수긍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실제 그동안 법원이 유책주의 입장에서 이혼판결을 함으로써 부정행위를 한 남편이 아내를 축출하는 것을 막는 순기능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서로 상대방에게 혼인파탄 책임 전가
그러나 이러한 유책주의는 파탄주의에 점차 밀리고 있다. 파탄주의는 혼인이란 부부 사이의 애정에 기초한 정신적, 육체적 결합이므로, 부부 사이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면 아무런 애정이 없는 혼인을 강제하는 것이 오히려 반도의적이 되므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허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입법례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유책주의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방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을 전가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입게 되어 이혼소송이 끝난 후에는 비록 그 소송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가 기각돼 외관상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지만 실제로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 보다 더 원수가 된다. 혼인이라는 껍데기 우산 속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혼인생활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파탄주의 입장에서는 유책주의를 채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여성의 보호가 된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고 경제적 약자인 여성의 보호는 이혼에 따른 경제적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이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하는 점도 수긍이 가기는 한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정신은 이혼에 관해 파탄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 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향상됐고, 남녀평등 사상이 고양된 오늘날 이혼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종전과는 상당히 다르게 변모됐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이혼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우리 이혼법제에서도 파탄주의를 채택할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하급심에서 파탄주의에 입각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계속하여 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예상을 하게끔 하는 논거이다.
상호비난 사라지면 관계회복 시도할 수도
이와 같이 이혼에 관한 파탄주의를 채택하게 된다면 소송의 심리방향이 변화해 오히려 가정이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파탄주의를 채택하게 되면 법원은 혼인관계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심리의 주안점을 두게 되므로, 이혼을 반대하는 당사자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삼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법원은 부부관계의 회복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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