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스앤뉴스 편집국장
"은행장들을 만나보니 가계대출을 더 늘리고 싶어하더라."
통화당국 고위관계자가 최근 한 말이다. 가계대출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으나, 가계대출 말고는 대출해줄 곳이 마땅치 않은 은행들은 계속 가계대출 확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나가는 수출 대기업들은 수백조원의 현금을 쌓아놓고 은행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 반면, 돈이 다급한 건설사 등 기업들은 리스크가 워낙 커서 대출을 해줄 수가 없으니 만만한 곳은 가계대출밖에 없다.
은행들은 최하위층을 제외한 중간층은 아직 상환능력이 충분해 가계대출을 더 늘려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 생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1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한나라당 의원 등이 모여서 이달 말로 시한이 끝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를 연장할 것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정부는 더이상 가계부채가 늘어나선 안된다며 연장에 반대한 반면, 한나라당은 연장해야 한다며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은 특히 지난해 DTI규제 완화후 회복기미를 보이던 부동산경기가 올 들어 다시 급랭 조짐을 보이는 만큼 규제 완화를 연장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입장이었다.
최근 LIG그룹 계열사인 LIG건설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할 정도로 상위 10개 대형건설사를 제외한 대다수 건설사들이 임계점에 도달한만큼, 규제완화를 연장하지 않으면 떼도산이 날 것이란 주장이다.
DTI 규제완화 연장 둘러싼 논란
이들은 DTI 규제 적용을 은행에 맡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확대를 바라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나라당이 반발하다 보니,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칙대로 하면 정부 손을 들어줘야 하나 내년에 총선·대선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떼도산 나고 부동산경기가 급락했다간 내년 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물가폭등에 따른 민심이반이 심각한 마당에 경제불안까지 겹치면 선거결과는 보나마나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연장에 반대다. 우제창 정책위 수석부의장 같은 경우는 22일 당내 회의에서 "저축은행 문제가 수류탄이라면, 가계부채 문제는 핵폭탄"이라며, 지난해 8월 29일 DTI 규제 완화 후 작년 3분기 때 가계대출이 15조2000억원, 4분기에 25조3000억원이나 폭증한 점을 적시하며 연장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나라당내 친박도 연장에 반대다. 친박 경제수장인 이한구 의원을 비롯해 대다수 경제통들은 강력 반대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더 부풀렸다간 다음 정권때 초대형 금융대란이 발발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 의원은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데 여기서 더 가계대출을 부풀렸다간 늦어도 다음 정권 중반에는 가계대출 폭탄이 터지게 돼 있다"며 "자신들 임기 동안에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식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야당과 친박 반발이 거세자 청와대는 결국 DTI규제 완화를 연장하지 않고, 그대신 9억 이상 고가주택 취득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가계대출 폭탄의 심각성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은행장들 생각처럼 가계부채 우려는 과연 기우일까. 지금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폭등이 계속되면서 인플레 국면을 거쳐 디플레 국면으로 치닫고 그러다가 부동산거품이 푹 꺼지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1997년 같은 재앙 재발할 수도
또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때도 디폴트는 저신용 서민들에게 대출된 '서브프라임'에서 시작돼, 은행에서 안심하고 있던 건전한 '프라임'까지 순식간에 오염시키면서 공황적 파국으로 발전했다.
1997년 IMF사태는 과도한 기업대출이 초래한 참극이었다. 그후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7대 3이던 기업대출 대 가계대출 비율이 지금은 거꾸로 3대 7이 됐다. 과잉 가계대출 문제를 소홀히 했다간 1997년 같은 재앙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은행장들은 '눈앞 수익'에 현혹돼 가계대출의 심각성을 외면해선 안된다. 정말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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