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예술작가 49명의 수줍은 편지와 뒷이야기

지역내일 2011-02-25 (수정 2011-02-25 오후 12:54:00)
편지에 숨겨놓은 내면을 들춰보다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강인숙 지음. 마음산책. 1만6천원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이다. 그래서 작가의 내면을 옅보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들이 은밀하게 쓴 편지는 어떨까. 편지는 1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의 직역본이다. 작가의 내밀한 세계가 분장없이 노출된다. 편지는 개인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풍경을 보여주는 내시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아침 8시에 눈을 뜨고 이 편지를 씁니다. 어제 행사 후 일행들과 술을 마신다는 게 새벽 두 시까지 마셨으니 이틀에 걸친 과음을 한 셈입니다. 여기 올 때 집에 있는 예쁜 카드를 가지고 오는 걸 잊어 호텔방에 있는 편지지를 펼치고 축하인사를 쓰려니 카드보다 지면이 넓어 수다를 떨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이 편지는 강원도의 한 호텔에서 이해인 수녀에게 고 박완서 작가가 보낸 것이다. '민들레의 영토' 출간 30년을 축하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더듬는다.

박완서 선생이 작고한 후 그를 잃은 애통 속에서 이해인 수녀는 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움으로 그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초혼의 행사처럼, 이 편지는 이제 가슴으로 읽히는 글이 됐다.

소설가 조정래씨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됐다. "사랑하는 여보, 초혜!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소. 당신이 떠난 그 순간부터 가을은 문득 깊어져 내 시간을 쓸쓸한 적막으로 채우고 있소.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하늘에 감사하게 되오… 부끄러운 듯 숨어 있는 흰 머리카락들마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소. 그래서 물을 들이지 말라, 고 했었던 것인데… 혼자 자는 잠자리가 춥겠소." 얼핏 읽기엔 낯부끄러운 대사들이 있지만, 결혼 23년차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사가 담겼다. 부인 김초혜 시인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의 편지를 읽는 즐거움은 수신인의 개별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편지에는 수신인이 정해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즉 소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편지는 읽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내면성을 중시하던 낭만주의자들은 소설 속에 편지를 삽입했고, 더러는 편지 형식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문인들의 편지는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 두 차례의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유실됐다. 남아 있는 편지도 농밀한 내용을 담은 사랑 편지나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은 수신인들이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문인의 육필 편지는 희소가치를 가진다.

이 책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은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을 소개한다. 노천명 시인에서 아티스트 백남준까지.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이 책을 펴내며 "발자크가 연인인 한스카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저명한 문인의 글을 혼자 독점하는 편지가 얼마나 큰 호사인가를 언급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호사를 누려보기를 권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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