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글솜씨 좋은 정신분열자 위작 … 재수사 안해"
연예계 부조리 파헤칠 단초 제공 … 특검도입 요구도
'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탤런트 고 장자연씨 편지는 결국 가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감정을 토대로 경찰은 "정신분열 초기증상이 있는 30대초반의 남자가 수십통의 편지를 글씨체를 바꿔가며 스스로에게 써 보낸 것"으로 판명했기 때문이다.
편지가 가짜로 드러났으니 편지내용에 상관없이 재수사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사건의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장 편지를 조작한 것으로 지목된 전 모(31)씨가 자백을 않고 있는데다 연예계 부조리를 고발한 2년전 장씨 편지진본이 엄연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편지를 누가, 왜 썼는지 철저한 규명과 함께 연예계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역시 이번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부조리와 불법을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여성계는 그러나 당장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장씨 자살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백않는 전씨, 누가 왜 썼는지 규명해야 =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는 '장자연 편지'라고 공개된 문서가 장씨의 친필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문건 전반에 대해 재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새로운 수사단서가 확보되는 경우 언제라도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경찰청 김갑식 형사과장은 16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고 장자연씨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 원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지문.DNA 분석 결과 장씨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정신질환 의심이 있는 수감자 전씨가 장씨의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위작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의 성향, 병력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편지봉투 조작 흔적, 편지 내용 등 분석에서 나온 여러 조작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위작의 근거로 경찰은 전씨의 재소 동료로부터 "전씨는 '장씨와 오빠 동생하는 사이로 출소하면 연예기획사를 차려 장씨를 메인 연기자로 스카우트 하겠다'는 말을하며 하루에 5~6통의 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전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룡 경위는 "전씨가 유명 연예인과 개인적으로 친하고 자신을 대단한 능력자로 믿는 과대망상 증상과 사고과정의 장애를 보이는 등 정신분열증 초기단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장씨와 전씨의 성장과정도 판이해 친분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장씨는 정읍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 전씨는 초중학교는 강진, 고교는 전남 광주에서 다니는 등 생활권이 달라 친분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 수감 중인 전씨의 면회접견부와 우편물 수불대장에서도 장씨 또는 '장설화'라는 필명으로 면회한 사실도, 수발신한 우편물도 없었다.
장씨의 가족과 지인들도 전씨를 모르고 편지를 받은 사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전씨가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 첨부된 편지 50통 230쪽 내용에도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 장씨 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전씨가 위작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구체적인 위작 작성경위는 단정할 수 없으나 장자연 관련 신문스크랩 기사 등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장씨의 자필문건을 보고 필적을 연습해 편지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과수 역시 이날 감정결과 브리핑에서 경찰이 의뢰한 편지 원본 24장의 필적은장씨의 친필과 다르고, 전씨가 쓴 필적과 비교하면 일부 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기재하는 습성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며 전씨의 자작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전씨가 자작극임을 자백하지 않는 한 편지의 실제 작성자와 경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경찰 믿을수 없다" = 여성단체는 "고 장자연씨 사건에 특검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40개 단체는 16일 성명서에서 "이미 2009년 당시 경찰에서 밝힌 혐의사실을 무시한 검찰 및 자신들의 기존 수사결과도 부인하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특검이 시행돼 사건의 진상조사가 투명하게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관행이라는 핑계로 예술활동가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악습이 반복되지 않도록 연예기획사의 파행적 운영을 통제하고 소속 연예인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매니지먼트관련 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경찰청은 '장자연 편지' 사건을 계기로 접대 강요 등 연예계의 고질적인 부조리와 불법 행위를 4개월간 집중적으로 단속키로 했다.
단속 대상은 능력이나 경력 등을 따지지 않고 특정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 영화 등에 다른 연예인보다 우선 출연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것을 미끼로 연예인에게접대나 출연 등을 강요하는 행위다. 기획사나 방송사, 매니저 등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연예인의 출연료를 갈취하는 행위 등이 단속 대상이다.
경찰은 연예계의 다양한 이권에 개입하는 조직폭력배와 공인 신분이라는 것을 약점 삼아 불법으로 채권을 추심하거나 채무를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사범도 중점 단속할 계획이다. 경찰은 고질적인 연예계 부조리를 단속하려면 피해 당사자나 주변인의 신고나 제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서울(02-3273-2891)과, 부산(051-899-2174), 대구(053-804-2820), 인천(032-421-2919), 광주(062-607-2820), 대전(042-609-2173), 울산(052-210-2780), 경기(031-888-2277) 등 8개 지방청 광역수사대에 신고센터를 마련했다.
송현경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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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탤런트 고 장자연씨 편지는 결국 가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필적감정을 토대로 경찰은 "정신분열 초기증상이 있는 30대초반의 남자가 수십통의 편지를 글씨체를 바꿔가며 스스로에게 써 보낸 것"으로 판명했기 때문이다.
편지가 가짜로 드러났으니 편지내용에 상관없이 재수사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하지만 이번사건의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장 편지를 조작한 것으로 지목된 전 모(31)씨가 자백을 않고 있는데다 연예계 부조리를 고발한 2년전 장씨 편지진본이 엄연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편지를 누가, 왜 썼는지 철저한 규명과 함께 연예계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본질적이고 실제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역시 이번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부조리와 불법을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여성계는 그러나 당장 특검을 도입해서라도 장씨 자살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백않는 전씨, 누가 왜 썼는지 규명해야 =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는 '장자연 편지'라고 공개된 문서가 장씨의 친필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문건 전반에 대해 재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새로운 수사단서가 확보되는 경우 언제라도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경찰청 김갑식 형사과장은 16일 오후 브리핑을 통해 "고 장자연씨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 원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지문.DNA 분석 결과 장씨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정신질환 의심이 있는 수감자 전씨가 장씨의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위작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의 성향, 병력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편지봉투 조작 흔적, 편지 내용 등 분석에서 나온 여러 조작 증거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위작의 근거로 경찰은 전씨의 재소 동료로부터 "전씨는 '장씨와 오빠 동생하는 사이로 출소하면 연예기획사를 차려 장씨를 메인 연기자로 스카우트 하겠다'는 말을하며 하루에 5~6통의 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전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룡 경위는 "전씨가 유명 연예인과 개인적으로 친하고 자신을 대단한 능력자로 믿는 과대망상 증상과 사고과정의 장애를 보이는 등 정신분열증 초기단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장씨와 전씨의 성장과정도 판이해 친분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장씨는 정읍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 전씨는 초중학교는 강진, 고교는 전남 광주에서 다니는 등 생활권이 달라 친분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 수감 중인 전씨의 면회접견부와 우편물 수불대장에서도 장씨 또는 '장설화'라는 필명으로 면회한 사실도, 수발신한 우편물도 없었다.
장씨의 가족과 지인들도 전씨를 모르고 편지를 받은 사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전씨가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 첨부된 편지 50통 230쪽 내용에도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 장씨 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전씨가 위작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구체적인 위작 작성경위는 단정할 수 없으나 장자연 관련 신문스크랩 기사 등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 장씨의 자필문건을 보고 필적을 연습해 편지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과수 역시 이날 감정결과 브리핑에서 경찰이 의뢰한 편지 원본 24장의 필적은장씨의 친필과 다르고, 전씨가 쓴 필적과 비교하면 일부 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기재하는 습성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며 전씨의 자작극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전씨가 자작극임을 자백하지 않는 한 편지의 실제 작성자와 경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경찰 믿을수 없다" = 여성단체는 "고 장자연씨 사건에 특검을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40개 단체는 16일 성명서에서 "이미 2009년 당시 경찰에서 밝힌 혐의사실을 무시한 검찰 및 자신들의 기존 수사결과도 부인하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특검이 시행돼 사건의 진상조사가 투명하게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관행이라는 핑계로 예술활동가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악습이 반복되지 않도록 연예기획사의 파행적 운영을 통제하고 소속 연예인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매니지먼트관련 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경찰청은 '장자연 편지' 사건을 계기로 접대 강요 등 연예계의 고질적인 부조리와 불법 행위를 4개월간 집중적으로 단속키로 했다.
단속 대상은 능력이나 경력 등을 따지지 않고 특정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 영화 등에 다른 연예인보다 우선 출연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것을 미끼로 연예인에게접대나 출연 등을 강요하는 행위다. 기획사나 방송사, 매니저 등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연예인의 출연료를 갈취하는 행위 등이 단속 대상이다.
경찰은 연예계의 다양한 이권에 개입하는 조직폭력배와 공인 신분이라는 것을 약점 삼아 불법으로 채권을 추심하거나 채무를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사범도 중점 단속할 계획이다. 경찰은 고질적인 연예계 부조리를 단속하려면 피해 당사자나 주변인의 신고나 제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서울(02-3273-2891)과, 부산(051-899-2174), 대구(053-804-2820), 인천(032-421-2919), 광주(062-607-2820), 대전(042-609-2173), 울산(052-210-2780), 경기(031-888-2277) 등 8개 지방청 광역수사대에 신고센터를 마련했다.
송현경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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