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지난 금요일 영국 왕위 승계 순위 2위의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의 성대한 결혼식이 있었다. 100만이 넘는 런던 시민이 버킹검 궁과 웨스트민스터 성당 사이에 운집해서 왕자와 평민 규수의 동화 같은 결혼을 축하했다.
전 세계 20억 인구가 이 세기의 결혼식을 지켜봤다. 윌리엄 왕자가 다이아나 세자비의 장남이라는 사실, 케이트가 영국 왕실에서 350년 만에 맞는 평민 신부라는 사실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으리라. 영국 언론은 일주일 전부터 결혼식 이야기를 연일 크게 다뤘다. 전 세계에서 1만2000명의 기자들이 결혼식을 취재하러 런던에 모여들었다. 영국 왕실의 집안 행사가 세계의 화제가 됐다.
영국 왕실이 노린대로였다. 14년 전 다이아나의 사망을 계기로 구습에 얽매인 왕실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인기가 추락했다. 왕실은 개혁을 약속해야 했다. 왕자와 평민 규수의 신데렐라 같은 결혼식을 통해 왕실은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호기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미디어의 위력을 이용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결혼비용으로 지출한 2000만유로는 '이미지 회복 작전'의 대가였다.
텔레비전에 비친 축하 군중 수만을 따지면 왕실의 PR작전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영국인의 70%가 왕실의 존재에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13%는 왕정 폐지를 원했다.
텔레비전에 비친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은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과는 전연 딴판이었다.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마술의 힘 때문이다. 모든 정권이 텔레비전을 장악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신문이 왕실 결혼에 비판적인 의견을 전연 보도하지 않을 때 텔레비전 시청자는 보는 것만 믿기 마련이다. 텔레비전을 장악하고 조중동을 침묵시킨 MB정권의 언론정책이 노렸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영국왕실, 존속하려면 근본 개혁 있어야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영국의 대표적 작가 50명 안에 든다는 마틴 애이미스와 윌 셀프 두 작가는 파리의 주간지 누벨 옵세르봐퇴르와의 회견에서 왕실이 "속물들로 차 있고 나라 전체가 내부에서 황폐해 있다"고 비판했다. 결혼식을 보는 눈도 비판적이었다. 그러자 보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왜 자기 나라를 미워하느냐"고 비난하고 애이미스 더러 "그럴 바에는 영국을 떠나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영국에서는 아주 드물었다.
도버 해협 건너 프랑스의 분위기는 달랐다. 르몽드는 결혼식을 나흘 앞둔 25일 "영국 왕실은 근본적인 자체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설을 싣고 "낡은 왕정체제를 계속 존속시켜야 할 것인가 그리고 존속시킨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영국 왕실이나 왕정주의자들을 격분시킬 도발적인 문제 제기였다. 르몽드는 1952년 여왕 엘리자베드 2세의 등극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실이 여전히 '이전의' 왕실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귀족보다는 소시민이 더 많은 사회가 됐는데도 왕실과 가까운 귀족, 군대, 영국교회, 중앙권력이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이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문헌법을 제정해서 통합돼 있는 왕정과 영국교회를 분리하고 비민주적인 상원의 세습제를 폐지하고 상원의원을 선거로 뽑아야 하며 가톨릭신도에 대한 차별 폐지를 권고한다. 왕정에서 비민주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몽드의 개혁 주장에 대해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데니스 맥셰인은 결혼식 전날 르몽드에 "케이트와 윌리엄,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인가?'라는 엉뚱한 제목의 글을 기고해서 사람들을 깜작 놀라게 했다.
케이트와 윌리엄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내용은 국왕이 국민통합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화국체제보다 왕정체제가 정치적으로 더 안정되고 더 사회민주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유럽 왕국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윌리엄이 왕이 된다면 영국이 더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제안에 대해서 윌리엄은 어머니 다이아나의 영향을 받아 철저한 보수의자이기 때문에 그가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반박을 받았지만 아무튼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이 영국 왕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토론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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