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략적 태도와 MB정부 철학부재의 '합작품'
대북햇볕정책을 부정하고 '원칙있는 남북대화'를 주장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모양새를 구겼다. 북한이 남북간 비밀접촉을 폭로, 뒤통수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협공 받게 됐다. 보수진영에서는 '원칙도 일관성도 없다'는 비판이, 진보진영에서는 '이중 플레이로 국민을 속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또 엇나가게 됐다. 2일 대북 협상에 긴밀히 관여해 온 정부 핵심당국자는 "이 정부 들어 고비 때마다 남북이 엇박자를 낸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와 남북관계 급랭사태는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끌고가려는 북한의 태도와 이명박정부의 철학부재가 낳은 합작품이란 지적이다.
◆MB 국회연설 직후 금강산 사건 발발 = MB정부 출범 당시 대북정책은 대선공약인 '비핵개방 3000'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흡수통합론이라며 반발했고,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2008년 7월 11일. 남북관계는 첫 전환점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연설을 통해 이전보다 전향적인 통일정책과 당국간 전면대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연설 몇 시간 뒤 북한 초병에 의한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오전까지 '남북대화'를 제안했던 이 대통령은 금강산관광을 단절했다.
다음 고비는 2010년 봄이었다. 6자회담 관련국 사이에서 북미접촉-수석대표회담-6자회담으로 가는 3단계 접근법이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 정부도 2009년 하반기부터 당시 임태희 노동부장관 라인을 통해 수차례 남북 비밀접촉을 갖고 고위급회담을 물밑에서 조율 중이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도 진보와 중립인사를 포함시켜 개편하고 남북정책을 전향적으로 가져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3월, 천안함사건으로 정국이 급격히 냉각됐고 '천안함 악몽'이 잊혀질 때쯤인 11월 북한은 연평도를 포격했다.
올 들어 4월경부터 남북간 비밀접촉이 재개됐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남북정상회담으로 임기말 이완국면을 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 비밀접촉 폭로에 앞서 있었던 '베를린 제안'도 MB정부로서는 일종의 전환점 성격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뒤통수 치기식 폭로로 당분간 대화가능성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화단절 손해는 남북이 지게 될 것" = 정치권의 원로인사는 "그동안 우리는 (비핵화나 천안함 사과와 같은) 조건을 달면서 북에겐 조건 없이 나오라고 했다"며 "대북문제를 국내여론의 잣대로 접근하려고 하다가 남북관계를 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북한정권의 정략적 접근도 문제지만, MB정부의 대북철학 부재가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여권 핵심관계자도 "남북관계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공식대화채널은 열어 놓는 것이 바람직했다"면서 "남북대화 단절에 따른 손해는 결국 남과 북이 지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홍식 조숭호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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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햇볕정책을 부정하고 '원칙있는 남북대화'를 주장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모양새를 구겼다. 북한이 남북간 비밀접촉을 폭로, 뒤통수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협공 받게 됐다. 보수진영에서는 '원칙도 일관성도 없다'는 비판이, 진보진영에서는 '이중 플레이로 국민을 속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또 엇나가게 됐다. 2일 대북 협상에 긴밀히 관여해 온 정부 핵심당국자는 "이 정부 들어 고비 때마다 남북이 엇박자를 낸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와 남북관계 급랭사태는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끌고가려는 북한의 태도와 이명박정부의 철학부재가 낳은 합작품이란 지적이다.
◆MB 국회연설 직후 금강산 사건 발발 = MB정부 출범 당시 대북정책은 대선공약인 '비핵개방 3000'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흡수통합론이라며 반발했고,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2008년 7월 11일. 남북관계는 첫 전환점을 맞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연설을 통해 이전보다 전향적인 통일정책과 당국간 전면대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연설 몇 시간 뒤 북한 초병에 의한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오전까지 '남북대화'를 제안했던 이 대통령은 금강산관광을 단절했다.
다음 고비는 2010년 봄이었다. 6자회담 관련국 사이에서 북미접촉-수석대표회담-6자회담으로 가는 3단계 접근법이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 정부도 2009년 하반기부터 당시 임태희 노동부장관 라인을 통해 수차례 남북 비밀접촉을 갖고 고위급회담을 물밑에서 조율 중이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도 진보와 중립인사를 포함시켜 개편하고 남북정책을 전향적으로 가져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3월, 천안함사건으로 정국이 급격히 냉각됐고 '천안함 악몽'이 잊혀질 때쯤인 11월 북한은 연평도를 포격했다.
올 들어 4월경부터 남북간 비밀접촉이 재개됐다. 이 대통령 입장에선 남북정상회담으로 임기말 이완국면을 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 비밀접촉 폭로에 앞서 있었던 '베를린 제안'도 MB정부로서는 일종의 전환점 성격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뒤통수 치기식 폭로로 당분간 대화가능성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화단절 손해는 남북이 지게 될 것" = 정치권의 원로인사는 "그동안 우리는 (비핵화나 천안함 사과와 같은) 조건을 달면서 북에겐 조건 없이 나오라고 했다"며 "대북문제를 국내여론의 잣대로 접근하려고 하다가 남북관계를 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북한정권의 정략적 접근도 문제지만, MB정부의 대북철학 부재가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여권 핵심관계자도 "남북관계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공식대화채널은 열어 놓는 것이 바람직했다"면서 "남북대화 단절에 따른 손해는 결국 남과 북이 지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홍식 조숭호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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