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금지법 통과는 내게 공부 많이 하라는 뜻”

지역내일 2011-05-30 (수정 2011-05-30 오후 2:04:43)
인터뷰-내일 정년퇴임하는 이홍훈 대법관
법관 인생 34년 마감 … "사법부, 적극적인 행정권력 통제 필요"

31일 65세의 나이로 정년퇴임하는 이홍훈 대법관은 후배 판사들 사이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 있는'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떠올리면 강자와 약자에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관계에서 균형을 맞추고 판결에는 약자에 대한 '따듯함'이 묻어있다고 한다.

대법관과 함께 일하는 재판연구관들은 대법관에게 정기적으로 사건 보고를 올린다. 보고서는 사실 연구관들의 '실적'이다. 이 대법관은 보고를 적게 올린 연구관을 질책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해당 연구관이 개인적으로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부장판사는 "이 대법관은 대법관 중에서 근무평정을 매기면 1등일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데도 후배 법관들을 다그치는 법이 없다"며 "사람과 자연에 대한 애정은 물론, 자신의 일까지 모든 것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판결 등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깊은데.

1950년 6·25 당시 5살이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다들 어려웠다. 고무신도 못 신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먹고 살만 했는데 서울에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의 가정환경이 열악한 편이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금호동에서 살았는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어느 쪽에 치우친 판결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헌법정신에 부합되게 판단을 하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약자를 위한 조정이 있을 수 있고 국가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해야 한다.

사법부의 역할 중 하나가 과도한 공권력의 견제 아닌가.

사법소극주의 입장에서는 사법부가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과거 국가권력 중심사회에서 국민들의 폐해는 심각했다. 권력분립과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사법부의 적극적인 면도 필요하다. 정치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사법부가 이를 막지 않으면 사회적 분쟁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법관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판단해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행정 권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모든 법관이 같은 입장은 아니다. 사법소극주의를 지지하는 분도 있다.


파업을 무조건 업무방해죄로 처벌했던 판례를 깨고 요건을 엄격히 한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심 재판관이었는데.

노동조합의 파업행위를 무조건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단체행동권은 근로자의 권리다. 파업 외에는 단체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근로자의 파업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회사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사용자가 파업에 대비해 대체인력을 준비하는 등 시간을 줘야 하는데 전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법리적 다툼이 있지만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관 구성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다.

대법원이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여러 의견을 반영한 판결이 나올 수 있고 대법원 판결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적절한 판결이 나오기 위해서는 대법관 구성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으면 안 된다고 본다. 대법원은 사건부담이 너무 많아 대법관을 임명할 때 재판능력을 중시한다. 재판능력과 법리적 식견, 사건 처리능력 등이 주요하게 고려된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을 다양하게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미국은 다양성을 갖춘 법조인이 워낙 많아, 재야에서 자기소신을 확고히 갖고 있는 법조인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대법관의 임기가 6년이라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동안 성향에 맞는 사람을 대법관에 임명한다. 미국은 종신제다. 9명의 연방대법관이 보수와 진보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앞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갖춰 나갔으면 한다.


오랫동안 참선을 했고 많은 화두를 수행했다고 들었다. 요즘 화두는 무엇인가.

젊은 시절부터 참선을 했다. 새벽 5시부터 6시까지, 저녁 10시부터 11시까지 한다. 화두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의 화두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일일시호일은 '나날이 좋은날'이라는 말이고 '수처작주 입처개진'은 어디에 가든 자기 중심을 잃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하는 일과 있는 자리가 모두 진실한 진리의 삶이라는 말이다.

어디에서 무슨일을 하든지 하루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살자는 마음가짐이다.


전관예우금지법이 퇴임 직전에 시행되면서 최대 피해자라는 말이 있는데.

국민들이 전관예우 문제를 체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법을 통해서 제도의 취지가 정착돼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불식됐으면 한다. 가족희생 하에 여기(대법관)까지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제활동을 한 다음 고향에 가려고 계획했는데 생각과 달라졌다. 건강 관리하고 책도 읽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법관으로 있으면서 사건처리만 해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전관예우금지법 통과를 공부를 많이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웃음)


법관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시대적으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우리나라가) 고통스런 시기를 거칠 때 법관을 시작했다. 힘들었다. 형사단독 판사 시절에는 사표를 몇 번 내려다가 못 냈다.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유죄 판결한 것을 한 평생 가슴에 안고 산다.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공개하면서 이름이 나와 한 달 동안 사표를 고민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얼마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대법관들의 사건처리 부담이 크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대법관 증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건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집에 사건 기록을 많이 가져갔다. 취임 초기 몇 년은 밤 11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주말에 누가 만나자고 하면 핑계를 댔는데 사실 기록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법관의 사건부담이 과중하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법관 증원과 상고심사제를 하는 2가지가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사법부 위상이 떨어져 행정과 입법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또한 대법관이 증원되면 전원이 합의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대법원 사건은 대법관 전원이 합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은 대법관 4명의 소부 판결이 원칙이고 전원합의체가 예외가 되어 버렸다. 대법원이 주요사건만 다루는 정책법원으로 가야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상고를 제한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심인 1·2심을 강화해야 한다. 1심에 불만이 많으니까 항소와 상고를 하고 결국 대법관 증원 문제가 나온다. 대법원 사건이 많으니까 대법관을 늘린다는 단순 증원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가 있다. 우리 헌법상의 국가 권력분립 형태를 생각해야 한다.


34년 동안 법관 생활을 했다. 법조인 선발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법관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법리를 잘 알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근본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훌륭한 성품, 균형감각, 인간을 바라보는 안목 등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이 한 재판은 양형 판단 및 사실인정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판의 신뢰와 설득력을 위해서도 품성이 중요하다.
문진헌 이경기 기자 jh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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