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넘나드는 ‘블랙’ 누가 보호해주나

지역내일 2011-07-21
해외활동 첩보원 잇단 구금 … "국가적 대책·대우 미흡" 비판

몇년 전 중국에서 활동하던 '블랙' 김문식(가명)씨는 어느 날 중국 공안당국에 검거됐다. 무역상으로 신분을 위장했던 김씨는 대북첩보 활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1년 넘게 구금됐다. 가까스로 풀려나 귀국했지만, 가족 외에 그를 환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구금 자체가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별다른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김씨가 소속된 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으로 복귀할 수도 없었다. "누구를 위해 헌신했던가"라는 번민에 빠진 김씨는 끝내 사표를 쓰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돌아왔다. 십수년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지만 그의 존재는 잊혀져만 갔다.

블랙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지적이다. 블랙은 신분을 위장해 해외로 보낸 첩보원을 일컫는다. 영화로 유명한 007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면 된다. 상대적 개념인 화이트는 상대국에게 신분을 알리고 활동하는 첩보원이다. 주로 대사관에서 근무한다.

한국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등에 보낸 블랙의 규모는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최소 수십에서 수백명 이상이 될 걸로 짐작될 뿐이다. 하지만 최근 이들과 관련된 뉴스가 잊혀질만 하면 한번씩 터져나와 눈길을 끈다.

20일에도 국정원 블랙 2명이 중국에서 대북첩보활동을 벌이다 공안당국에 체포돼 1년 가까이 구금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당국은 구금 사실 자체를 부인했지만 소식통들은 "구금된 게 맞다"고 확인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들이 대북 첩보활동을 벌인 혐의로 (중국에) 구금된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 2009년 7월에도 중국에서 활동하던 국군정보사령부 장교가 구금돼 1년 넘게 옥살이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블랙은 국가 입장에선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국가간 경제 사회 문화 정치를 넘나드는 경쟁이 가히 전쟁 수준으로 치달은 21세기에 블랙은 비공식적으로 국가의 안위와 이익을 지킬 최정예 인력이다.

분단상황에 처한 한국으로선 블랙의 활약이 더욱 절실하다.

이 때문에 국내 정보기관들도 상당 규모의 블랙요원들을 현장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무대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첩보활동이 주 임무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년씩 현장에서 뛴다. 물론 신분은 무역상이나 회사원 등으로 위장한다. 현장에선 상대국 정보기관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1분1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도청을 막기 위해 24시간 TV나 라디오를 켜놓고, 신분 확인을 피하려고 호텔을 이용해도 비치된 칫솔조차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신분의 특수성상 '문제'가 생겨도 특별한 보호장치가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정원 요원들도 국정원이 석방을 위한 교섭에 나섰지만 중국당국이 거부하자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화이트는 공식적으론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구금되지 않고 추방되거나 본국에 송환되는 것과 대조된다.

구금에서 풀려나더라도 블랙은 다시 활동하기 어렵고, 화이트로 전향하기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국가나 소속기관에서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도 않는다. 재수가 없었거나 실력이 부족한 요원이란 '억울한 낙인'만 찍힐 뿐이다.

블랙은 평소 소속기관에서 '서자' 취급을 받기 일쑤라는 증언도 나온다. 화이트나 국내 '본사'에서 근무하는 요원들은 '윗사람'을 자주 접하고 자신들끼리 지연·학연·기수 따위로 뭉치기 쉽다. 당연히 진급이나 보직, 국내외 연수 등을 따질 때 유리하다. 반면 블랙은 해외를 떠돌다보니 '본사'나 '윗사람' 정보에 밝을 수가 없다. 각자 활동하다보니 같은 신분인 블랙들끼리 뭉치기도 어렵다. 화이트인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나 보직, 연수에서 불리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국내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이명박정부 들어 원훈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꿨다. 중앙정보부 시절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국민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첩보원들의 운명을 표현한 말들이다. 국민이 그들의 활약상을 속속들이 알 필요도, 알아서도 안되지만 그들을 '사지'로 보내는 국가조차 그래선 안된다는 비판이다.

한 정보기관 출신인사는 "블랙요원들은 대단한 명예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국가의 명을 받아 사지로 떠나는 사람들"라며 "국가가 그들을 보호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