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망률 · 자살증가율 급속한 증가추세
정부대책 성과 미흡 … "사회 향한 절규에 귀 기울여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글 일부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당시로선 죽음보다 치욕스럽다던 궁형(성기를 잘라내는 형벌)을 자청한 심경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난과 치욕스러움을 극복하고 역사 속에 우뚝 선 그는 삶을 선택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국내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만5413명에 달했다. 이는 하루 평균 42.2명, 34분마다 1명꼴로 자살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인 5838명과 비교해 봐도 세 배 가까운 수치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는 유명연예인과 고위공직자, 전직 대통령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KAIST학생들과 교수, 아나운서, 축구선수, 군인들까지 연령과 계층의 구분조차 의미 없을 만큼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사망률과 증가률이 모두 1위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자살률이 늘어가는 동안 유럽은 다양한 예방활동 등을 통해 자살률을 대폭 줄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이제 우리사회도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살행렬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살 막는 사회, 자살 권하는(?) 사회 = 선진국 진입문턱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은 단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경제대국이라 하더라도 자살률이 높으면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 의문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살기가 힘든 사회와 국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일까.
1992년 UN은 자살을 공중보건의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각국 정부에 자살에 대한 국가차원의 전략개발 권고했다. 실제로 상당수 유럽 선진국들은 자살예방을 위한 다양한 전략과 프로그램을 가동해 상당한 성과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은 정반대 양상을 띠고 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고, 그 격차도 현저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2009년도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8.4명으로 2위인 헝가리(19.8명)나 3위인 일본(19.4명)과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높은 사망률도 문제지만, 증가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OECD가 1990년부터 2006년까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자살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한국 멕시코 일본 포르투갈 폴란드 정도의 국가만이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 가운데 특히 우리나라의 증가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OECD 회원국의 자살사망률이 평균 20.4% 감소한 반면, 한국에서는 172.2%나 증가했다. 자살사망률과 자살증가율 모두 OECD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통계만 놓고 보자면 자살을 방조하거나 사실상 권하는 것과 다름없는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이 결코 심한 말이 아닌 셈이다.
◆사회경제적 피해 막심 =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자살자는 물론이고, 자살자 주변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쳐 생명경시 풍조를 만연하게 만든다.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자살자 유가족들을 발생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소중한 인적 자원이 상실되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살시도자는 자살자의 10∼20배에 달하며, 자살자 유가족은 자살자 한 명마다 평균 6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자살자는 9만9321명(통계청, 1999∼2008)인데 자살시도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99만 3210명이며, 자살자 유가족은 59만5926명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살은 이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 문제가 됐다.
경제적 비용도 천문학적 수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자살 또는 자살시도로 인해 소요된 경제적 비용은 적게는 2조 4149억원에서 많게는 4조 9663억원(약 5조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비용은 평균치인 3조원 대로 보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예산 약 2조 4460억원이나 보육ㆍ가족 및 여성 예산 2조 5109억원, 취약계층지원(요보호 아동지원, 장애인 지원 등) 예산 약 1조 220억원보다 훨씬 많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살률을 10% 줄이면 약 3900억원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서나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살예방 사업이 얼마나 절실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명무실한 정부종합대책 = 그렇다면 우리는 자살증가에 대해 과연 뒷짐만 지고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민간단체에서도 다양한 예방활동을 펼쳐왔고, 정부에서도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정부의 종합대책은 요란스러움에 비해 실속은 없는 유명무실 그 자체였다.
2004년 제1차 자살예방대책기본계획(2004~2008)에 이어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까지 수립돼 시행중이지만 예산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합대책이라는 이름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차 종합대책의 경우 2013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을 20명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2008년 10만명당 26명이었던 자살사망률이 2009년에는 31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안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종합대책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령 1차 종합대책의 경우 자살예방사업에 대한 정책범위를 정신질환을 가진 개인중심으로 한정하면서 반쪽자리 대책이 됐고, 예산 역시 순수 자살예방예산은 연간 5억원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2차 종합대책은 정신보건분야와 사회환경적 접근을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관련 기관과 부처가 협동하는 모양새는 갖췄지만 여전히 자살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에 치중하기 보다는 간접 지원에 역점을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강동을)은 "우리나라는 2004년 이후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자살예방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며 "이는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언론매체나 인터넷 통신 등을 통해 집단자살이나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의 영향을 받은 모방자살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자살은 사회적 전염성이 커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방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자 교수(이화여대 간호과학과)는 최근 한 언론 기고를 통해 "한 개인의 자살 시도가 도움을 청하는 절규인 것처럼, 우리는 자살 시도를 일반국민·전문가·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예방·구조 활동을 시급히 요청하는 절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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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책 성과 미흡 … "사회 향한 절규에 귀 기울여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글 일부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당시로선 죽음보다 치욕스럽다던 궁형(성기를 잘라내는 형벌)을 자청한 심경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난과 치욕스러움을 극복하고 역사 속에 우뚝 선 그는 삶을 선택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국내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만5413명에 달했다. 이는 하루 평균 42.2명, 34분마다 1명꼴로 자살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인 5838명과 비교해 봐도 세 배 가까운 수치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는 유명연예인과 고위공직자, 전직 대통령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KAIST학생들과 교수, 아나운서, 축구선수, 군인들까지 연령과 계층의 구분조차 의미 없을 만큼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사망률과 증가률이 모두 1위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자살률이 늘어가는 동안 유럽은 다양한 예방활동 등을 통해 자살률을 대폭 줄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이제 우리사회도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살행렬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살 막는 사회, 자살 권하는(?) 사회 = 선진국 진입문턱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은 단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경제대국이라 하더라도 자살률이 높으면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근원적 의문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살기가 힘든 사회와 국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일까.
1992년 UN은 자살을 공중보건의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각국 정부에 자살에 대한 국가차원의 전략개발 권고했다. 실제로 상당수 유럽 선진국들은 자살예방을 위한 다양한 전략과 프로그램을 가동해 상당한 성과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은 정반대 양상을 띠고 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고, 그 격차도 현저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2009년도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8.4명으로 2위인 헝가리(19.8명)나 3위인 일본(19.4명)과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높은 사망률도 문제지만, 증가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사회경제적 피해 막심 =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자살자는 물론이고, 자살자 주변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쳐 생명경시 풍조를 만연하게 만든다.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자살자 유가족들을 발생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소중한 인적 자원이 상실되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살시도자는 자살자의 10∼20배에 달하며, 자살자 유가족은 자살자 한 명마다 평균 6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자살자는 9만9321명(통계청, 1999∼2008)인데 자살시도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99만 3210명이며, 자살자 유가족은 59만5926명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살은 이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 문제가 됐다.
경제적 비용도 천문학적 수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자살 또는 자살시도로 인해 소요된 경제적 비용은 적게는 2조 4149억원에서 많게는 4조 9663억원(약 5조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비용은 평균치인 3조원 대로 보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예산 약 2조 4460억원이나 보육ㆍ가족 및 여성 예산 2조 5109억원, 취약계층지원(요보호 아동지원, 장애인 지원 등) 예산 약 1조 220억원보다 훨씬 많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살률을 10% 줄이면 약 3900억원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서나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살예방 사업이 얼마나 절실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명무실한 정부종합대책 = 그렇다면 우리는 자살증가에 대해 과연 뒷짐만 지고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민간단체에서도 다양한 예방활동을 펼쳐왔고, 정부에서도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정부의 종합대책은 요란스러움에 비해 실속은 없는 유명무실 그 자체였다.
2004년 제1차 자살예방대책기본계획(2004~2008)에 이어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까지 수립돼 시행중이지만 예산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등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합대책이라는 이름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차 종합대책의 경우 2013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을 20명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세웠지만 2008년 10만명당 26명이었던 자살사망률이 2009년에는 31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안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종합대책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가령 1차 종합대책의 경우 자살예방사업에 대한 정책범위를 정신질환을 가진 개인중심으로 한정하면서 반쪽자리 대책이 됐고, 예산 역시 순수 자살예방예산은 연간 5억원에 불과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2차 종합대책은 정신보건분야와 사회환경적 접근을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관련 기관과 부처가 협동하는 모양새는 갖췄지만 여전히 자살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에 치중하기 보다는 간접 지원에 역점을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강동을)은 "우리나라는 2004년 이후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자살예방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며 "이는 금융위기 여파로 인한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언론매체나 인터넷 통신 등을 통해 집단자살이나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의 영향을 받은 모방자살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자살은 사회적 전염성이 커 조기에 차단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방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자 교수(이화여대 간호과학과)는 최근 한 언론 기고를 통해 "한 개인의 자살 시도가 도움을 청하는 절규인 것처럼, 우리는 자살 시도를 일반국민·전문가·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예방·구조 활동을 시급히 요청하는 절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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