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행렬, 이젠 고리를 끊자-② 원인과 대책] “대통령이 직접 자살문제 챙겨야”

지역내일 2011-07-22
연 1만5천명 사망 … 대재앙 수준에도 예산부족 타령만
'치료 가능한 사회적 질병'이라는 인식전환 절실

#궁금증 하나.
흔히 자살은 우울증 등 정신관련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자살률이 2~3배 급증하는 동안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이 비슷하게 늘었다는 보고서나 연구자료는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

#궁금증 둘.
흔히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선택한다는 얘기도 한다.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복지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지금보다 훨씬 나빴던 70~80년대 자살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편견은 심하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기 일쑤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체면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이를 거부한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자살사망자와 자살률 증가 속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해도 절박성은 없어 보인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수조원에 이르는데도 정부의 자살예방을 위한 1년 예산은 수십억원에 그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날마다 43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1년에 1만 5천명이 넘게 소중한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전 국민의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은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어떤 자연재난 보다도 심각한 재앙 수준인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NYT "한국은 신경쇠약 직전" = 지난 6일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우리나라를 평가한 기사는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타임스는 한국에 대해 "국가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및 상시적인 걱정을 꼽았다. 타임스는 구체적인 한국인의 삶의 조건으로 치솟는 이혼율과 학업부담에 짓눌린 학생들, 근무시간 뒤에도 폭음을 권유하는 남성 위주 기업문화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예시했다.

특히 자살률에 대해 타임스는 매일 30여명이 자살하고 있고(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42.2명에 이른다), 연예인 , 정치인, 체육인은 물론 재계 지도자들의 자살도 일상사가 됐다고 소개했다. 특히 카이스트 대학생 4명의 자살이 한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했다.

또 타임스는 한국의 자살률이 미국에 비해 3배가 높고, 1999년 이후 10년 동안 2배가 늘었는데도 적절한 심리치료를 꺼리는 한국인의 사고체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엿보일 정도의 기사였지만 반박할 논거 또한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자살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우리사회 전체가 사실상 방치해 뒀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살기도자 70.2% "이젠 자살할 생각 없다" =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실시한 자살기도자에 관한 연구(전국 8개 대학병원 응급실, 자살기도자 1,170명 조사)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에는 '평소 정신과적 문제가 있고, 음주 후 집에서 농약으로 자살을 기도한 60대 주부'가 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자살기도자의 67%는 이전에 건강했고,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는 전체의 30%에 불과했다.

또 자살기도자의 30.4%는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고, 지금은 아니지만 이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는 16.5%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자살기도자의 절반이 넘는 53.1%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70.8%(전체의 37.6%)는 응급실 정신과 담당 의사의 판단상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전체 자살기도자 가운데 36.0%만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또 자살기도자의 상당수는 정신과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자살기도 당시의 직접적인 동기가 정신장애 혹은 증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경우는 31.4%에 그쳤다.

이에 반해 직접적인 동기가 스트레스였다고 조사된 경우는 48.2%로 더 높게 나타났고, 정신과적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직접 동기가 스트레스인 경우가 72.7%, 급격한 정서적 흥분과 관련있는 경우가 8.4%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대목은 자살기도자에 대한 추적관찰 결과다. 자살을 기도한 사람들을 3개월 후에 추적관찰 한 결과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은 경우는 절반이 안 되는 49.1%였다. 그런데 자살을 시도한 뒤 3개월 후 '이제는 자살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70.2%로 나타나 자살을 이겨내려는 극복의지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국 자살시도자나 자살을 기도하려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관계자는 "아직 단편적인 통계자료이지만 이를 축적하고 활용해 향후 한국형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될 계획"이라며 "하지만 이같은 자살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아직 없고, 자살기도(사망)자 가족들이 조사를 거부하는 경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실태조사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살기도자들의 통로라고 할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에서 자살기도(사망)자 가족에 대한 사후조사를 실시하도록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살이 한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신의료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 가치관적 측면 등 종합적인 시각에서 자살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 제정이 사회적인 인식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무총리 "생명중시 범국민 운동 필요" =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회장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명과 자살문제에 대해 좀 더 책임성을 갖자는 의미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고,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도 "법도 만들어지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여건은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와 공동으로 자살예방관련 심포지엄을 개최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제는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보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면서 "의약적으로는 치료와 예방이 가능한 부분을 검토하고, 공공정책적으로는 상담이나 캠페인 등을 통해 자살률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법제정 이후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자살은 전염성이 강한 만큼 생명을 중시하는 범국민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을 만들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은 전혀 변화가 없다면 이는 결국 정책의 변화도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규섭 회장은 이에 대해 "법도 만들어졌고, 정부대책도 마련됐는데도 예산을 한 푼도 안쓰니까 자살률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며 "이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챙겨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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