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형 서울시흥초등학교 교장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교육은 조장성과 장기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교육 활동이 규제나 통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현상 탓인지 교육정책의 시행과 동시에 효과를 얻고자 하는 조급함이 많아졌다.
교육 정책이나 학교 교육에서 추진되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적 활동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도입 목적에 맞는 결과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뿐만 아니라 교육 관련 정책 입안자들 모두는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는 학교에 무엇 하러 오니?' 라는 질문에 흔히 쉽게 '학교에 공부하러 온다'고 답한다.
필자의 경우, 30여년 동안 교육자의 길을 걸은 뒤에야 '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러 학교에 온다'는 답을 얻었다.
학교에 오면 많은 또래 친구들이 있고, 언니와 동생도 수없이 많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과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디 그 사람들뿐인가. 교과서 속에는 우리 선조들도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많은 시간 동안 만나고 있다.
학생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으며 책을 읽는 방법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는지와 다른 친구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그것이 학교다.
교사는 이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이제 교사는 더 이상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학생이 학습자라면 교사는 모름지기 모범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조력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출근과 동시에 매일 책을 읽는 교사들을 보면서 학생들도 독서와 함께 학교에서의 하루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학생들은 교사들보다 더 많은 미래 생활을 영위할 것이므로 교사들은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지혜로운 교사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허용하게 된다. 학생들이 장차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세계인으로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고 가꾸어 주는 교사가 더욱 절실한 때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들 한다. 학생과 더불어 교육수요자로서 또 그들의 대변인으로서 학교와 교육 당국에 요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연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의 욕구를 학생의 이름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자.
미래 사회는 온전히 우리 학생들의 몫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살려 미래 사회에 유용한 능력과 태도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학생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학부모는 학생의 대변인이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명실상부하게 '학생'이다. 학교 교육과정 운영뿐만 아니라, 학교 조직도 학생 중심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말로만 학생 중심이라고 하고, 교사나 학부모, 교육 경영자, 교육 당국, 국가와 지역사회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사고에 바탕을 둔 학교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자.
새로움과 탈바꿈이라는 변화도 자칫 학생들과 동떨어진 내용과 방법으로 전개될 수 있다.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성원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여 교육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학생이 중심이 된 학교 문화를 위하여 우리 다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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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교육은 조장성과 장기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교육 활동이 규제나 통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 현상 탓인지 교육정책의 시행과 동시에 효과를 얻고자 하는 조급함이 많아졌다.
교육 정책이나 학교 교육에서 추진되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적 활동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도입 목적에 맞는 결과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뿐만 아니라 교육 관련 정책 입안자들 모두는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는 학교에 무엇 하러 오니?' 라는 질문에 흔히 쉽게 '학교에 공부하러 온다'고 답한다.
필자의 경우, 30여년 동안 교육자의 길을 걸은 뒤에야 '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러 학교에 온다'는 답을 얻었다.
학교에 오면 많은 또래 친구들이 있고, 언니와 동생도 수없이 많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과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디 그 사람들뿐인가. 교과서 속에는 우리 선조들도 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많은 시간 동안 만나고 있다.
학생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으며 책을 읽는 방법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는지와 다른 친구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그것이 학교다.
교사는 이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이제 교사는 더 이상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학생이 학습자라면 교사는 모름지기 모범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조력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출근과 동시에 매일 책을 읽는 교사들을 보면서 학생들도 독서와 함께 학교에서의 하루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학생들은 교사들보다 더 많은 미래 생활을 영위할 것이므로 교사들은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지혜로운 교사는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허용하게 된다. 학생들이 장차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세계인으로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고 가꾸어 주는 교사가 더욱 절실한 때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들 한다. 학생과 더불어 교육수요자로서 또 그들의 대변인으로서 학교와 교육 당국에 요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매우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한편으로 과연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의 욕구를 학생의 이름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자.
미래 사회는 온전히 우리 학생들의 몫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살려 미래 사회에 유용한 능력과 태도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학생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학부모는 학생의 대변인이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명실상부하게 '학생'이다. 학교 교육과정 운영뿐만 아니라, 학교 조직도 학생 중심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말로만 학생 중심이라고 하고, 교사나 학부모, 교육 경영자, 교육 당국, 국가와 지역사회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사고에 바탕을 둔 학교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자.
새로움과 탈바꿈이라는 변화도 자칫 학생들과 동떨어진 내용과 방법으로 전개될 수 있다.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성원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여 교육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학생이 중심이 된 학교 문화를 위하여 우리 다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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