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번역가
'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사'로 전세계인으로부터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많은 명언을 남긴 위인으로도 유명하다. 93세 넘게 장수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옥중생활도 역할을 했다. 실제 "27년의 옥살이 덕분에, 고독의 고요함을 통해 소중한 말과 진정한 연설이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되었다"는 말도 남겼다.
만델라의 '소중한 말, 진정한 연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제 66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나름대로 인상깊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6000자짜리 '조선혁명선언'에 못지않은 긴 길이에다, 그 만큼이나 결연한 어조로 새로운 국정 기조와 '아무도 내놓은 적 없는 새로운 비전'을 내 놓았다.
조선혁명선언은 '강도일본'에게 대항하기 위해 조선민중이 할 수 있는 일은 폭력저항 뿐이며 이는 범죄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정당한 저항, 즉 혁명임을 조목조목 항변하였다. 대통령 8·15경축사는 대한민국의 성과를 나열, 극찬하면서 현안 과제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문제는 해마다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새 용어-비전을 들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2008년엔 저탄소 녹색성장을, 2009년엔 친서민 중도실용을, 작년에는 공정사회를 내걸었다. 올해는 공정사회와 구분이 불분명하지만 공생발전이란 신조어를 내놓았다. 탐욕경영에서 윤리 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발전의 양에서 질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고용 없는 성장에서 일자리 늘어나는 성장으로의 변화가 이 개념의 내용이라는 길고 자세한 해설도 뒤따랐다.
우리 훈련받은 언론인들은 모두 안다. 신문에 뉴스 제목을 달았는데 그 뜻을 다시 설명해줘야 하거나, 꽤 길고 중요한 기사를 실었지만 독자에게 일일이 그 내용을 말로 해설해줘야 한다면 그건 애초부터 잘못 작성된 것이다.
우리말이나 열심히 가꾸었으면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는 '공생발전'이란 슬로건 때문에 그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일까. 올해의 화두가 은근히 경제계와 대기업 쪽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 승자독식 사회니 부익부 빈익빈, 고용없는 성장 같은 말들이 정작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그동안의 통치를 비판하는 용어로 많이 쓰여온 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120여권의 책을 번역,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번역자'인 소설가 안정효씨는 우리끼리는 통해도 정작 외국인들은 못 알아듣거나 웃어대는 국적불명의 영어들을 신문, 방송, 공문서 등에서 맹렬수집하여 방대한 부피의 '가짜 영어사전'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영어의 오남용 원인이 언어라기보다 기호의 기능에 치중하는 우리 성향 탓이라 풀이하면서 "그런 말도 안되는 온갖 조어를 만들어 쓸 시간과 기운이 있으면 우리말이나 좀더 열심히 가꾸지…"라고 서문을 쓰기도 했다.
공생발전이 본래 '생태계형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이란 뜻인데 너무 어려워 그렇게 의역했다는 해설도 혼란스럽다. 생태계라는 확실한 말을 공생이란 억지 단어로 바꾼 게 어떻게 의역일 수 있는지 희한한 발상이다. 단어 뜻과 상관없이 "내 의도대로" 번역하는 게 의역인 줄 알았던 것일까. 양국의 문화차이를 배려하고 오해를 줄이는 의역작업이라도 전혀 다른 신조어를 가지고 '우리는 이런 뜻으로 썼다'고 우기면 안되는 것이 번역의 기본이다.
더구나 이 '새로운 비전'의 구체적 시행방법의 제시 없이 여야의 '복지 포퓰리즘 탓'에 국가 재정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울고 싶어졌다. 국가와 정부가 복지를 '선심'과 혼동하고 정치술수 정도로 기피하는 나라의 민중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고 목숨과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다.
남북관계 등 현안엔 침묵한 채
단재 선생을 비롯해서 내가 좋아하는 '독립군 제2지대 군가'를 작곡한 철기 이범석 장군, 아나키스트란 이유로 해방조국에서 외면당했던 이회영, 박열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소득 상-하위 가르기, 정규-비정규직을 비롯한 온갖 차별과 사회문제가 산적한 채 편협한 남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첨예한 남북관계, 대일관계 현안에는 침묵한 채 통일을 외면하면서 "평화협력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발표하는 모순에 대해 순국선열은 어떤 해답을 내놓으실까.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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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사'로 전세계인으로부터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많은 명언을 남긴 위인으로도 유명하다. 93세 넘게 장수한 때문이기도 했지만, 옥중생활도 역할을 했다. 실제 "27년의 옥살이 덕분에, 고독의 고요함을 통해 소중한 말과 진정한 연설이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되었다"는 말도 남겼다.
만델라의 '소중한 말, 진정한 연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제 66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나름대로 인상깊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6000자짜리 '조선혁명선언'에 못지않은 긴 길이에다, 그 만큼이나 결연한 어조로 새로운 국정 기조와 '아무도 내놓은 적 없는 새로운 비전'을 내 놓았다.
조선혁명선언은 '강도일본'에게 대항하기 위해 조선민중이 할 수 있는 일은 폭력저항 뿐이며 이는 범죄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정당한 저항, 즉 혁명임을 조목조목 항변하였다. 대통령 8·15경축사는 대한민국의 성과를 나열, 극찬하면서 현안 과제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문제는 해마다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새 용어-비전을 들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2008년엔 저탄소 녹색성장을, 2009년엔 친서민 중도실용을, 작년에는 공정사회를 내걸었다. 올해는 공정사회와 구분이 불분명하지만 공생발전이란 신조어를 내놓았다. 탐욕경영에서 윤리 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발전의 양에서 질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고용 없는 성장에서 일자리 늘어나는 성장으로의 변화가 이 개념의 내용이라는 길고 자세한 해설도 뒤따랐다.
우리 훈련받은 언론인들은 모두 안다. 신문에 뉴스 제목을 달았는데 그 뜻을 다시 설명해줘야 하거나, 꽤 길고 중요한 기사를 실었지만 독자에게 일일이 그 내용을 말로 해설해줘야 한다면 그건 애초부터 잘못 작성된 것이다.
우리말이나 열심히 가꾸었으면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는 '공생발전'이란 슬로건 때문에 그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일까. 올해의 화두가 은근히 경제계와 대기업 쪽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 승자독식 사회니 부익부 빈익빈, 고용없는 성장 같은 말들이 정작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그동안의 통치를 비판하는 용어로 많이 쓰여온 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120여권의 책을 번역,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번역자'인 소설가 안정효씨는 우리끼리는 통해도 정작 외국인들은 못 알아듣거나 웃어대는 국적불명의 영어들을 신문, 방송, 공문서 등에서 맹렬수집하여 방대한 부피의 '가짜 영어사전'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영어의 오남용 원인이 언어라기보다 기호의 기능에 치중하는 우리 성향 탓이라 풀이하면서 "그런 말도 안되는 온갖 조어를 만들어 쓸 시간과 기운이 있으면 우리말이나 좀더 열심히 가꾸지…"라고 서문을 쓰기도 했다.
공생발전이 본래 '생태계형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이란 뜻인데 너무 어려워 그렇게 의역했다는 해설도 혼란스럽다. 생태계라는 확실한 말을 공생이란 억지 단어로 바꾼 게 어떻게 의역일 수 있는지 희한한 발상이다. 단어 뜻과 상관없이 "내 의도대로" 번역하는 게 의역인 줄 알았던 것일까. 양국의 문화차이를 배려하고 오해를 줄이는 의역작업이라도 전혀 다른 신조어를 가지고 '우리는 이런 뜻으로 썼다'고 우기면 안되는 것이 번역의 기본이다.
더구나 이 '새로운 비전'의 구체적 시행방법의 제시 없이 여야의 '복지 포퓰리즘 탓'에 국가 재정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울고 싶어졌다. 국가와 정부가 복지를 '선심'과 혼동하고 정치술수 정도로 기피하는 나라의 민중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고 목숨과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다.
남북관계 등 현안엔 침묵한 채
단재 선생을 비롯해서 내가 좋아하는 '독립군 제2지대 군가'를 작곡한 철기 이범석 장군, 아나키스트란 이유로 해방조국에서 외면당했던 이회영, 박열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소득 상-하위 가르기, 정규-비정규직을 비롯한 온갖 차별과 사회문제가 산적한 채 편협한 남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첨예한 남북관계, 대일관계 현안에는 침묵한 채 통일을 외면하면서 "평화협력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발표하는 모순에 대해 순국선열은 어떤 해답을 내놓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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