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66돌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은 임기의 국정운영 비전으로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을 제시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시장경제, 함께하는 성장을 아우르는 철학을 국정운영의 전면에 올려 놓았다. 이 대통령은 "탐욕 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빈익빈 부익부에서 상생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 모델이 요구되고 있다"고 밝히고 탐욕을 바탕으로 특정 계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도 후대에 부담을 안기는 복지지상주의도 한국이 지향할 목표가 아니라면서 새로운 시장경제의 모델로 '공생발전'을 제시했다.
공생발전은 경제와 사회발전이 양적인 발전만이 아니라 질적제고를 담보하는 것이어야 하고 성장결과물의 승자독식 구조가 아닌 계층간 지역간 함께 나누며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이 돼야 한다는 개념이라고 한다. 공생발전은 MB정부가 국정기조로 내세웠던 동반성장, 친서민 중도실용, 공정한 사회에 생태경제학을 접목한 것이다. 자연생태계에서는 어느 특정한 종이 멸종하거나 변형될 경우 전체 생태계가 위협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 경제주체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붕괴되면 국가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방안 눈에 띄지 않아
이 대통령이 키워드로 던진 공생발전이라는 개념 제시는 시의적절하다. 불공정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구조로는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과 화합, 개인의 행복추구가 불가능하고,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는 사회갈등이 폭발하여 공동체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국가와 개인발전이 함께 가는 발전체제를 만들자는 목표는 옳은 방향이다.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하지만 공생발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갈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천방안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공생발전이라는 신조어의 의미부터가 낯설고 불분명하다. 이미 나돌고 있는 상생이나 동반성장과 어떻게 다른지 알쏭달쏭하다. 과거처럼 말잔치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나마 내놓은 방안이라는 것도 비정규직 차별해소, 골목상권 보호, 임대주택 공급확대 수준이다.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지지부진한 것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이다. 공생발전이라는 새 말로 포장했다고 정책이 신선하다고 국민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에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지표로 내놨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을 뿐 내세울만한 성과는 없고 세금을 헤프게 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09년에 '친서민 중도실용'을 내걸었지민 서민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들은 빈곤층으로 추락을 거듭했다.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더욱 높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2010년엔 공정사회를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공정사회 담론 이후 불공정 사례는 속출했다.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의혹 등으로 장관 후보자들이 잇달아 낙마했다. 공직자 윤리는 간데 없고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엔 저축은행 사태로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고소영인사는 그대로이다.
정부가 새로운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마다 근사한 수사로 포장했을 뿐 국민적인 동의를 얻지 못했고 치열한 실천의지가 부족했던 탓에 정책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 결과 불공정 불신 불만이 만연하게 됐다. 물가고와 전세난 양극화 속에서 친서민은 공허해졌으며 공정사회는 구호수준에 그쳤다.
소리만 요란했던 녹색성장·중도실용·공정사회
이 대통령은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발 재정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했고 우리나라 국가부채도 급속히 증가추세에 있는 상황에서 나온 약속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부자감세정책을 꺾지 않고 밀어붙이면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려면, 또 재정 때문에 복지가 어렵다고 말하려면 부자감세부터 철회하는 것이 순리다.
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하는 시정연설과 비슷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일 문제는 두 마디 정도로 넘어갔고 변화를 기대했던 남북문제도 원론수준에 그쳤다. 광복절 의미를 새기게 할만한 내용보다는 경제문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김진동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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